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수술한 환자 회진을 왔다. 전보다 많이 나아진 그는 비닐 커튼이 쳐진 큐브 방안에 혼자 있었다. 어느새 혼자 앉고 죽도 제법 먹는다.
"죽이 맛이 없소."
죽을 퍼먹던 그는 아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감추고 거만한 태도로 말한다.
"날 살리다니, 조직 다루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제법이군."
그가 죽을 한번 더 먹으며 말한다.
'뭐지? 이 노인은?'
정문은 의아해진다. 뭔가 아는 사람 같다. 일반인이 저렇게 말할 수는 없다.
"내 목숨 살려줬으니 나도 보답을 해야지.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정문은 얼굴이 하얘진다. 지금 저 남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일까 한참을 생각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사는 도시라니, 도저히 정문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로서는 그런 어두운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최고의 수준의 복지를 자랑하는 곳이 아닌가. 그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요. 나는 관심 없소."
"중앙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나를 수술한 것을 보면 당신도 이쪽 세계에 관심이 생기게 될 거야. 느낌이 그렇군."
그렇게 그는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문밖으로 나온 정문은 갑자기 추위를 느낀다. 이것은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 시각 흰 눈썹의 노인은 정문과 환자의 대화를 모니터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도대체 평소에 얌전하던 정문이 왜 돌변했는지, 어떤 환자 때문에 그렇게 병원을 떠들썩하게 하였는지 궁금해질 법도 했다. 환자의 얼굴을 자세히 본 순간 그는 미간에 깊은 주름이 만들며 찡그린다. 주먹을 쥐더니 책상을 탕 내리친다.
"사무장, 사무장"
흰 눈썹의 노인이 다급하게 사무장을 찾는다.
"우리가 당했어. 분명 그 자야."
"당장 병원 전체 실험실 보완을 강화해. 어서 비상이야!! 코드 12번 약품 있는지 확인해 "
노인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다. 사무장은 알겠다는 듯이 급히 벽면의 빨간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벽면이 열리며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없이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지하로 내려간다.
큰 문을 사무장이 카드키로 찍고 큰 문을 연다. 두 번째 문에서는 안면인식이 진행된다. 띠리링 맑은 소리가 울리며 커다란 철문이 열린다. 위에서 소독액이 뿌려져 나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온몸에 하얀 소독액을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문인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빨간 버튼을 누르자. 냉동고에 있던 앰플 12개가 올라온다.
"하나 둘,... 열하나... 한 개가 비었어. 코드 12번 약품 하나가 없어."
사무장은 망연자실한 듯, 비어있는 곳을 응시한다.
그 시각 음압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호사가 놀라 소리친다.
"환자가 사라졌어요."
모처럼 오프인 날 정문을 머리를 싸맨다. 그 환자가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도저히 떠나질 않는다. 게다가 새엄마의 실종과 동생 이야기까지 알고 있으니, 그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 많다. 다시 한번 그의 병실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는 사라진 상태였다.
갑자기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문은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깨어난 정문은 낯선 곳에 누워있었다.
"여기가 어디요"
아픈 머리를 만지며 정문이 물어본다. 예전의 환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건장한 청년이 서있었다.
"환영하네 인 더딥이지. 아무나 이 세계에 올 수 없다고."
"인 더딥..."
정문이 나지막이 되뇌었다.
"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지."
그를 따라간 길에 정문은 커다란 터널을 보았다. 실험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컴퓨터를 만지고 있고, 각종 약품은 벽면에 가득했다. 2중 3중으로 된 자동문을 열고, 음압 병실로 보이는 곳에 다 달았다. 그곳에는 얼굴이 하얀 여인이 누워있었다.
정문이 그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온 몸에 전율리 일었다.
"말도 안 돼, 내 동생은 죽었어. 도대체 당신들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정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눈을 벌게져서 사내를 뚫어지게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