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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ug 08. 2024

론세스바예스



 22년 12월 03일 발 칼로스-론세스바예스 2일 차의 기록을 요약해 보자면, 16km 거리를 약 오전 8:40부터 오후 4:20까지 총 7시간 40분 소요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주 유용하게 쓰인 애플워치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는 사립도 있지만 공립 알베르게에서 자는 것으로 전 날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며 결정했었다. 사진으로 찾아본 공립 알베르게는 내 맘에 쏙 들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멋진 양식의 건물에 침대가 50갠가 100개 넘게 있는 제법 웅장한 구조였기 때문에! 내일은 저 멋진 곳에서 자겠구나! 하면서 두근두근 기대반 설렘반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공기반 소리반)


 오늘 하루 진짜 죽을 뻔했지만 그래도 살아서 무사히 잘 도착해 냈다는 안도감 한껏 안은 넝마쪼가리 같은 모양새였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크레덴샬(순례자 여권)에 쎄요(인증도장)를 받기 위해 사무실 한편을 찾았다.


 정확한 알베르게 가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녁 비용 포함이었나 아니었나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대략적인 내일의 퇴실 시간과 저녁식사가 가능한 곳을 안내받고 벌써 시작한 지 이틀 만에 각각 다른 3개의 쎄요를 보니 참 뿌듯했다.


 수녀님을 따라 오늘 내가 잘 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그렇지만 도착한 곳은 내가!!! 사진에서!!!! 보았던!!!! 웅장한!!!!! 그곳이!!!!! 아니었다……


 진짜 거짓말 좀 보태서 우리 집 거실 화장실의 한 세배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방이었는데… 오래돼 보이는 빨간색 철제 프레임으로 된 이층 침대가 7개로 총 14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늦은 시각 두 명이 더 와서 샤워실, 화장실 가는 문 앞쪽으로 침대를 하나 더 가져다 놔서 총 16명이 잘 수 있었고 내가 자는 방은 만실이 되었다…)


좌- 내가 잤을때의 구조, 우-원래의 구조(?) 사진 출처: 나무 님의 블로그


 안내받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해 쉬고 있는 분위기가 느껴져 숙소의 모습은 사진으로 담아 두지 못했다.


 방의 풍경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흐린 날씨 탓일까, 아니면 진땀 빼는 오늘의 코스를 걸어와 지친 탓이었을까? 공기는 습했고 무겁고 고요했던 요상스러운 분위기였다.


‘수녀님, 제가 사진에서 본 알베르게랑 좀 다른 것 같아요! 여기가 맞나요?’


‘네 여기가 맞아요. 겨울이라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많지 않아서 이곳으로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화장실과 샤워실은 저기 문으로 가시면 되고요. Sunny가 사용할 침대는 XX번이에요. 푹 쉬세요!‘


 떼잉… 사진을 보지 말걸…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마음에 새기며 내가 여기 뭐 놀러 온 것도 아닌데 하룻밤 잘 수 있는 장소와 침대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짐했다.


 

까친연 카톡방에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는 예전 숙소를 이용한다고 정보 공유를 했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빨고 샤워도 한바탕 하고 나왔더니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방의 불은 꺼져있었다. 이해한다. 오늘의 나만 고단했으랴? 각자의 길에서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을.


 방에는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한 명은 아까 하늘에서 보내준 길잡이 친구 눈을 반짝여가며 일기를 쓰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한 명은 몹시 지쳐 보이는 키가 작은 친구.


 반가웠다. 몹시 반가웠다. 오늘의 길에서 제대로 마주친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서 입에 거미줄 쳐가며 매일매일 외롭게 걷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겨울 극악의 비수기라 아무도 없을 줄만 알았는데… 내 멋대로 혼자서 마음속으로 동지애를 꽃피워댔다.


 말없이 어색하게 멋쩍은 표정으로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침대에 누웠다.


 한 30분 지났을까, 갑자기 방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지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론세스바예스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이곳에서부터 시작점으로 걷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제이미, 루디, 기욤, 세바스찬, 소피아.


 고요했던 방은 순식간에 활기를 띈 따뜻한 공기가 돌았다.


 작은 방안에 사람이 한가득이었지만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복작복작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나도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조용히 옷을 챙겨 나와 저녁 식사 제공 시간 전까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눈 내리는 모습을 한창 감상 중이었다.


‘눈은 따뜻한 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봐야 예쁜 거였구나… 그리고 여기의 폭설은 강원도 철원이 눈이 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었던.


 문이 끼-익하며 열리더니 처음에 방에 3명만 있을 때 본 키가 작은 남자가 나오더니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색한 공기를 몹시 못 견뎌하는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


‘안녕? 불어불어불어‘


 그 친구는 프랑스에서 왔나 보다.

영어 할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번역기를 써서 잠깐동안 스몰톡을 했다.

뭐 대충 너는 어디서 왔냐 언제 어디서 시작했냐 뭐 그런 상투적인 것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추위에 손이 꽁꽁 얼어 자판기 입력도 덜덜 떨어가며 하다가 한계를 느꼈다.


 그 친구는 담배를 연달아 두 개를 피우더니 도저히 추워서 안 되겠다는 모션을 취하며(이 친구 경량패딩에 반바지, 슬리퍼 신고 있었음. 잘 가~ 프랑스에서 온 기욤!) 안으로 들어가던 찰나 아까 낮에 산속에서 만났던 나만의 길잡이 친구가 나왔다.


 이름은 폴,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는 둘이서 뭐라 뭐라 얘기하다가 해가 져 쌀쌀해진 공기 때문에 근처에 Bar에 가서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게 됐다.


사진으론 감이 안오실테지만 저기 쌓인 눈의 높이는 내 가슴정도까지 왔다.



 

 저녁식사는 오후 7시에 제공될 예정.

앞으로 약 1시간가량 정도 뒤였다. 우리가 들어간 Bar에는 이미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폴과 나는 입구 벽 쪽에 붙어있는 2인용 작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시켜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어디서 왔어? 난 한국에서 왔고 생장에서부터 시작했어. 오늘이 이틀째야.’


‘나는 네덜란드에서 왔고 암스테르담에서부터 걸어왔어! 이제 거의 걷기 시작한 지 6개월 좀 넘었어!‘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아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암스테르담에서부터 걸어서 6개월이 넘었다고? 세상에나.


 이제야 낮에 산에서 마주쳤던 이 친구가 그 눈밭을 스틱도 없이 날다람쥐처럼 샥샥샥 걸어 올라가 빠르게 살아졌는지 이해가 됐다.


일단 침착한 척하자.


‘아? 진짜? 대단하다. 근데 실례가 되려나? 키가 몇이야? 너 되게 빨리 걷던데? 나 네가 찍어두고 간 발자국 덕분에 잘 뒤따라갔어! 하하하 고마워’


‘하하하. 내가 그랬나? 나 208cm야! 몇 개월째 걷는 중이라 내가 빨리 걷는 것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 너는 한국에서 왔다고? 혼자서? 한국에서 오는데 얼마나 걸렸어? 그나저나 너도 대단해!‘


 일단 그 친구의 키에 한번 놀라고 유창한 영어실력에 한번 더 놀랐다. 어째서 그리 영어를 잘하냐고 물어봤더니 네덜란드는 전 세계 비영어권 나라 중 영어를 제일 잘하기로 1등 하는 나라라고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너는 직업이 뭐야? 나는 선생님이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어쩌다 시간이 생겨서 오랜만에 긴 휴가를 즐겨보려고 왔는데 너는 어쩌다 겨울에 온 거야?‘


‘아, 나는 비행기 타는 일을 하고 있고! 나도 코로나 때문에 뜻밖에 시간이 생겨서 그냥 얼떨결에 왔어. 지금이 아니면 여기를 내 생애 단 한 번도 못 와볼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지금 온 거야. 나에겐 코로나의 축복이라고 볼 수 있겠네! 나는 직업상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거든.‘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그것 참 특이하네… 이해할 수 없어!‘


 그랬다. 뭐… 나라별 특징이겠거니… 내 직업의 특징성이겠거니… 속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약 한 시간 남짓한 우리의 대화는 꽤나 즐거웠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막 갖다 붙이니까 말이 술술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이 친구와 대화하며 새롭게 안 사실들도 내 흥미를 돋웠다. 평소 내가 모르는 영역의 남의 이야기 듣기는 언제나 흥미로워하는 탓에!


 일단 네덜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나에겐 매우 생소했는데 이 친구 말의 일부분을 기억해내보자면 ‘휴가, 휴식‘에 대한 개념이 한국의 통상적인 개념과는 많이 달랐다.

 

 요즘 한국사람들에게 휴가란(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해외의 휴양지 리조트에서 푹 쉬거나 기호에 따라서 간단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등… 정말 문자 그 자체로 휴양을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 휴가의 모습은 대체로 휴가엔 거의 가족들이 함께 또는 친구와 아니면 혼자라도 어딘가 떠나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휴양이 아닌 자기 계발적 휴가를 즐긴다고 한다. 예를 들면 폴처럼 해외를 걷는다거나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무튼 몸을 가만히 쉬게 두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몸으로 무언갈 한다고 했다. 그게 바로 네덜란드 대분의 사람들의 보편적인 휴양이라고 했다.


‘우리 부모님이 늘 말씀하시길,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도태되지 않도록 살기를 항상 강조하셨어.’ 라던 말은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이후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Bar안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은 정확히 오후 7시가 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식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도.



 

 식당은 무슨 소규모 연회장 같은 사이즈였다. 널따랗고 큰 원형 테이블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식기가 세팅된 우리의 식사 장소는 어느새 많은 순례자들로 붐볐다.




 식사는 재밌게도 코스요리 형태로 차례차례 나왔다. 사진엔 없지만 후식도 있었다.


 빠에야와 감자튀김 그리고 이베리코!


 오늘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새도 딱딱해서 못 쪼아 먹을 반쪽짜리 또르띠아였기 때문에 금세 첫 접시를 싹싹 비워냈다. 다들 와인도 한잔씩 서로 따라주길래 얼떨결에 채워진 나의 잔.


 와인잔이라고 하기엔 내가 아는 와인잔과 다르게 그냥 물컵 같았지만 와인잔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아야지 뭐.


 이베리코가 나왔을 땐 내가 한국에서 즐겨 먹는 이베리코 집 고기를 생각하며 한입 딱 베어 물었는데! 예상보다 퍽퍽한 식감에 놀랐었고 또 이미 빠에야를 두 접시나 먹어 고기 들어갈 배가 없었다.


 고기 두쪽을 남긴 날 보고 폴은 안 먹을 거면 자기가 먹어도 되냐고 아주 정중하게 물어보길래 고기가 식기 전 냉큼 줬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별다른 말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간간히 호응만 했을 뿐. 아마도 상당히 피로했던 상태였나 보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었다. 유럽사람들은 식탁에 앉으면 기본이 2-3시간이라고.


 집에서 먹으면 30분 외식하면 50분에서 1시간 컷으로 식사를 하던 나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었는데 저녁 식탁에 앉은 시간을 기준으로 침대에 가서 쉬려고 시계를 보니 거의 1시간 40분이 지나 있었다.


 식곤증으로 상당히 졸리기도 했고, 내일도 다음 목적지에 가려면 걸음 느린 나는 남들보단 조금 더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에게 굿 나잇 인사를 하고 식당을 홀로 빠져나왔다.


식당을 빠져나와 알베르게로 가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조명과 분위기 정말 완벽해! 내내 감탄을 해가며 이동했다.


저 앞에 보이는 오늘의 알베르게




 숙소에 들어갔다. 식사 자리에서 빨리 나온 편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자는 방의 사람들은 식사도 안 했는지 거의 모두가 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도 조용하게 양치를 하고 잘 준비를 끝냈다.


 콘센트가 자리마다 없는 구식 알베르게였기 때문에 길에 늘어져 1인 1구 사용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멀티어댑터엔 운이 좋게도 내쪽에 자리가 하나 남아 사용이 가능했다.


 남들은 핸드폰 충전하기 여념 없는데 나는 충전대신 여행용 전기장판 사용을 선택했다. 오늘 하루 힘들고 피곤하니 뜨끈하게 지지고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누워서 내일의 목적지를 살펴봤다. 내일은 Zubiri로 이동할 예정이다. 숙소는 따로 검색하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많이 가는 공립 숙소에 가면 될 거란 생각에!


 숙소를 보는 대신 길의 모습을 살폈다. 고도는 얼마나? 내일의 날씨는? 이런 것들 위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던 중 어느덧 시간은 10시가 되었고 별안간 수녀님이 오시더니 잠을 자는 사람이건 안 자는 사람이건 10시는 불을 끄는 약속의 시간이란 말을 남기시곤 불을 끄고 나가셨다.


 그리고 순식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진 방안.


 잠을 자려고 하던 순간 나는 내 두 눈으로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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