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아니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체육 시간 수행평가로 2단 줄넘기를 한다고 했다. 중학교 때의 나는(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키만 멀대같이 컸지 운동능력은 반에서 거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턱걸이를 할 때에는 발아래 받쳐둔 의자를 빼는 즉시 철봉에서 떨어졌고, 제자리멀리뛰기를 할 때에는 친구들이 장난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다리를 착지하곤 했다. 오래 달리기는 당연히 시간 안에 못 들어와 반 아이들이 운동장에 앉아 숨을 헐떡거리며 쉬고 있을 때 아이들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며 그래도 꼴찌는 하지 말지 말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달려야 했다. 그런 나에게, 2단 줄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행평가였다.
2단 줄넘기를 하기 위해서는 발이 허공에 떠 있을 때 줄을 발아래로 두 번이나 돌려야 했다. 나는 첫 시간부터 2단 줄넘기를 성공하는 아이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력의 힘은 누구에게나 공평할 텐데 어떻게 저렇게 허공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나, 팔은 또 어쩌면 저렇게 빨리 돌려서 발이 떠 있는 동안 두 번이나 줄을 발아래로 쉭쉭 지나가게 할 수 있나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2단 줄넘기를 성공하는 아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내 옆에 나보다 훨씬 몸이 무거워 보이는 친구도 성공했고, 다른 애는 모르지만 얘보다는 내가 운동신경이 낫다고 생각했던, 유일하게 나보다 더 몸치라고 여겼던 친구마저도 성공했다. 2단 줄넘기를 못하는 사람은 이제 50명 이 반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2단 줄넘기 수행평가 직전 주말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마당에서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냥 줄넘기는 몇백 개라도 하겠는데 2단 줄넘기는 도무지 가능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은 성공했지만 이어서 두 번 세 번은 되지가 않았다. 수행평가 만점 개수가 열갠가 스무갠가였는데 그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고, 구경하고 있는 반 아이들에게 비웃음이나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점심을 먹고도 계속 줄넘기 연습만 하고 있었더니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싶었나 보다. 자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해보라고 줄넘기를 내주었다. 동생의 운동실력도 나랑 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동생도 몇 번 시도하다가 실패할 줄 알았다.
그런데 동생은 몇 번 줄을 넘겨보더니 2단 넘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냈다. 다섯 번, 여섯 번 하다가 집으로 들어가면서 '이거 쉬운데'라고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 왜 이 쉬운 걸 못하고 하루 종일 밖에서 저러고 있나 하는, 동생의 한심스러워하는 눈빛을 본 것 같았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너무 부끄러웠다. 더 이상 줄넘기 연습을 할 수 없었다.
그날 오후에 친척들이 집에 놀러 와서 밖으로 저녁을 먹으로 나가자고 했다. 가족들 다들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무너진 마음으로는 여러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웃고 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들은 한두 번 말해보다가 그럼 너는 집에 있어라, 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막내 작은 아빠만 계속 나를 설득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같이 나가서 저녁 먹자고. 나는 거듭된 설득에도 계속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2단 줄넘기 때문에 충격받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고, 한 번 안 나간다고 했는데 다시 나간다고 말하기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나를 뺀 모든 가족들이 나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는지 모두 다 나가지 않고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동생이 2단 줄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냈을 때의 놀라움과 좌절감, 막내 작은 아빠가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설득할 때의 노을 진 풍경과 고집스러웠던 내 마음 같은 것들이다.
수행평가 실전에서는 2단 줄넘기 3개를 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시간 이후로 2단 줄넘기를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조금 더 잘 구분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2단 줄넘기를 다른 친구들처럼, 내 동생처럼 쉽게 해내는 건 내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2단 줄넘기를 성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동생의 성공을 보고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성공할 수도 있다고 인정해주는 것, 자존심이 상해도 고집을 꺾고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그 하루가 참, 힘들었다.
어른이 된 아직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자꾸만 고집을 부리게 된다. 오래 고집을 부리다가 이게 안 되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너무 늦는 경우가 많다. 너무 늦은 깨달음은 종종 상처를 동반하기도 했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마음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그러기 위해서는 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할 것 같다. 내 능력 밖의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즐거운 저녁 식사를 놓치게 되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