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 처음에는 이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감이 너무 셌고 피해의식이 깃들어 있는 표현 같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독박 육아구나, 독박 육아라는 표현은 어쩌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겠다’하는 걸 말이다.
"정자만 제공했다고 아빠가 되는 건 아니야."
남편에게 종종 했던 말이다. 남편은 확실히 아이의 생물학적인 아빠였지만 아빠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편이 이기적이고 못돼서, 자기만 편하려고 아빠의 역할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남편은 언제나 바빴다. 정말, 미친 듯이 바빴다. 내가 지금까지 마흔 넘게 살아오면서 본 그 누구보다도 남편은 바빴고 열심이었다. 평균 퇴근 시간은 밤 11시쯤이었고 주말에도 대부분 출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일은 잘 되지 않았다. 노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를 받는 것, 그게 내가 알고 있는 노동의 목적이고 생활의 기본 원칙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상했다. 노동을 하는데도 경제적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싸웠다.
아이와 단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가 걸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나서는 자꾸만 심심해했다. 외출도 쉽지 않았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내가 감당할 수 없었고, 함께 외출할 만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여기는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오게 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도시였다.
아이는 끊임없이 놀아달라고 했다. 소꿉놀이도 하고 블록도 하고 자동차 놀이도 했다. 그런데 그런 놀이들을 하려면 내가 말을 끊이지 않고 해야 했다. 게다가 아이는 질문이 굉장히 많았다. 그 정답 없는 질문들에 대답을 해주기가 너무 힘들었다. 에너지가 딸렸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저녁을 먹여 빨리 재우고 싶었다. 지금쯤은 저녁을 먹여도 되겠지 싶어 시계를 보면 신기하게 4시 44분인 경우가 많았다. 세 개나 있는 4들이 죽을 사(死) 같았다. 연속되어 있는 그 숫자가 내 피곤하고 암울한 시간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책은 그냥 인쇄되어 있는 글자를 소리내어 읽어주기만 하면 됐다. 아이가 하는 창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지 않아도, 놀이를 하며 가짜 뽀로로나 트럭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됐다. 책을 읽어주는 건 다른 놀이들보다 에너지가 덜 드는 활동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책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혼자 그림책을 보고 있다거나 할 일이 없으면 책꽂이에서 먼저 책을 꺼내와 읽어달라거나 하는, 여느 엄마들이 바라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자고 했을 때 적어도 싫다는 의사표시는 하지 않았다.
책은 밤에, 자기 전에 많이 읽어주었다. 빨리 육아에서 해방되기 위해 저녁 7시부터 잠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했다. 여름날 저녁 아이는 가끔
‘엄마,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
라고 물었다. 나는 차마 ’니가 빨리 자야 엄마가 좀 쉬어.‘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그때마다 대충 변명거리를 만들어 빨리 자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차하게 설명했다. 엄마로 살기 위해서는 때로는 구차해지고 때로는 구질구질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너무 일찍 누워 잠이 쉽게 들지 않았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줬다. 어떤 날은 아이보다 책을 읽어주던 내가 먼저 책을 얼굴에 덮고 잠이 들기도 했다. 그 이후에 아이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어제도 엄마가 먼저 잠든 것 같네, 미안해‘하고 마음속으로 말할 뿐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스무 번 넘게 읽어준 것 같다. 주로 자동차에 관련된 책이었다. 아이 책을 읽어주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비싼 차의 이름들, 라이칸 하이퍼 스포트나 코닉세크, 헤네시 같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이는 여러 번 읽어준 책은 곧잘 외워서 말했다. 그때는 우리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다들 그 정도는 한다는 걸 알고 조금 아쉬워졌던 기억이 있다.
”아빠의 부재 덕분에 애 문해력이 늘었어.“
라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은
”말에 뼈가 있네.“
라고 맞받아쳤다. 나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당연하지, 찔리라고 한 말이니까. 내 말에 담겨있는 뼈에 훅 찔렸으면 좋겠어. 아프게.‘
라고 생각했다.
독박 육아는 너무 힘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혼을 생각하고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한 과거의 내 선택을 미친 듯이 후회했었다. 결혼하면서 친구들에게 했던 농담들, 예를 들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마음으로 하는 거야“
와 같은 것들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불타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서 회색 재로 변해 바스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쓸쓸했고 힘들었고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남편이 있는 순간에는 좋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내 옆에 있어 주는 짧은 순간, 남편이 아이와 장난을 치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행복하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선택이었다. 불섶을 쥐고 있었던 것도, 불길인 줄 알면서 뛰어들었던 것도 다 나의 선택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어줘서 그런지 아이는 지금도 책을 좋아한다. 많은 면에서 한없이 부족한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거 하나에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었다는 것 하나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물려줄 것 없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그나마 책이라도 많이 읽는 아이로 자라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제 아이와 함께 스타벅스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던 푸른 사자 와니니를,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회색 인간이라는 소설집을 읽었다.
”엄마,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조금 잔인한 내용이 있어. 긴긴밤처럼.“
”그래, 그럼 이따 차 타고 가면서 엄마한테 얘기해줘. 무슨 내용인지.“
”별론데. 다시 생각하면 좀 그래. 무서워.“
”그래 그럼“
”근데 엄마, 나 집에 가서 티비 봐도 되지? 유튜브 본다. 티비 보고 게임도 할 거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지금 제일 좋아하는 건 게임하는 것, 게임과 관련된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초등학교 남학생이다. 그래도 책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그 오랜 시간을, 말할 수 없이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무슨 수로 버텼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