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수술실에 불길한 전화가 울린다. 하련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전화 버튼을 누른다. 화면에 비뇨기와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신장 적출을 응급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마취과 컨텍이 안 되네요."
이번에 입사한 신입 의사인가 보다. 급히 회복실 연락처를 알려주고, 하련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가리킨다. 응급 수술이다. 2년 차 신입이랑 일하지만 일반외과와 비뇨기과를 했으니 다행히 수술은 그대로 진행할 수 있겠다 하련은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잠시 후 내려온 여자 환자는 바이탈이 불안정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다. 기록을 열어보니 어떤 이벤트로 인해 수술이 진행되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배는 임신한 배처럼 산처럼 부풀어 있었다. 저 배는 여는 순간 피가 철철 날 배이구나. 본능적으로 하련은 직감한다. 아니나 다를까 집도의는 알고 있는 지혈제를 중얼중얼 나열하며 분주히 왔다 갔다 한다.
밤에 진행되는 응급수술 중 비뇨기과의 응급 수술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신장 적출이라니 흔치 않은 케이스이다. 수술 준비가 되기도 전에 집도의가 먼저 들어와 있는 걸 보니 그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마취과도 피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계속 왔다 갔다 거리며 환자의 IV주사가 제대로 유지되는지, 환자의 혈압이 낮으니, 침대를 움직여 머리를 낮추고 다리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마취과의 신경도 온통 환자에게 쏠려있다. 이럴 때 분주하고 정신없을 때의 의사소통은 더욱더 정확히 조금 더 큰 소리로 해야 한다. 환자의 배를 열자마자 피가 뿜어져 나온다. 금세 수술 필드가 검붉은 피롤 물든다.
"거즈. 거즈 더."
마른 거즈를 마구 뱃속으로 쑤셔 넣는다.
역시 예상은 했지만 피가 많이 난다. 의사는 이미 배안에서 굳어 검게 변한 피 건더기를 손으로 건져 낸다. 검붉은 핏덩어리가 한 움큼씩 쏟아져 나온다. 어느새 트레이가 피떡으로 가득 찬다.
"지금 피가 많이 나는 응급수술을 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다른 수술방을 여는 것은 어려워요. 저희도 수술할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야 해요. "
피떡을 퍼내고 있는 와중에 마취과 의사가 누구와 통화한다. 하련은 뭔가 느낌이 싸하다. 지금 근무자 2뿐인데 이 새벽에 수술을 또 진행하려면, 현재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 간호사 한 명을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마취과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며 수술실 간호사 한 명을 더 요청한다. 하련은 순간 누구를 부를지 잠시 멍해진다. 그리곤 곧 연락을 취한다.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길게 울린다. 새벽 4시에 바로 전화를 받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선생님 미안한데. 제왕절개 응급수술이 있어서 그러는데 지금 SWEL기숙사예요?"
진공 드론을 이용하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새벽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런 상황을 마취과에 알리고, 비뇨기과 수술을 하며 하련은 급히 제왕절개 수술을 준비한다.
그 사이에도 환자의 배에서는 피가 잡히지 않는다. 검 붉은 피가 잔뜩 뭍은 거즈가 바닥에 나뒹군다.
"썩션."
"AUTO SUTURE 쓸게요. ENDO GIA 주세요."
신장을 거의 박리하고 마지막 혈관을 잡으려는 모양이다.
"혈관 잡으실 거죠? 길이는 60으로 드릴게요."
"더 긴 것 없어요?"
하련은 차분히 말한다.
"없어요."
"그럼 헤모 락 먼저 주세요."
하련은 차분히 말한다.
"헤모락 지금 없어요. 다른 거 드릴게요.."
원래는 헤모락 지혈 클립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하련이 미처 준비 못했고,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까우니 가지고 있는 다른 제품을 말한 것이다. 응급상황이니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그대로 이해하며 진행한다. 지금은 환자의 생명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비뇨기과 의사도 하련도 알고 있다. 그렇게 몇 번 자동 봉합이 이루어지고, 비뇨기과 의사는 한숨을 돌린다.
**헤모락HEMOLOCK: 혈관 및 조직 결찰
헤모 클립 HEMOCLIP: 혈관 및 조직 결찰
AUTO SUTURE, ENDO GIA: 혈관과 조직을 자르고 봉합하는 자동 봉합기
그 사이 산부인과팀은 발을 동동 구른다.
"저희 산부인과 인턴 선생님이 한 명 남는데 우리가 수술실을 도와주면 방을 열 수 있어요?"
마취과 의사를 하도 닦달해 대니, 급기야 지친 마취과 의사는 하련 간호사에게 전화기를 가리키며 좀 대신 받아달라고 한다.
"제가 말하니 도저히 안 되네요. 샘이 좀 상황 좀 말해주세요"
마취과 의사가 애처롭게 하련을 쳐다보며 귀에 연결된 전화기를 손으로 툭툭 친다. 하련은 피 거즈를 바닥으로 던지며, 자신의 귀에 장착되어 있는 전화기를 터치하여 전화를 받는다. 인사, 소개 따위는 지금 필요 없다. 상황만 간단히 말한다.
"수술실 간호사가 없어서 지금은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간호사 도착하는 대로 연락하겠습니다. "
"VIP 산모예요."
비뇨기과 환자가 워낙 응급이라 더 이상 설명 못하고, 수술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을 전한다. 몸은 정신없이 움직이지만 말을 그렇게 모질게 해서 하련의 마음에 계속 걸린다. 산부인과 제왕절개는 누가 뭐라 해도 초응급 아니던가. 그리고 생명이 탄생하는 고귀한 순간이다.
비뇨기과 의사가 두 번째 피떡을 한 움큼 건져내는 순간 하련은 정신없지만 다시 산부인과에 전화를 한다.
"산모는 괜찮으신가요? 근무자 오는 대로 최대한 빨리 준비할게요."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하련이 막 도착한 간호사를 보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가볍게 안으려 팔을 내밀었는데 간호사가 무릎을 굽히며 가뿐히 피한다. 역시 젊은 세대는 다르다. 하련이 멋쩍게 웃음을 짓는다.
비뇨기과 환자의 출혈부위를 겨우 잡고, 봉합을 할 때쯤 제왕절개 수술이 벌어진다. 제왕절개 수술도 나는 피의 양으로만 따지면 만만치 않는 수술이다. 출혈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배를 사정없이 갈라 수술을 진행한다. 아이가 5분 내에, 즉 산모를 통해 마취가스가 아이에게 영향을 주기 전에 빨리 출산하도록 스피드 있게 진행되는 수술이다. 수건 같은 거즈를 마구 뱃속에 쑤셔 넣으며, 지혈 따위는 하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가 손을 내민다. 신규 간호사가 칼을 조심스레 건네준다. 자궁을 칼로 조심히 자르는 과정은 제왕절개 수술 중 가장 중요하다. 자궁을 구성하는 3개의 막중 2개의 층을 칼로 자르는데 안쪽에 태아가 있으니, 태아에 손상을 가지 않게 , 아주 세심히 칼질을 해댄다. 칼질을 해가며 피가 나면 손가락으로 피를 걷어내고 계속 진행된다. 마치 초밥의 장인이 날렵하고 민첩하게 하듯이, 무심하게 칼질을 하지만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허연 풍선처럼 자궁 안의 양막이 툭 튀어나와 보인다.
"Tissue forcep."
간호사가 쥐어주자 사정없이 양막을 포셉으로 꼬집어 터트린다. 툭하며 안쪽의 양수와 피가 뒤엉켜 쓰나미처럼 수술 필드를 뒤덮는다.
"빨리 기구 다 치워"
하련이 들어가 있는 신규 간호사에게 재빨리 말한다. 아이가 나오는 과정에 수술기구가 필드에 있으면 다치기 때문에 빨리 환자 몸 위에 있는 기구를 치우라 한 것이다.
시커먼 아이의 머리가 보인다. 의사가 손으로 몇 번 자궁을 넓히더니 머리가 쏙 빠져나온다. 어깨가 나오고 흰색 탯줄이 보인다.
“탯줄 꼬였어. 당기지 마”
태아의 목에 두 번 칭칭 감겨있는 탯줄을 제거해야 하나 물커덩하니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양수가 노란색으로 변한다. 태변이 나온 모양이다. 아이의 얼굴이 더 시퍼레진다.
“칼 줘. 더 절개한다.”
그제야 탯줄을 풀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꼬마 스포이드로 아이의 입안에 있던 양수를 빼낸다. 하지만 아이는 울지 않고 얼굴은 점점 시컴해진다.
“소아과 왔어요? 인튜베이션 준비하고”
죽을 것만 같던 핏덩이가 조금씩 꺽꺽거리며 울음을 터트린다.
"VIP입니다. 제대혈 확보해 주세요."
하련이 큰소리로 수술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말한다.
"아, 맞다. 제대혈 뽑아야지. 베타딘 주세요."
정신없이 수술하고 있는 이에게 밖에 있는 하련이 소리친다. 이 아이는 VIP이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VIP의 혈통을 타고났으니, 제대혈 과정이 필수이다. 태반이 산모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오기 전 즉 혈류가 있을 때 제대혈을 채취하는데 이는 나중에 아이의 인공장기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될 것이다. 제대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공장기는 최상의 품질을 보장한다.
굵은 바늘을 탯줄에 꼽으니 곧 피가 쭉 뽑혀 나온다. 신생아 카트에서는 아이의 상태 확인에 분주하다. 하련은 이 아이를 쳐다보며 VIP의 운명의 시작을 함께 한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온갖 특권을 가지고 있구나.'
수술이 종료된 비뇨기과 집도의가 한마디 한다.
"그래도 사람 한 명 살렸네."
하련은 가만히 그 말을 부정한다.
"저 말은 틀렸어. 오늘 우리는 사람 3명을 살린 거야 비뇨기과 환자, 산모, 신생아."
그렇게 하련이 정신없이 수술실 복도를 뛰어다닌다. 엄청난 세트와, 인계 거리, 그리고 지저분한 방은 다음 출근한 데이번에게 깜짝 선물로 넘겨준다. 퇴근길에 바라본 두 개의 행성은 여전히 같은 곳에 떠있다. 정문과 맥주 한잔하고 싶지만, 너무 새벽이라 집에 가서 눈을 좀 붙여야겠다 생각한다. 저 멀리 여명이 떠오른 것을 본다. 옅은 분홍색 하늘이 꼭 막 태어난 아기의 피부 색깔 같다. 집으로 가는 진공 드론 안에서 갑자기 하련의 얼굴이 굳어진다.
"선생님 방금 그 비뇨기과 환자 미확인 전염병으로 결과가 나왔어요."
"검사 결과 괜찮았다 그랬잖아, 방금 수술했던 수술방 이중 폐쇄해. 세트 이중 처리하고, 산부인과팀과 신생아팀에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해. 미확인 수술을 동시에 했고, 거기서 일했던 간호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동시에 같이 일해서 감염의 위험성이 있다고, 지금 병원으로 갈게 난 바로 슈퍼바이저에게 보고해야겠어. 수술한 애들 바로 에어 소독 박스에서 소독하고 바이러스 검사 의뢰할 테니 병원에서 대기하라고 해. "
"새벽에 수술한 환자에게서 미확인 전염병이 발견되었습니다. 일단 수술방 이중 폐쇄시키고 소독 시스템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시간 정도 소독하면 정규 수술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해가 눈썹을 찡그리며 하련을 쳐다본다.
"뭐? 딜레이? "
문해가 어이없게 하련을 쳐다본다.
"VIP 수술 잡혀있는 거 안 보여? 그리고 헤파필터보다 천배는 더 좋은 시스템인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해?
청소 로봇 보낼 테니까 수술 그대로 진행시켜. 다 무균적 공기로 순환되었어. "
"그 환기 시스템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떠다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즉각 환기시스템 폐쇄하고 다른 방에서라도 수술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그 방은 철저한 소독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오늘 그 방에서 VIP 라이브 수술 있는 날이야. 모야모야 디지즈 수술 새로운 기법을 전 우주에서 최초로 시연한다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이날을 위해 얼마나 그동안 준비했는지 알아?"
문해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진다.
하련도 지지 않고 말한다.
"새벽에 수술한 간호사들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미친년, 너 나가."
문해가 소리를 확 지르며 돌아선다. 돌아선 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하련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나온다. 수술방에 들러 술화간호사에게 말한다. 오늘 라이브 수술의 책임자가 술화이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야만 한다.
"오늘 새벽에 그 방에서 미확인 전염병 환자를 수술했어. 환자 상태가 좀 이상해서 혹시 금방 말고 다른 방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어레인지 할 수 있겠어?
"네 알아보겠습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쉬세요."
전화를 끊은 술화의 표정이 싹 변한다. 이번 수술을 다른 방으로 어렌지 하라니. 오늘 수술을 위해 한 달을 넘게 리허설하고, 준비한 일이다. 그깟 전염병으로 나에게 온 기회를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심플 클린 시스템 그대로 한 번 더 돌리고, 수술 그대로 진행한다."
건강했던 젊은 여자가 급작스런 신장 출혈로 신장 적출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확인 전염병으로 확인되었다. 혹시 무슨 관련은 없을까. 수련은 정문에게 전화를 건다.
"이유는 묻지 말고, 어제 수술한 우리 애들 바이러스 검사 좀 해줘. 부탁해. 비밀로 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