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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21. 2024

오만과  편견. <입국신고서를 못 쓰는 손님>

계몽:나는 미처 몰랐네.


 오늘의 이야기는 코로나가 한바탕 전 세계를 휩쓸기 전으로 돌아간다. 길 가다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 어르신들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 전, 해외여행 시엔 방문 예정인 해당국가에 입국하려면 거의 절대적으로 ‘입국서류 작성‘이 필수였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입국신고서를 나눠주는 서비스 시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대 산맥이었던 분위기는 어느 순간 저비용항공사들이 갑자기 많이 생기며 흐름을 바꿔놨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여행사들이 저비용항공사와 결합한 해외여행 상품을 꽤 합리적인 가격대로 구성해서 기존에 대한과 아시아나 만으로 이뤄졌던 가격 꽤 나가는 패키지 상품에 비해 LCC 해외 패키지여행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뭐, 지금도 FSC와 LCC 패키지 가격이 다르고 홈쇼핑 채널에서도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


 부담 없는 가격의 해외여행 패키지가 많아진 덕분에 항공기 여행이 다소 생소한 어르신들로만 구성된 단체여행객이 크게 증가했다.

(실제로 여권 보면 다들 빳빳한 새 여권이심…)

 

 우리 회사를 이용한 패키지 상품의 어르신 단체가 많이 타시는 인기 노선은 바로 태국의 방콕과 라오스의 비엔티안!

 

 이 두 나라는 2010년대 중 후반쯤에 수기작성 입국서류가 없어졌는데, 서류작성이 필수였던 시기로 돌아간다. 자 이제 진짜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만석으로 손님을 태워 인천에서 출발해 방콕으로 가던 길이었다. 승객들 거의 모두가 패키지여행을 가시는 어르신들이었다. 189명이 모두 하나의 큰 패키지가 아닌 각기 다른 여행사들의 패키지로 오신 그룹의 구성으로.


 간소하지만 배는 찰정도의 승객용 식사 서비스를 회수까지 완벽히 마치고 크루들이 가장 비선호하는 ‘서류 배포’ 서비스 시간이 됐다.

 

 이유인 즉, 서류 배포 자체는 단순하고 쉬운 일이지만 한분 한분 나눠드릴 때마다 설명과 배포에 소요시간이 많이 든다. 심지어 오늘은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이 타신 상황!


‘글씨가 작아. 작도 너무 작아… 나 눈이 안 보여. 여행 간다고 돋보기 안 가져왔는데?’


‘영어로 쓰라고? 자네, 내가 영어를 할 줄 알 것 같아 보이는가?’


등등…



*예전에 우리 회사는 저비용항공사 중 유일하게 무상으로  승객 식사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승무원들은 기내식, 서류, 면세, 유상 판매 모든 서비스 프로시져를 끝내야 개인식사가 가능하다. 예전 기준이라면 서비스 종료 시간을 단순계산으로 이륙 후 2시간~2시간 30분 뒤에나 먹을 수 있음. 점심이나 저녁을 안 먹고 온 크루라면 정말 배고프고 힘들다. 저녁 출발 편 비행기를 한국시간 시간 기준으로 약 21시에서 23시 사이쯤 되어야만 저녁 먹기 가능했다.




 여기서 문제는 한 분을 써드리기 시작하면 주변분들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승객의 서류를 승무원들이 다 써드려야 한다. 4명의 승무원이 189명의 서류를 일일이 수기로 다 써야 한다고 상상해 보시라. 아니 직접 작성 가능한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좋은 마음으로 대신 써드렸다가 현지 입국장에서 승무원이 작성한 서류에 문제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물론 가이드/인솔자가 탑승하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특정 연도를 기점으로 인솔자들이 자기 담당 그룹 승객의 입국 서류를 대신 작성하는 일에서 손을 뗐다.)





 일단 서류를 전체적으로 배포 완료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필 두 명의 크루나 끼니때를 놓쳐 매우 배고파하며 힘든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기에.

(승객들 챙김이 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하지만 나는 승무원들도 챙겨야 하는 위치다.)


 다행히 서류 배포를 하며 작성 관련 별다른 문의는 없었다. 왜냐면 방어장치를 만들어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어장치가 무엇이냐?


 바로 나 개인적으로 입국서류 가이드라인을 여러 장 출력해 간다.

 작은 글씨를 크고 굵게! 영어표현을 한국어로 바꿔서! 맨 밑에는 ’꼭 영어로 작성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포함된 종이를 서류와 함께 나눠 드린다.


 성공적인 서류 배포를 마쳤다 생각하고 갤리로 돌아와 한숨 돌렸다.




 배고픔에 얼굴이 흙빛이 된 후배 승무원에게 먼저 식사하라고 뒷갤리로 보낸 뒤, 홀로 배고픔을 삭이며 앞갤리에 있던 참이었다. 서류 배포가 끝난 지 몇 분 지나지 않았을까?


 동네 미용실에서 한 듯 보이는- 폭풍이 몰아쳐도 혼자 짱짱하게 살아남을 것만 같은 빠글빠글하게 볶은 파마머리, 얼굴과 손엔 자글자글한 주름, 누가 봐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보낸 시간이 많음을 알게 해 주는 검게 그을린 피부. 닦았다고 닦았겠지만 흙이 오랜 시간 껴서 까매진 손 끝, 여행 간다고 신경 써서 차려입고 오신 티가 팍팍 나는 반짝이가 달린 화려한 꽃무늬 패턴 옷, 자식들이 새신 신고 가시라고 사준 듯한 때하나 묻지 않은 하얀 운동화. 추정나이 약 70세 초중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영락없는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며 사는 할머니. 이런 할머니가 앞갤리로 직접 찾아오셨다. 보통 앞갤리에 손님이 오는 일은 거의 대부분 화장실 이용을 위해서였다.


‘손님 화장실 가시려고요?’


‘화장실 아니야 아가씨, 나 이것 좀 써줘.’


‘손님. 제가 대신 써드렸다가 혹시 모를 문제가 발생될 수 있어서 어려울 것 같아요. 글씨가 안 보이시거나 영어로 작성이 어려우시면 옆에서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자주 발생하는 레퍼토리였기에 달달 외우고 다니는 시나리오대로 응대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최대한 지으며.


 내 대답이 끝나자 할머니는 복대에서 꺼낸 동그란 작은 동전지갑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오천 원을 꺼내셨다.


 설마, 서류 써달라고 주시는 건가? 생각했는데. 응 그렇다. 내 예상이 맞았다. 돈을 꺼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던 찰나.


‘아가씨, 귀찮게 해서 미안해. 근데 조금 창피한 이야기지만 내가 시골서 농사만 짓고 살아서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이거 줄 테니까 나 좀 도와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순간 머리를 세게 그것도 아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표정과 눈빛엔 할머니의 말에 단 한 줌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나의 무의식 속엔 어마무시한 오류가 있던 것을 이때 인지했다.


 나는 늘 아니 그러니까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크루들은 어르신들이 서류를 쓸 줄 모르니까 귀찮아서 대신 써달라고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거의 99.9999% 근데 글을! 글자를 정말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수많은 비행에서 수많은 어르신들이 서류를 써달라고 했던 모습들이 눈앞에 영화처럼 지나갔고 순간 멍해졌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네, 이거 제가 써드릴게요. 근데 죄송하지만 이 돈 받을 수 없어요.‘


‘아니야 미안해서 그래 내가. 그냥 받아줘.’


‘아휴~ 안 돼요. 저 이거 받으면 회사에서 잘려요!‘


‘아이 주머니에 얼른 넣어둬. 아무도 없잖아. 미안해서 고마워서 그래. 내려서 과자라도 사 먹어.‘


 자꾸만 손에 오천 원을 쥐어주신다.


‘아유 안 돼요 안돼. 저 돈 주시면 안 써드릴 거예요.’


 승객으로부터 금전적인 것 그 어느 것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할머니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알겠어. 정말 고마워 아가씨. 근데 나랑 같이 온 할망구들도 글을 몰라. 다들 우리 동네서 같이 온 친구들이야.’


‘네 알겠어요. 그러면 할머니 친구분들 것도 제가 써드릴게요.’


 그렇게 손에 쥐어진 7개의 여권들. 이미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기에 일행들도 글을 모른다는 말에 사실의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조사관이 아니니까.


 되려 조심스러워졌다. 어쩌면 글을 모른다는 치부를 용기 내서 드러낸 할머니께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마치 역린 같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엔 입국 시에 문제가 발생될 성싶어 여권들을 챙겨 들고 어르신이 일행과 함께 앉아있는 자리로 찾아갔다. 직업, 주소, 소득이 얼마냐 까지도 묻는 요상스러운 체크란이 있던 태국 입국 서류였기에 정확하고 사실적 작성이 필요했다.


‘손님. 저 이거 서서 쓰려면 다리 아파요. 주소도 써야 되고요. 쓸게 아주 많아요. 그래서 그런데 여기 손님들 옆에 앉아서 쓸래요.‘라고 말하며 복도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대장격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자, 우리 아가씨 다리 아프지 않게 안으로 다들 쭉 당겨 들어가!’


?

??

???


 세 명이 앉는 의자. 팔걸이를 올린다고 해도 성인 4명이 밀착해 앉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이즈.

그렇지만 쫌 당겨 앉았다고 금세 만들어진 내 엉덩이 반틈 걸칠만한 소박한 공간.


‘아가씨 앉아 앉아. 앉아서 써.’


‘네 니오.’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거절해도 내가 앉을 때까지 권유하며 포기하실 어르신들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내가 앉음으로써 미안한 마음이 한 줌이나마 가벼워지실 거란걸.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앉아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서류를 다 써드렸다.




 비행기가 어느덧 방콕 수완나품공항에 무사히 도착해 내리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후배 승무원과 함께 하기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익숙한 얼굴, 아까 그 할머니가 걸어 나오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평소보다 더 공손하고 진심을 담아 건강히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내 손을 꼬-옥 잡으시면서.


‘아가씨 우리 때문에 고생 많았어. 정말 고마워. 복 많이 받을 거야.‘


 순간 눈물이 팡 터졌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비행기가 지연되어 억울하게 욕받이가 되어도, 환자가 실려 나갈 때도 아무리 힘들고 지쳤던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수천번의 하기 인사를 하며 눈물이 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후배에게 하기 인사를 마저 부탁한다고 말하고 화장실로 급하게 들어갔다.


 마음이 먹먹하고 부끄럽고 복잡한 여러 감정들이 뒤섞였지만 빠르게 추스르고 다시 나가 나머지 승객들을 위한 하기 인사를 무사히 마쳤다.


  비행업무가 완전히 끝나고 나는 승무원들을 불러 모아 오늘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 오늘 오랜만에 손님 입국서류를 써드렸어요.’


‘어머! 사무장님이 직접요? 다른 일행분 안 계셨어요?’


‘일행분 계셨는데, 글을 아예 모르신데요. 근데 같이 오신 일행분들도 다들 비슷한 상황이라서요.’


‘아, 근데 저는 몰랐어요. 글을 모르실 수도 있구나. 한 번도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오늘 겪은 일에 대해서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생각했다.


 문맹. 참 생소하기도 하지.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 시대 흐름에 잘 맞춰 자랐고 그런 삶 속에서 살아왔기에 문맹이란 그저 교육 등 사회적으로 배움의 인프라가 부족한, 저 어디 오지에서 일어나는 해외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만 해도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을 꼭 챙겨보시고 하루종일 뉴스만 나오는 라디오를 항상 틀어놓아 한국의 정세뿐만 아니라 해외 상황 돌아가는 것도 빠삭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라서 모든 할머니는 다 우리 할머니 같을 줄 알았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순수하게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아, 이 얼마나 우매한 사람인가 나는! 세상물정 다 안다 생각했던 나란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뼛속깊이 깨달았던 날이다.




 저 날을 기점으로, 나는 대필 서류 작성 요청하시는 어르신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 할머니 승객을 만난 뒤로. (물론, 어르신 단체가 많은 비행에 한해서!) 오히려 먼저 기꺼이 손 내미는 오지랖 승무원이 됐다.


‘저기 아가씨! 나 이거…’


‘아! 손님. 이거 서류에 글씨가 너무 작지요? 돋보기 안 가져오셨어요? 에이 제가 대신 써드려야겠네! 다음부턴 꼭 돋보기 챙겨 오세요~ 근데 저 이거 여러 명 것 쓰려면 주소도 필요하고 직업도 알아야 하고 손님이 마지막에 직접 사인하는 것도 제 눈으로 봐야 해요. 옆에 자리 빈자리죠? 한 칸 안으로 들어가 앉으시면 제가 여기 앉을 테니까 저 서류 쓰는 거 구경해 주세요.‘


 글씨가 작아서, 영어를 몰라서.


 다 상관없었다. 어쩌면 표면적인 이유지만 내가 더 깊이 알 수 없는 어떤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종종 매체를 통해 ‘어르신, 키오스크 사용법 어려워해.’ 등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어르신들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고충들을 접하며 내가 죽을 때까지 마주 칠일 없는 그 할머니는 같은 하늘아래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실지 아주 가끔씩 궁금하다.


 웃긴 표현이지만 날 계몽시켜 주신 감사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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