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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기 Oct 01. 2024

엄마가 엄마여서 미안해

말봉이는 순풍 나왔지만, 쓸쓸하고 미안했던 조리원에서의 시간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관장약을 먹었다. 내가 똥과 함께 나왔구나, 라고 절규했던 어느 철학자의 탄생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장에 있는 배설물들을 최선을 다해 비워냈다. 당직 의사가 내 상태를 확인했다. 자궁은 이미 30프로가 열려있다고 했다. 힘만 잘 주면 아이는 금방 나올 거라고 했다.     


진통의 세기가 강해졌다.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새벽이라 마취과 의사가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이런, 진짜 생살을 찢는 고통을 온전히 맛보게 되겠군. 아이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호흡을 깊게 하고 힘을 주라고 해서 깊게 숨을 들이쉰 후 힘껏 아이를 밀어내려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술을 시켜달라고 했다. 의사가 거의 다 나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조금만 더 힘을 주라고 했다.


아이가 나오는 통로, 내 살을 가위로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힘을 주고 힘을 빼고, 다시 힘을 주고 힘을 빼고를 반복하다보니 아이가 나왔다. 병원에 도착한 지 네 시간 만이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출산은 엄마를 닮는다는 말을 들었다. 친정 엄마가 우리 세 자매 모두를 병원에도 도착하기 전에 순풍, 낳았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나도 산통이 많이 길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 아기도 나처럼 어느 순간 세상 밖으로 순풍, 하고 나왔다.     


아이는 정말 작았다. 3.74킬로그램. 다른 아이들보다 큰 편이라고 했지만 아이가 안겨있는 내 팔뚝보다도 작았다.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눈코입이,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내 몸에서 아홉 달간 자라다가 세상에 나온 아이, 어느새 나는 진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입원실로 옮겼다. 입원실에 있다가 저녁때쯤 산후조리원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입원실로 옮기고 남편이 회사에 나가 봐야한다고 했다. 한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한 친정 부모님은 세시간 후에야 병원에 도착하실 수 있었다. 시댁 식구들은 내일 온다고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기를 낳고 세시간 만이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를 낳은 날도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게 말할 수 없이 처량했고 서러웠다.


결혼하고 나서는, 우는 날이 많았다.    


일이 있어 입원실 밖으로 나갔는데 입원복 아래가 맨 다리인 산모는 나밖에 없었다. 다들 속바지와 수면양말 같은 걸 신고 있었다. 맞다, 산모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고 했는데, 다들 어떻게 알고 미리 다 준비한 건지 신기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건 나였는지 모른다. 아기를 낳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었는지 말이다.

   

산후조리원에 있으면 몇 시간에 한 번씩 수유콜이 왔다. 콜을 받고 내려가면 분홍색 조리복을 입은 엄마들이 십일자 형태로 앉아서 수유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아기들은 모유를 쭉쭉 잘도 빨아먹는 것 같았다. 나는 함몰젖꼭지에 모유 양도 많지 않아 처음부터 분유를 먹어야했다. 모유를 먹이려고 시도는 많이 했지만 배고픈 아기는 젖꼭지를 찾아 물지 못했고, 아기가 계속 울자 간호사들이 분유를 권했다.      


다른 아기들은 다들 엄마 모유를 먹고 있는데 우리 아기만 분유를 먹이고 있으면


이 아이가 나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모유를 못 먹고 커서 평생 비실비실거리면 그건 온전히 내 탓이겠지? 나는 왜 젖꼭지도 함몰이라 애한테 모유도 하나 제대로 못 먹이나


등등 온갖 죄책감과 좌절감, 열등감 같은 것들이 밀려왔다. 그때부터 가끔 생각했다. 엄마가 엄마여서 미안해, 라고.      


수유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유축기로 모유를 모아두어야 했다. 모유가 많이 나오는 사람들은 조금만 해도 젖병이 다 차게 모유를 모을 수 있다던데 나는 30분을 유축을 하고 앉아 았어도 젖병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좁은 조리원 방 안에서 A4 용지만한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개천을 보며 유축을 할 때면 내가 젖소가 된 것 같았다. 젖이 나오지 않는 젖소, 그래서 한없이 초라한 젖소....     


갓 태어난 아기들은 신생아실에 따로 있었다. 우리는 통유리창을 통해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랑이와 축복이, 행복이와 무럭이 사이에 우리 말봉이가 있었다. 크게 태어난 우리 말봉이는 조리원에서도 제일 커 눈에 잘 띄었다. 유리창 너머에 있는 말봉이가 쑥쑥 잘 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저녁 때 밥을 먹으러 가면 대부분의 산모들이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 남편은 내가 조리원에 있는 기간에도 야근을 밥먹듯이 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밥을 먹어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기 민망해서 방으로 밥을 갖다 달라고 해서 먹었다. 조리원에서는 밥을 먹는 시간이, 가장 쓸쓸했다.


남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갓 태어난 아이에게 내 모유를 먹이는 일이, 아이를 낳은 직후 남편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나에겐 왜 그렇게 어려울까 생각했다. 쓸쓸했다.




오늘은 국군의 날, 갑자기 만들어진 공휴일이다.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이는 할 일이 없다고 심심해한다. 이번주에는 재량휴업일인 학교들이 많아서 많은 가족들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우리는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다.


아이는 커가면서 많은 시간을 심심해했다. 아빠는 자주 집에 없었다. 아이는 심심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아이가 책을 읽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그게 아빠의 잦은 부재 때문이라는 것은 마음 아프고 미안하다.


지금도 아이는 내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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