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의 스무 살을 기억하다

by 휴지기

엄마 생신을 기념하여 대전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세 자매가 모두 결혼하여 멀리 떨어져 살아 그 중간쯤 어딘가로 잡은 것이 대전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대전으로 여행지가 잡힌 순간부터 약간 감상에 젖어 있었다. 대전은 내가 격변의 스무 살을 보낸 곳이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 나는 대전에 있는 학교의 공대에 입학했었고, 입학하자마자 첫사랑과 연애를 시작했었다. 연애를 뜨겁게 몇 달쯤 하고 나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반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재수학원에 등록해 반년을 미친 듯이 공부했다. 연애는 반수를 시작할 때 이미 끝냈었지만, 마음으로는 깔끔하게 잊히지 않아 계속 힘들어했었고,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었으므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학원에 도착해서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400원짜리 레쓰비를 하나 뽑아 자리에 앉으면 점심시간이 시작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공부였는데 또 하다 보니 공부가 좀 재미있어졌다. 고등학교 때 모르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게 마치 게임을 한 단계씩 클리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남들보다 하루를 빨리 시작했지만 지구력이 딸려 오래 앉아있지는 못했다. 오전에는 누구보다 쌩쌩했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는 점점 집중력이 떨어졌고, 저녁 시간이 넘으면 에너지가 부족해져 자율학습이 끝나는 9시쯤이 되면 그냥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있는 수준이었다.


9시 넘어 학원이 끝나고 버스를 타면 꼭 시내를 지나쳐야 하숙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껍데기 같은 상태로 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있던 버스 안과 버스 밖의 대전 시내는 서로 다른 세상 같았다. 특히 금요일 밤이 되면 시내 거리에는 그렇게 나이트클럽 명함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그 명함들을 보며 나만 저 젊음의 세계에서 튕겨 나와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쓸쓸해 미칠 것 같았다. 그때는 누군가에게라도 연락을 해서 하소연을 하거나 술을 한잔 마시고 싶었으나 아무도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4개월을 공부했고, 문과로 전과를 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학과에 들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직업을 갖게 되었다. 첫사랑이었던 그 아이와는 헤어지고 나서도 몇 번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기도 했지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길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연락하지 않았다.


대전에서의 1년은 뜨겁고 새로웠으나 공허하고 힘들었다. 첫사랑과 연애하면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느껴보기도 했고 그 아이와 헤어져 저 땅 밑 어딘가로 들어가 파묻히는 느낌도 받았으며 내가 헤어짐에 얼마나 경솔하고 지질한가도 알게 되었다. 난생처음 최선을 다해 공부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너무 당연하지만 잔인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가 갓 성인이 되었던 그 스무 살을 기억하면 조금 아린 감정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전 여행이 나의 그런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운전하며 지나가던 어떤 풍경도 낯익은 것이 없었다. 21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변하지 않은 것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21년 전에 보고 느꼈던 것을 그대로 다시 보고 느낄 수 있으리라, 그래서 어느 정도 감상에 젖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내가 이상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21년이다. 자그마치. 그사이 나는 다른 대학을 졸업했고 직업을 얻었고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가족 중 누군가는 나에게 스무 살의 대전이 기억나지 않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게 대답해주려고 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기억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때 내가 갑자기 대학을 때려치우고 재수를 한다고 했던 사실이 우리 가족에게 너무 충격이었어서 아직도 그 말을 수면 위로 꺼내기 힘들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왠지 전자인 것 같다. 오래전이다. 21년 전은.


내가 대전에서 스무 살을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역시 삶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어쨌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도. 공부를 하든, 연애를 하든, 방황을 하든. 한 치 앞도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순간을 열심히 버텨야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그 뻔하디 뻔한 사실을 그 격변의 스무 살을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토요일에 대전 놀이공원에서 아이가 놀이기구 타는 것을 구경했다. 일요일에는 수목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2인용 자전거를 탔다. 크게 무리가 되는 일정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일요일에 몸이 안 좋아 점심만 먹고 일찍 돌아왔다. 놀이공원에서 약간 추웠던 게 몸살감기로 온 거구나 싶었는데 코로나였다. 지금껏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고, 슈퍼 면역력의 소유자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힘없이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역시 한 치 앞도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자부하지도 단언하지도 말고 살아야겠다고 또 한 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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