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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소 Oct 20. 2024

10. 두 개의 행성

홀로그램 화상회의실에 혼자 앉아있는 하련은 눈썹이 짙은 우박사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중앙 의사 중 원로의사로 SWEL의 수술실을 훤히 알고 있다. 넓은 회의실에 하련이 호출을 받고 오긴 했지만 어리둥절했다. 문해가 부른 것도 아니고 우박사라니. 5분쯤 있을까, 홀로그램의 알람이 울리더니 우박사가 나타났다.

"하련 간호사, 우박사입니다."

하련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하며 우박사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

"갑자기 불러서 놀랬지요? 요즘 하련 간호사를 위에서 괴롭히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하련 간호사가 진행하는 홀로그램 교육 프로그램 내가 직접 확인해 봤어요. 의사 중심의 교육을 간호사 입장에서 아주 잘 풀어놨더군요. 그 효과성도 입증하고요. 우리 중앙 의사회에서는 그 프로젝트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에요. 아무래도 수술실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수술의 진행 여부가 좀 더 매끄럽고 빨라질 수 있으니까. 나도 숙련된 간호사가 들어와야 마음이 놓이는 건 어쩔 수 없죠.  내가 하련 간호사에게 할 말이 있어요. 다음에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중앙 의사와 협업을 해서 진행하면 슈퍼바이저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예요. 중앙 의사의 추천서나, 협업 증명서를 다음에는 꼭 미리 만들어하도록 해요. 하련 간호사의 부탁을 누가 거절하겠어요.  힘들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일을 진행하고, 이번 일로 SWEL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느슨한 관계의 힘이라 했던가. 평소 자주 보지 못했던 우 박사로부터의 따뜻한 충고와 걱정은 하련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바이오 프린팅 센터의 간호사 수장을 맡고 있는 연옥은 문해가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원래 수술실에서 슈퍼바이저를 하고 있었지만 문해가 오는 바람에 그녀는 바이오프린팅센터로 옮겨졌다. 심장센터는 VIP에게 필요한 심장, 신장, 간 등 인공장기를 생산 및 관리하는 곳이다. VIP는 자신의 DNA를 바이오 프린팅 센터에 의뢰하고 거기서 그의 세포를 이용해 인공장기를 미리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 만약 VIP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준비되어 있던 세포를 이용해 심장을 몇 달에 걸쳐 성장시킨다. 그리고 다 완성된 심장을 VIP에게 이식한다. 이는 자가 세포를 이용하므로 과거(2032년)의 심장이식에서 사용했던 면역 억제제의 사용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과거에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는 일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다. 자가 세포를 이용한 이식이니 당연히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 이렇듯 VIP는 질병이 생기기 전부터 그를 위한 바이오 농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필요하면 피부뿐만 아니라 손가락 한두 개 정도는 얼마든지, 여분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태아는 제태혈을 통해 바이오 프린팅을 의뢰하고 이는 더 정교한 장기를 만들 수 있다.  


수술실 출신의 연옥을 이런 바이오프린팅 센터로 보냈을 때의 이유는 무균적인 업무에 탁월하여 보낸다고 하였으나, 실은 문제를 슈퍼바이저로 올리기 위함이었다. 연옥은 하련과의 여러 협업을 통해 그녀의 성실함을 알고 있다.

"참고 있을 거야? 억울하지도 않아?" 연옥이 가만히 물어본다.

"잘 모르겠어요. 사실." 하련은 준비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을 말하기가 아직은 조심스럽다.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싸우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  하련은 이런 연옥의 말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

문해를 마냥 원망할 수는 없다. 그도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다. 그의 신념이 하련의 관점에서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옳지 않을 뿐, 문해가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는 죄가 없다. 

VIP의 안전을 위해 SWEL을 이끄는 것이 문해의 신념이다. 이로 인한 어떤 사건이 불합리하게 하련에게 일시적으로 찾아왔을 뿐, 사실 문헤도, 하련도, 정문도, 술해, 눈썹이 짙은 노인도 그 누구도 악인이라 혹은 선한 이라 말할 수 없다. 하련이 수술실을 위해, 환자를 위해, 간호사를 위해 일하지만 그녀 또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은 마음속을 부인할 수 없다.  그저 이런 일상의 부딪힘으로 인해 작은 스파크가 일어날 뿐 개개인의 상황 따위는 무시한 채 그 멈추지 않는 거대한 흐름을 그저 유지할 뿐이다.  

오늘도 두 개의 행성은 여전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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