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태명은요

by 휴지기

결혼은 하고 싶었지만 아이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확률적으로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게 되겠구나를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그에 대한 어떤 감정적 움직임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결혼한 지 반년 만에 아이가 생긴 걸 알았을 때 남편에게 전화해서 내 인생 망쳤다며 울었다. 엄마가 될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떤 자격도 없는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게 조금 두려웠다. 나는 언제나 잘 까먹고 실수하고 덤벙대는, 그러니까 나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다니, 믿을 수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과 친구들, 회사 동료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모든, 정말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었고, 그래서 내 임신은 축하받을 만한 사건이구나, 내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는 지금의 나는 축복받은 거구나, 하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태몽은 꿨느냐, 아들과 딸 중에 어떤 성별이 더 좋으냐, 둘째도 가질 거냐 등 많은 걸 궁금해했다. 나는 태몽으로 느껴질 만한 특별한 꿈은 꾸지 않았고 아들과 딸 어떤 성별이든 상관없었으며 둘째는 가질 생각이 없었으므로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태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태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태명을 지어야겠구나 싶어 술 취해 들어온 남편과 거실에서 팔베개를 하고 뒹굴면서 배 속의 아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했다. 남편은 큰 고민 없이 여자아이면 말숙이, 남자아이면 말봉이라고 하자,라고 했다. 나는 너무 촌스럽다고 큰 소리로 웃으며 타박했지만 그 태명들이 나쁘지 않았다. 촌스럽고, 그래서 귀여웠고, 무엇보다 간지럽지 않아서 좋았다. 세 달 뒤 배 속의 아기가 아들이라는 검진 소식을 들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아기를 말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말봉이는 내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정기검진을 가면 의사 선생님께서는 항상 아기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임신 사실을 확인하러 검진을 받았을 때 임신 사실을 모르고 술을 마셨다고 불안해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도 커피를 하루에 한 잔쯤 마시고 있는데 괜찮냐, 배가 좀 뭉치는 느낌인데 괜찮냐 등등의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다 괜찮다고 하셨다. 언제나 웃으면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시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고 임신 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심각한 입덧은 하지 않았지만 임신 초기부터 출산 직전까지 계속 소화가 잘 안 됐고, 가끔은 먹은 것을 토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원한 것을 먹고 싶어 배스킨라빈스 민트 초코칩을 잔뜩 먹고 변기에 다 토했던 적이 있었다. 변기 물이 민트 초코 색깔로 변한 게 신기해 남편을 불러 구경을 시켜줬다. 그러고는 항상 하는 말을 붙였다.

“내가 아기 가져서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지? 잊어버리면 안 돼.”

출산 예정일 열흘쯤 전부터 출산 휴가에 들어갔다. 책도 읽고 좋은 음악도 들으며 태교 벼락치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장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예정일이 일주일 남은 어느 날 밤에 20분에 한 번씩 진통이 오는 것 같았고 바로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서 출산복을 입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관장이었다. 관장약을 먹고 몸 안의 배설물을 다 내보내는 것. 그래, 아이가 똥과 함께 나오면 안 되지 하며 최선을 다해 힘을 줘 배설물을 배출했다.

침대에 눕고 의사 선생님이 출산 진행 상태를 확인했다. 산부인과에 올 때마다 인간은 동물이구나를 느꼈는데 출산 당일, 그게 가장 여실히 느껴졌다. 골반은 이미 30프로가 열렸고, 아기만 내려오면 된다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있는 힘껏 힘을 줬지만 아기는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밤이라 마취과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 무통 주사는 맞지 못한다고 했다. 입덧할 때의 억울함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우리의 아이인데 왜 나만 아파야 하는 걸까, 나는 남편의 손을 잡으면서 손톱으로 꽉 눌렀다. 남편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등이 내 손톱 때문에 조금 까졌지만 그 정도의 고통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미안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고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애가 거의 다 나왔다고 안심시켰고 실제로 잠시 뒤에 아기가 태어났다. 아이를 출산하는 건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고통이라더니 그 말이 그다지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4시간 30분 만에 3.74킬로그램의 아이를 순산했다.


아기를 처음 보고는, 내 아기니까 당연히 예뻤지만 가슴 터질듯한 모성애나 드디어 엄마가 됐다는 감격 같은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아기가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큰일을 무사히 치러냈다는 안도감이 들었을 뿐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뭐 하나 순탄한 것이 없었다. 덜렁대는 성격 탓에 출산 가방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출산 직후 양말도 신지 않고 돌아다녔고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초유만 찔끔 먹이고 계속 분유를 먹이면서 애가 나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남편은 출산 후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조리원에 잠시 들르는 수준이었고, 나는 A4용지만 한 창문을 내다보며 유축기로 잘 나오지 않는 모유를 찔끔찔끔 짜내면서 내가 젖소인가 사람인가를 헷갈려하며. 외로워했다.


신생아실에는 우리 아기가 누워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사랑이와 튼튼이, 행복이 들 사이에는, 내가 낳은 말봉이가 누워있었다. 말봉이는 다른 신생아들보다 덩치도 크고 머리도 컸다. 덩치도 머리도 태명도, 우리 아기는 참 특별하구나 생각하면서 신생아실을 혼자 들여다보곤 했었다.


조리원을 나오고 2주 동안은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다. 엄마는 아기 목욕시키는 것을 도와주고 아기와 놀아줬으며 미역국을 끓이고 간단한 밑반찬들을 만들어주셨다. 엄마는 딸 셋을 키웠지만 의외로 아기 돌보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는데, 이유는 우리 셋을 거의 아빠가 돌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목욕시키고 분유 먹이고 울 때 달래주고 하는 것들을 대부분 아빠가 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엄마와 나는 이게 이렇게 하는 게 맞나를 서로에게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가면서, 확신 같은 건 없는 채로 어찌어찌 아기를 돌봤다. 그리고 우리 아기는 쑥쑥, 말 그대로 쑤욱쑥 커갔다.


아기는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자기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뒤통수를 받쳐 들고 아기를 안고 있으면, 어쩌자고 이 아이는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어쩌자고 이 아이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나에게 내맡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두려워졌던 적도 있었다.

문제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를 키우기에는 참으로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엄마였다는 것이다.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못해 오줌이 기저귀 밖으로 샌 적이 많았고, 손 싸개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 자기 이마를 잔뜩 할퀴어 놔 이마에 손톱자국이 수십 개가 난 적도 있었다.(그 흉터가 아직도 있다.) 이런 많은 순간에, 니가 엄마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다,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똑똑하고 현명한 엄마 만났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멍청하고 부족한 엄마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우리 아기.


아이를 7년 몇 개월째 키우고 있는 나는 아직도, 나 하나도 버거운 사람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싶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이를 편안하게 크게 해 주고, 아이는 이런 엄마에게 적응하면서 성장해 가는 수밖에. 어쨌든 그렇게 함께 살아갈 수밖에 말이다.


옆에서 글을 슬쩍 보고 있던 아이가 말봉이라는 단어를 보고 왜 자기 태명을 말봉이라고 붙였었냐고 투정을 부린다. 말봉이는 너무 부끄러운 이름이라고, 미안하다 얘야, 엄마 아빠가 그런 이름을 귀여워하는 어른들이라 어쩔 수 없었단다. 그러니 너도 받아들여라. 9개월 동안 네가 말봉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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