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며칠 집에 계실 예정이었다. 남편과 둘만 살던 집에 친정엄마와 나, 남편과 아이까지 넷이 함께 있으려니 북적거리고 부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신생아들은 자기 손톱으로 자기에게 상처입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손싸개라는 걸 씌워놓는다.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 일은 그 손싸개를 벗겨보는 것이었다. 아이의 조그맣고 꼬물거리는 손을 직접 만져보고 싶었다.
손싸개를 벗겨보니 손가락 사이사이에 흰색 허물 같은 게 잔뜩 붙어있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조리원에서 상처가 났나? 친정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모른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딸 셋을 키웠지만 아기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세 번이나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해서 물어봤더니 돌아가신 친정 아빠가 다 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아기였을 때, 우리를 목욕시키는 거나 손톱 깎이는 것, 놀아주고 재워주는 것 대부분을 아빠가 다 하셨다고. 내 가장 오래전 기억 속의 아빠는 안방에 아침상을 차려놔도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술담배 좋아하는 투박한 시골 아저씨였다. 그런 아빠가 두툼하고 까만 손으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우리를 목욕시키는 모습은, 눈꼽만큼 작은 손톱을 잘라내는 모습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안고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가며 재우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아빠는 파편화된 아주 일부의 아빠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때론 얼마나 부질없는 착각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모른다고 하니 아이 손가락 사이에 있는 그 흰색 허물 같은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은 그 공간에 있는 어른 셋 중 아무도 없었다. 나는 조리원에서 그나마 친해진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 애 손가락 사이에 흰색 뭐가 묻어있어요. 이거 뭔지 알아요?”
“그거? 잘 모르겠는데. 때 아니야?”
아, 때라니, 갓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 사이에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유축해 놓은 모유가 조금 있었다. 근데 조리원 냉장고에 있던 거라 너무 차가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언니에게 또 전화를 했다.
“언니, 유축해 놓은 모유 차가운데 어떻게 줘야 해요?
”젖병째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주면 돼.“
아이는 모유를 조금 먹고 부족했는지 분유를 더 먹고 잠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몰라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엄마는 ‘애는 다 알아서 커. 걱정하지 마.’라고 했지만, 다 알아서 크기에는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제 목도 똑바로 못 드는 아이가 어떻게 알아서 클 수 있을까,
나는 나 하나도 버거운 사람인데, 맨날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기지 못해 허둥거리고 자책하는 걸 반복하며 사는 사람인데, 모든 생명을 나한테 다 맡기고 있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지, 정말이지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순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웃었다. 50일 이후부터는 분유만 먹였다. 어떤 날은 분유를 두 통 가득 채워 먹기도 했다. 남편은 아이를 예뻐하기는 했으나 아이를 돌보는 데는 많이 서툴렀다.
어느 날은 남편이 아이 기저귀를 가는데 너무 행동이 더뎌 그사이에 아이가 오줌과 똥을 동시에 쌌다. 아이 오줌은 남편 안경에, 똥은 남편 손에 묻었다. 아빠라는 게 기저귀 하나 빨리 못 갈아주는 구다 싶어 한심하기도 하고 남편 꼴이 웃기기도 했다. 남편은 민망한지 뒷수습을 하면서 멋쩍게 계속 웃었다.
아이가 뒤집기를 시도했다. 다리가 넘어가고 몸통도 거의 다 넘어갔는데 머리가 넘어가지 않아 뒤집기를 계속 실패했다. 엄마는
”애가 머리가 커서 안 넘어가나 보다.“
하면서 재미있어하셨다. 나도 뒤집기를 하기 위해 바둥거리는 것이 귀엽고 재미있어 엄마한테 그런가 봐, 맞장구를 치면서 함께 웃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뒤집기에 성공하기 위해 수많은 실패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 커가는 모든 과정들이, 이를테면 뒤집기를 한다든지 혼자 앉는다든지, 두 발로 걷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할 시기가 되면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다. 뒤집기마저도 이렇게 많은 시도와 실패 끝에 결국엔 성공해 내는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 뭉클한 느낌마저 들었다.
네가 넘어야 하는 수많은 단계 중 하나는 넘었구나. 고생했어, 우리 아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는 뒤집기 하나를 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며 온 힘을 다 쓰는데 나는 왜 어떤 것에도 온 힘을 다 쓰지 못하고 있는지, 왜 모든 것에 설렁설렁 대강대강이면서 일이 제대로 안 풀린다고 투덜거리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다. 아이의 뒤집기가 수많은 실패 끝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그러니 우리도 아이처럼 뭔가를 원할 때는 온 힘을 다해 노력해 봐야 한다는 것도 그 깨달음 중 하나였다.
"엄마, 나 내일 아침부터 공부할 거니까 아침 일찍 깨워줘."
"초등학교 3학년이 무슨 공부야, 학원 숙제나 해."
"아냐, 월수금 아침에 공부할 거야."
"어떻게 할 건데?"
"내일은 수요일이니까 과학 공부할 거야. 엄마가 종이에 '가속도' 이렇게 쓰면 내가 그거에 대해서 쓸게."
"일찍 자면 일찍 깨워주고. 오늘 그럼 밤 10시 전에 자."
어제 저녁의 대화이다. 계획은 창대했지만 어제 12시 넘어서 잠들었고 오늘 학교 가기 직전에 간신히 일어났다. 포부만 크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혹시 나를 닮지 않았나 싶어 불안하다. 그러니, 애가 부족하다고 하여 애한테 뭐라고 할 수 없다. 다 엄마 아빠한테서 온 부족함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