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누가 먼저 올세라 서둘러 경로당 문을 열어 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춥든 덮든 오전 9시 전에 문 여는 일이 우선이다. 경로당 총무는 전혀 생소한 일 울며 겨자 먹기로 어렵사리 시작했다. 근데 꿈속에 서나 볼 수 있는 진솔하고 신선한 삶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욱 심혈을 기울여 애착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 덕분에 희열과 보람이 하늘에 별을 따온 의기양양한 삶으로 바뀌었다.
잠이 들자 나는 인생은 행복한 것이라고 꿈꾸었다.
깨어나자 나는 인생이 봉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봉사했고 봉사하는 삶 속에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타고로-
띵 똥... 이 추운 밤에 누구지?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경로당 회장이다. 큼직한 쇼핑 가방을 들고 있다
"아니 웬일 이세요?" 말 맺기도 전에 멋쩍게 불쑥 가방을 쥐어주다.
"이게 뭐예요?" 하고 재빠르게 열어봤다. 핑크빛 체크 두툼한 양면패딩 점퍼 다.
"어머나 명품!"
캐주얼하고 멋스럽다.
따뜻하겠다!
"근데 이 좋은 것을 왜 내게?"
"네"~ 추운 날에도 아침부터 애쓰는 총무 볼 때 늘 고맙고 미안했어요!"
"뭔가 따뜻한 선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 어울릴 것 같아 준비했어요"
"그래요!"
사양할 틈도 없이 입어 봤다
"어머나 회장에 따스한 마음이 몽땅 점퍼로 옮겨왔네요!"
푸근한 밤!
2015년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보며 서울을 막 벗어난 고양시로 이사 왔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버스로는 눈 깜빡하니 하차다. 아직 100 퍼센트 입주가 안 된 21층 신축 아파트다. 입구에 들어서니 정면 중앙에 아담한 건물 2채 "뭐지?" 얼른 가까이 가 봤다.
"응~~ 경로 당과, 어린이집" 역시 사람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우리 집은 17층. 채광도 좋고 막힌 곳도 없다. 위층에서 내려다보니 와! 쭉 뻗은 신 장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 가슴이 뻥! 독수리 날개치고 창공으로 훨훨 "시원하다".
80이 다 되록 평생 단독 주택에서만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왔다. 심플한 구조, 모던 한 실내 장식이 새로운 감각으로 몸은 벌써 예전의 3,40대 민첩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할 규칙, 에티켓도 많다. 이웃집은 누가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시대적인 사회 통념 상 서로 무관심이 좋다고 하니 내 성격에 아쉽다.
이사 며칠 후 우리 동 엘리베이터 앞,
“어머나 이게 누구세요!?”
마주친 두 사람 동시에 깜짝 놀랐다.
한동안 손 놀 줄 모른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글쎄요 아마도 한 30년은 됐겠지요!?"
"그럴 거예요!"
“어떻게 여기서.... 신기하네요!”
"작년에 이사 왔어요”
“그래요” "난 며칠 전에”
"외딴섬으로 이사 왔나 하고 너무 서글펐는데 든든한 백이 기다리고 있었군요!".
우리는 함빡 웃었다. 농담할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는 아니다. 교회는 다르지만 같은 장로 직분자로 가족들이 아프면 달려갔던 병원장 부인이다. 서로 안부를 묻고 같은 단지 같은 라인에서 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헤어졌다.
어느 날 지하철역 나오자마자 "앗! 버스" 훌쩍 뛰어올랐다. 사실 기다리기 싫어 늘 걸어 다녔는데 운 좋다! 타자마자 마주친 눈
"또 만났네" 반갑게 미소 짓는 순간 정류장이다.
"왜 차는 어떻게 하고?'
"이렇게 만나려고 했나 보죠"
"그러게요!"
둘은 어깨를 나란히 아파트를 향해 걷고 있다.
바로 이때 "오늘 잘 만났어요! 할 말이 있어요"
"그래요!"
뭔가 망 서리다 결심하듯,
"실은 난 이 아파트 경로당 회장이다"
"아 그래요!"
주민들 권유에 부득불 회장이 됐다고 한다. 근데 문제는 경로당 총무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일 할 사람 보내 달라고 오랫동안 기도 중이라고 한다.
나름 오늘 첫 만나는 사람을 기도 응답이라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이다.
"아니 나를?"
"네~ 같이 일 해 보지 않겠어요?"
뜻밖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순간 불합리한 조건들이 떠오른다.
바쁜 내가 어떻게, 사회에서는 봉사해 본 일도 없는데!
더군다나 내가 벌써 경로당에 들락거릴 나인가? 묘한 기분이다. 하기야 나도 75 세지, 착각은 자유라 했던 가! 어쨌든 경로당 총무는 싫다. 생각해 보자고 헤에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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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거절하지?" 온갖 부정적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 예삿일은 아니다. 기도 응답이라고 했는데 섣불리 거절하려니 덜컥 겁이 났고, 수락? 선뜻 내키지 않았다. 밤늦도록 궁리했지만 묘안이 없다. 오히려 따끔한 말이 자꾸 떠 오른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이웃, 동료, 친지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 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2절)
크리스천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살던 내게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 허다한 날 내 교회, 연합회, 때론 국외를 넘나 들며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근데 마을 경로당 20명 남짓 그리 어렵지 않은 일 구태여 거절할 이유가 인단 말인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게다가 17층 우리 집에서 빤히 내려 다 보이는 경로당 매일 외면하고 살 수 있을까!? 지금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찰나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냉철하게 생각해 보니 모두 나의 교만 때문이다. 이쯤에서 톡톡히 회개하고 반성하자! 이번 기회를 통하여 참신한 삶을 일궈 보자.
노년의 같은 처지에. 지나친 형식과 외식은 필요 없다. 소소한 것부터 베풀고 친근하게 하자. 사랑을 주고 나눔으로 재미있는 일상 따뜻한 이웃을 만드는데 미흡하지만 한몫하자.
늦게나마 언제 어디서나 편견 없는 "그리스도" 정신으로 봉사하리라 다짐했다.
아! 이제야 내 맘에 진한 감동과 기쁨이 감돌다.
상쾌한 아침 어제와 달리 가벼운 마음이다. 거울 속 내 얼굴 싱글벙글 일찌감치 회장을 만나 경로 당에 왔다. 벌써 대여섯 할머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를 보더니, 웬 낯선 사람인가? 의아한 표정이다.
“어떻게 왔소”수다쟁이인 듯 사투리 할머니가 입을 열다. "여긴 경로당이다. 아직 올 나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말을 건넨다. 그냥 웃었다. 염색한 단발머리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애 띤 옷차림, 얼핏 오해할 만하다.
어느새 다 모인 듯 엄청 시끄럽다. 그제야 회장이 총무로 온 할머니라고 정식 소개하다. 의문이 풀렸는지 얼굴을 마주 보며 하하 호호 할머니들 웃음소리에 경로 당이 들썩들썩하다. 한바탕 폭소로 총무 첫 일과가 시작됐다
"오늘보다 재미있는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