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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기 Oct 03. 2024

어쩌면 너의 땡깡도 나의 탓

"이마가 톡 튀어나온 게 고집 있게 생겼네"   

  

친정 아빠가 아이를 보고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나와 남편은 이마든 뒤통수든 다 납작한데 아이는 이마와 뒤통수가 톡 튀어나온 짱구이다. 어딘가에서 뒤통수 모양은 유전보다 자궁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 내가 자궁은 동그랗게 이쁘게 생겼나보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자궁 모양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조금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매우 순했다. 많이 먹고 잘 쌌다. 생글생글 자주 웃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깔이라는 게 생겼는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방바닥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질렀다.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 표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아이가 이렇게 과격하게 의사 표현을 한 데에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못하는 섬세하지 못한 엄마가 탓이 있기도 할 것이다.  

   

한 번은 아이가 자기 이마를 여러 군데 할퀴어 놓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상처들을 봤지만 어린 아이들은 자기 손을 스스로 주체할 수 없어 자주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감기 때문인가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받던 날 아이의 이마 상처를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주며     


"여기, 이렇게 아이가 자기 손으로 할퀴어 놨는데 괜찮은 거죠?"

   

라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뇨, 애가 얼마나 가려웠으면 그랬겠어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발라주세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무 문제 아니라고 생각했네. 며칠 동안 얼마나 가려웠을까....


그날도 미안하고 짠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가 멍청해서 니가 고생이 많다. 미안해."

     

아이에게 사과하는 날들이 많았다. 나의 사과는 입 밖으로 음성이 되어 나올 때도 있었고 마음속으로만 맴돌 때도 있었다. 물론 그때 아이는 너무 어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없을 때는 내가 한 실수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건 대부분 나 하나였다. 버스를 반대 방향에서 타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것도 나였고 마감 날짜를 잘못 알고 있어서 기껏 준비한 대학 입시 원서를 넣지 못해 허탈해하는 것도 나였다.       


엄마는 나에게 정신 좀 챙기고 살라고 말했고 동생들은 언니가 도대체 어떻게 대학에 들어가고 직업을 가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일할 때는 또 열심히 한다고 말해도 그 열심히 하는 일터에서의 순간을 보지 못하고 일상만 공유하는 가족들은 실수가 잦고 흐리멍텅한 나를 종종 한심하고 못 미덥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괜찮았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라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고생하는 몸은 나 하나였다.     

  

아이를 낳으니 나의 모든 일상을 아이와 함께해야 했다. 결국 내 실수로 인해 아이가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아이가 세 살, 네 살 때 마트나 백화점에서 떼를 부리고 난리 치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때는 아빠 말대로 아이가 이마값 하느라고 고집이 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 마음을 잘 헤아려 주지 못한, 그리고 순간순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의 탓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아이가      


"엄마, 나 어렸을 때 마트에서 엄청 땡깡 많이 부렸댔지?"

     

이렇게 질문하면 그랬었지,라고 대답하면서 마음 한 켠이 좀 찔린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그래서 또 얼마나 많은 자책감이 드는 일인지 생각해 본다. 이렇게 허술하고 부족한 엄마 밑에서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가 고맙다. 


엄마는 아둔해도 너는 지혜롭길, 엄마는 박복해도 너는 다복하길, 바라본다.     




내일은 아이 재량휴업일인데 나도 남편도 출근을 해야한다. 남편이 조금 늦게 출근하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혼자서 있어야 하는 시간이 오래일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미안한데 우리 아이는 오히려 좋아한다.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해."   


요즘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주제에, 태어난 지 9년밖에 안 된 주제에 엄마의 벌써 자유를 찾고 있다니, 이렇게 허용적인 엄마가 어딨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진심인 것 같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커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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