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안 보고 기차를 타러 간 이유?

by 휴지기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날이었다. 전날 화학 시험을 망치고 그 충격에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모든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날 보는 시험은 영어 회화, 독서, 수학, 지구과학인가, 그랬던 것 같다. 나도 벼락치기라도 해보려고 교과서를 펴고 연필을 꺼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교과서와 필통을 가방에 넣고 교실을 나갔다. 뒤통수에 의아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교문 밖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난 길로 계속 뛰었다. 뛰다가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어디 가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잠깐 문구점에 갔다 오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계속 뛰어 기차역으로 갔다. 거기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기차의 종점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내내 누군가 기차역으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초조하고 불안했다. 기차가 도착했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장항선 무궁화호를 타고 남쪽 지방으로 달렸다.


서천에서 내렸다. 그게 서천까지 가는 거였는지 갑자기 무서워져서 장항까지 못 가고 서천에서 내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천에서, 바다에 갔다.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저녁 시간에, 함께 기숙사에 살던 친구와 기차역까지 걸어 산책을 하며, 저 기차를 타고 바다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 바다에 그때 간 것이었다. 나 혼자서.


바다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갯벌 너머로 흙색 같기도 하고 회색 같기도 한 탁한 물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바란 바다는 이런 게 아니었다. 너른 모래사장과 쨍한 햇살, 속이 다 비치는 맑은 바다 같은 것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바닷가를 지나가던 어떤 아줌마는 나를 보고 혼잣말로 크게 욕을 했다. 세상이 말세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평일 오전이었고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장항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난리가 나 있었다. 학교에 갔던 아이가 갑자기 학교 밖으로 달려 나가다니, 죽은 줄 알고 저수지를 돌아다녔다고 하셨다. 나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우울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모두 일탈보다는 자살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무단결석으로 처리되었고, 각 과목 최하점의 차하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최하점을 받은 아이 점수가 중요했는데 그 아이는 정말 공부를 안 하는 아이였는지 한 과목인가를 빼고 다 한 자릿수의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나도 5점, 6점 이런 점수를 받게 되었다.


나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누군가는 미쳤다고 했고 누군가는 용기 있다고 했다. 나는 미친것도 용기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새로, 다시.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들을 망쳐놔야 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아무것도 없는 첫,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느꼈는지도.


하지만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든 것을 망친다고 그게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건 망쳐진 그대로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라는 건 있지 않았다. 내 선택과 행동의 결과는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았고,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무단결석의 결과를, 수우미양가 중 ‘가’ 세 개와 ‘양’ 하나인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재수를 했다. 오로지 그날 그 사건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그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있었던, 수능 점수로만 대학을 갈 수 있는 특차는 내가 재수를 하는 시점부터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신에 찍힌 ‘가’ 세 개와 ‘양’ 하나를 온전히 가지고 대학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모든 걸 처음으로 돌려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디가 처음인지, 어디로 새로 돌리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은 아닌 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 그때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래서 훨씬 많은 선택을 했고 인생의 많은 것이 결정되어 버렸지만, 그래서 더욱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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