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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Dec 23. 2022

단어 4

:연극

 단어 4

: 연극


       가끔 생각이 논리를 넘어서 비약적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연극에 대해서 끄적인 것이 그러한 경우다. 생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지만 비약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 생각을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끄적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때 내가 쓴 표현에 함축된 의미가 오해 없이 전달되려면 어느 정도 개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연극>에 대하여 쓴 이번 글에서 '실재', '현실', '살해'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먼저 밝혀보도록 할 것이다.


    먼저 <연극>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은  브루스 핑크가 쓴 라캉의 주체라는 책에서 다음의 문장을 곱씹으면서였다.


          : «실재를 폐기하면서 상징적 질서는 "현실"을 창조한다. 언어에 의해 명명되며 그리하여 사고되고 이야기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현실을. 현실의 사회적 구성이란 사회적 집단(혹은 하위집단)의 언어에 의해 제공되는 단어들을 가지고서 지칭되거나 논의될 수 있는 세계를 함축한다. 그것의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은 그것의 현실의 일부가 아니다.»(라캉의 주체, p.62)


    위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바로 앞장의 문장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 «그러한 시간("말 이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에 어떤 이름을,  "실재"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라캉은 우리에게 "문자는 죽인다(La lettre tue)"라고 말한다. 문자는 문자 이전에, 단어 이전에, 언어 이전에 있었던 실재를 죽인다.»


      라캉이 "문자 La lettre가 실재 Le réel를 죽인다"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실재는 그 자체로 구분할 수 없는 무한이다. 어떤 구분하는 틈새도 구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자는 실재를 이해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칼과 가위로 실재를 재단한다.

     이는 더 나아가서 현실과 실재의 영역에서도 같은 이치가 된다. 현실은 '프랑스어로 'realité' 영어로 ,'reality'로 모두 실재 (프;réel, 영;real)의 성질 내지는 속성이라는 의미에서 '실재성'이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니까 Reality(=현실)는 실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Real를 재단하여 얻은 인식의 산물 같은 것이다. '실재'가 '구분 없이 온전한', " 말 이전의 시간"을 지칭한다는 브루스 핑크의 말을 상기하여 볼 때, 실재가 이렇게 재단될 때 실재는 실재이기를 그친다. 즉 현실 reality 실재 real 살해한다.


 위와 같은 논지에서 <연극>의 형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연극>의 유일한 그러나 은폐된 주인공은 실재 real이다.

왜냐하면 연극은 그 자체로 실재가 현실reality을 살해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는 현실이 실재를 살해한다. 실재가 가진 무한함이 현실의 언어 속에서 잘려나가고 그 생명을 다한다. 그러나 연극의 무대는 실재의 무대이다. 무대에서의 모든 현실의 언어는 '현실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배우의 말은 무대에서 진실할수록 현실에서는 진실이 아닌 것이 된다. 달리말해 무대의 진실은 현실의 일부이기를 그친다. 나는 이 진실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무대의 진실은 현실과 다른 층위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진실은 현실의 진실에 대하여 어떤 공백으로 남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은 무대에서 그의 생명력을 잃는다.

     연극의 형식은 그 자체로 실재에게 현실을 살해하는 무대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모든 연극은 그 형식에서부터 실재가 현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은폐되어 있다. 온갖 대사와 짜여진 움직임 미장센들의 향연은 살해의 직접적인 도구이자 증거이면서 사건의 은폐수단이 된다.

    실재는 무대에서 '현실의 공백'이라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그러나 실재가 현실에 대해서 출현함을 알아차릴 때, 즉 실재의 공백이 일상 속 현실에 나타날 때, 또는 실재가 은폐한 살해현장을 목격할 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이 실재를 사유해야 하는데 바디우 Alain Badiou가 '세기 La Siècle'에서 니체의 말을 빌려 말한 것처럼 실재는 선함도 악함도 알지 못하고 선악의 저편에서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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