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파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두꺼비집 같은

by 휴지기

남편이 경기도에서의 일을 끝내고 내려왔다. 다음 일은 3월에나 시작될 거라서 남편은, 한 달 이상 백수 생활을 하게 될 예정이다.


남편이 일을 하면서 돈을 못주는 것도 별로지만, 일을 하지 못하는 건 더 별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도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알바를 생각 중이라고 했다. 남편이 말했다.


"쿠팡 알바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답했다.


"오빠 저번에 쿠팡 알바 신청해서 갔다가 혈압이 높게 나왔나 그래서 퇴짜 맞았잖아. 그 기록이 있을 텐데 오빠를 다시 뽑겠냐? 그리고 요즘에 쿠팡 안 좋아. 알바생 자체를 많이 안 뽑을 거야."


남편은 '그런가?' 하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멍청이. 그러니까 니 사업이 망한 거야. 이렇게 생각 없이 일하니까.'라고 한껏 비난해 줬다.


남편이 경기도에 올라가서 일한 게 올해 4월부터였으니 이제 딱 여덟 달이 지났다. 현장 일, 그러니까 막노동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남편은 사다리에서 떨어져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었고 원래 안 좋던 발목이나 무릎이 삐끗하기도 했었다. 쇳덩이 찍혀 찢긴 바지를 보여주며 하마터면 자기 허벅지가 이 바지 꼴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기도 했었다.


이번에 내려온 남편은 울퉁불퉁한 엄지손톱과 까맣게 변해버린 발 뒤꿈치를 보여주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손톱은 뭔가에 눌린 거 같은데 발 뒤꿈치는 왜 그런지, 안전화를 제대로 신었는데도 까맣게 변해버린 게 이상하다고 했다.


남편이 몸이 망가져가며 일한 여덟 달 동안의 노동의 대가, 월급을 나는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남편이 만들어낸 문제들을 수습하느라 그 돈들은 다 들어갔고, 나는 항상 마이너스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마이너스라 하여 삶이 마이너스인 것은 아닐 것이다. 돈은 계속 줄어들지만 아이가 커가고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찬란한 순간들, 예를 들어 아이와 함께 웃는 순간들, 맛있는 것을 먹으며 감탄하는 순간들이 있으므로, 돈은 마이너스이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그런 순간들이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사십 대 중반에, 끊임없이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계속 마이너스가 되는 건, 다시 말하면 빚이 계속 플러스가 되는 건 허무하기도, 더불어 위태롭기도 하다.


나의 삶이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지어놓은 두꺼비집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손을 넣고 그 위에 모래를 쌓아 오래 두드려 집을 만들었지만, 한 번의 파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자주 든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 남편에 대한 원망, 남편을 선택한 나에 대한 후회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나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면.... 그냥 잊는다. 잊고 오늘만 산다. 내가 남편과 살며 터득한(아니, 원래 그런 성향이 있었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강화된) 나의 생존 방식이다.



떠오르는 해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온몸으로 붉은빛을 발하며 어둠을 몰아내는 아침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떤 경이로움과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아직 어떤 기약도 좋은 징조도 없지만, 그냥 또 막연히 꿈꿔보았다. 나의 어둠도 희미해지는 꿈, 나의 삶도 아침을 맞이하는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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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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