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기가 가라앉는 어제 늦은 오후, 복권과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다. 이상하게 걷는 내내 왼쪽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이 아팠다. 두 발가락이 착 달라붙어서 서로의 살을 쓸리게 하는 것 같았다.
구두를 신었을 때 발뒤꿈치가 까지거나 잘 맞지 않는 슬리퍼를 때문에 발등이 까진 적은 있어도 발가락 두 개가 달라붙어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왼쪽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이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절뚝거리며 간신히 시장에 다녀왔다. 생경한 통증 때문에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집에 와보니 진짜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사이 살이 까져있었다. 나는 새끼발가락에 밴드를 붙여 발가락 사이의 살이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도록 했다. 발가락 사이의 살이 까지는, 이 작고 하찮은 상처 때문에 나는 어제 걷는 동안 너무 아팠다. 상처 부위가 발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파도 계속 걸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상처가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쨌든 집까지는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걷는 행위가 상처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걷는 걸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방금 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자마자 남편은 말했다.
"자기야 나 허리가 너무 아파."
나는 꼭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병원에 가지 않을 것 같다.
남편은 그저께 일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고 했다. 갑자기 비가 와서 무거운 건설 자재를 급하게 옮기다가 허리가 뜨끔, 하는 게 느껴졌다고. 그저께는 다친 허리가 아프다고 했고 어제는 괜찮다고 했다. 오늘은 처음 다쳤을 때보다 더 아프다고 말했고.
"그럼 그거 산재 아니야?"
라고 나는 물었고 남편은
"이깟게 무슨 산재야?"
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았다. 허리가 아파서 아이가 아기였을 때 아기띠도 딱 한번, 정말 딱 한 번밖에 안 했었다. 남편은 현장 일하면서 무릎도 너무 안 좋아졌다고 했다. 삼 년 전 뚝 소리와 함께 한 번 망가졌던 무릎은 이번에 일을 하면서 더 심하게 망가졌고, 이제는 앉았다가 일어날 때에도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휘청 할 때가 있었다.
남편은 발목도 안 좋다. 언젠가 한번 삐끗했는데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삐끗의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오른손에 철심을 박고 있고 며칠 전에는 외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했으며 심지어 알레르기성 비염도 있다.
나는 자주 우스갯소리로 남편의 면적을 1제곱센티미터로 나누면 모든 부분에 병과 통증이 있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이다. 남편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은 고통에 둔감하다.
아니다, 둔감한지 민감한지 잘 모른다. 실은 민감하게 고통을 느끼고 있으면서 둔감한 척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고통은 남편의 것. 나는 남편이 아니니 남편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를 알지 못한다.
남편이 무거운 자재를 옮기면서 삐끗한 허리가 지금 얼마나 아플지, 무릎과 머리는 또 얼마나 남편에게 큰 통증을 주고 있을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남편이 번개탄을 사면서 어떤 심정이었을지, 한밤중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걸으며 지금 여기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게 얼마만큼의 고통이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새끼발가락의 작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며 절뚝절뚝 걸어 집에 돌아온 것처럼 남편도 여러 군데의 상처에서 고통을 느끼며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고통은 남편의 것. 나는 그의 고통을 잘, 가늠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가늠하고 싶지 않아 애써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