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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오늘은 좋은 일이 일어나길

by 휴지기

커피가 떨어져 어제 아침에는 집 앞에 있는 가게로 커피를 사러 나갔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새벽에 내린 비로 온 세상이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해가 강해지기 전이라 많이 덥지 않았고,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몸을 스쳐가고 있었다.


'상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5초쯤, 이런 깨끗한 바람만 있어줘도 살 만하겠구나, 싶기도 했다.


미리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오는 짧은 순간에 다시 해가 강하게 내리쬐었다.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나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무지 덥겠구나 싶었고, 예상대로 어제도 많이 더웠다. 아침과 다르게 낮에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언제든 비가 되어 쏟아질 것 같은 바람이 하루 종일 불어 '상쾌하다'보다는 '꿉꿉하고 끈적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어제 새벽에, 그러니까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시간에 남편은 여기 울산에서 경기도도 운전해 갔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출발했으니 잘해봐야 세 시간쯤 자고 이동한 거였다. 남편이 있는 경기도는 더 덥다고 했다. 거기는 여기와 다르게 물기를 머금은 바람마저도 덜 불 테니, 그리고 남편은 작업복을 입고 야외에서 일을 할 테니 더 더울 것이다. 더위에 쪄 죽을 만큼.


남편은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밥맛이 없다고 한다. 하긴, 나라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가 다른 사람들의 원망으로 돌아오고 있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뭐라고 하고 있는 것 같아 생존에 대한 욕망, 살고자 하는 욕구가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생존의 기본 조건인 먹고 자는 것을 소홀히, 매우 소홀히 하고 있다.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시트콤처럼 쓰고 싶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는데 그중 희극의 요소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멀리서 보고 쓰고 싶었다. 비극이어도 그걸 희극처럼, 웃기게 쓰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남편 이야기를 웃기게 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쉽고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했지만, 그게 진짜냐고 한 번쯤 되물은 다음 웃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안된다. 남편이 가져온 비극의 농도가 너무 진해 이걸 웃음으로 희석시키기가 힘들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남편과 나눈 대화 한 토막씩이다.


어젯밤.

"오빠, 뭐 기쁜 일 없어?"

"아직은"

"그노무 아직은, 아직은! 언젠가 기쁜 일이 있기는 한 거야? 지겨워"

"나도 자기한테 진짜 기쁜 일을 주고 싶어."

"됐어."

"나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까?"

- '니 빚 다 갚고 들어가'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오늘 아침.

"휴가철이라고 다른 애들은 다 여행 가는데, 우리 애 불쌍해."

"미안하네. 나 근데 왼쪽 머리가 너무 아파."

"어떻게? 막 콕콕 찌르는 것처럼?"

"응. 온열질환의 증상인가?"

- 남편은 온몸이 아프다. 그중 마음이 제일 크게 아픈지도 모르겠지만. 남편이 오래오래 만수무강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몸 상태라면, 지금 생활패턴이라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만 살아도 선방일 것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로 그 앞에 붙어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바람이 시원하다. 오늘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일이 하나쯤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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