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졌던
여덟살때 일이었다. 큰 고모부가 작은 노란 자전거를 하나 가지고 오셨다. 전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읍내 어딘가를 다녀 오다가 신작로와 논 사이 가파른 비탈길에 버려져있던 걸 주워오셨다고 했다. 큰 고모네 아들 넷은 모두 장성하여 탈 사람이 없어서 우리집으로 가지고 오신 거였다. 우리집에는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나도 있고 한 살 어린 동생도 있고 다섯살 어린 동생도 또 있으니 유용하게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그 자전거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낡고 허름했으며 심지어 버려졌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문 옆 창고에 며칠을 방치해두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흙이랑 돌멩이 나뭇잎 같은 것들을 가지고 하던 소꿉놀이도 재미없어지고 동생도 자고 있는지 놀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어른들은 다 논인가 밭인가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을 그런 심심하고 할 일 없는 날, 자전거를 타보기로 마음 먹었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가 페달에 발을 올리니 기우뚱 넘어질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발가락으로 땅을 밀어 앞으로 천천히 나가면서 페달에 발을 올려 보았다. 역시 넘어질 것 같았다. 조금씩 땅을 밀어내는 발가락에 힘을 더 주면서 더 빨리 바퀴를 돌게 하고 페달에 발을 올렸다. 굴러가는 것 같았다. 잠시, 찰나의 순간. 그러다가 넘어졌다. 무릎이 조금 까졌던 것 같다.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내가 오늘 이 자전거를 꼭 타고 말리라, 하는. 그리고 자전거를 안 타면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몇시간쯤 그렇게 혼자서 자전거 연습을 했던 것 같다. 드디어, 자전거가 앞으로 나갔다. 두 발을 땅에서 떼 페달에 올린 채 말이다. 우리집 대문 왼쪽의 내리막길을 내려와 돼지 축사를 지나 집 오른쪽에 있는 고추밭까지 달리는 게 내 첫번째 자전거 코스였다. 짧은 순간을 달리면서, 자전거를 타면 걷는 것보다, 가끔은 뛰는 것보다도 빨리 갈 수 있다는 것,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바람이 온 얼굴로 지나가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안장에서 일어나서도 타고 한 손을 놓고도 타고 일부러 경사진 곳을 찾아 스릴을 느끼면서도 탔다. 자전거는, 할일이 없어 심심하던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고추밭에 고꾸라지기도 하고 논에 빠지기도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시골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내가 고꾸라지는 걸 본 사람도 별로 없었다. 무릎이나 팔꿈치가 조금 까지는 것쯤은 괜찮았다. 그정도 상처쯤은 언제든 달고 지냈다.
하루는, 계속 눈여겨보던 난코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르는 사람 집 옆의 비탈이었는데, 우리 집 앞 내리막보다 경사가 훨씬 가파랐고 비탈이 끝나면 거의 바로 논이어서 계속 엄두를 못내고 있던 코스였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거기를 꼭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보고 싶었다.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좋은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탈길 시작점에 자전거를 타고 섰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비탈 맨 위에 서보니 경사가 훨씬 더 가팔랐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도 많이 있었다. 여기를 무사히 내려간다고 해도 논에 바로 고꾸라져 빠지지 않을까 너무 무서웠다. 그냥 자전거에서 내려 집에 갈까 했지만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자전거가 제멋대로 굴러갈까봐 손에 땀이 날 때까지 브레이크를 꽉 움켜잡았다. 내려갈 용기가 생겼을 때, 페달도 함께 힘껏 밟았다.
자전거는 비탈을 내려가지 못하고 굴렀고 나도 자전거에서 떨어져 함께 굴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왜 갑자기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지 않고 자전거가 통채로 구른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잠시 그냥 굴러떨어진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그 순간 집에서 모르는 아줌마가 나오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코피 난다면서 휴지를 한 움큼 가져다 주셨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쓰라렸고 팔꿈치와 정강이에는 흙과 자잘한 돌멩이들이 붙어 있었다. 상처에 점점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휴지로 코피를 대충 닦고 자전거를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는 고장났다. 내가 브레이크와 페달을 동시에 있는 힘껏 밟았기 때문에 버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고, 그 노란자전거는 창고에 오래 있다가 언젠가 집을 수리할 때쯤 버려졌다.
낡고 오래된, 예쁘지 않은 자전거였다. 그래도 나는 그 자전거 덕분에 얼마간을 심심하지 않을 수 있었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란 자전거는, 친구가 뭔지 그 뜻도 제대로 몰랐던 내게 첫 친구였던 셈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가파른 비탈에 있는 자전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워다주신 큰고모부께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