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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허즈번드가 마이 X-허즈번드가 되는 날이 올까?

by 휴지기

3일 전, 그러니까 금요일에는 정말 이혼을 하고 싶었다. 설연휴 빙판길 교통사고로 망가졌던 차를 찾으러 정비소로 걸어가면서, 셀 수 없을 만큼 잦은 한숨을 쉬면서, 더는 못하겠다, 이 남자랑 더 살다가는 나는 분명히 불행하고 가난한 할머니가 되고 말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얼굴과 어깨가 축 쳐졌고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차를 찾은 후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를 받아오려고 했다. 이혼 서류 때문에 법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지금은 차가 막혀서 제시간에 법원에 도착하지 못할 거라고, 월요일에 가서 받아오라고 했다. 그 친구 집이 법원 근처라서, 월요일에 이혼서류를 챙긴 후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남편은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남편의 온몸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매일 술을 마셔 고동색이 되어버린 남편 얼굴이 거칠어 보였다. 우리는 김치전과 오징어 볶음, 김치찌개를 해서 밥을 먹었다.


어제, 일요일에는 오래간만에 날이 풀렸다. 미세먼지도 없었다. 아이와 남편은 농구를 하고 나는 강아지를 산책시켰다. 아이가 남편과 농구를 하는 건 두 번째였다.


작년에, 남편이 아이에게 처음으로 농구를 가르쳐줄 때였다. 자신의 농구 실력을 뽐내며 아이에게 슛과 패스를 가르쳐주던 남편이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다급하게 다가왔다. 남편 얼굴에 피가 흥건했다. 아이가 던진 공에 안경을 맞아 안경다리에 눈과 코 사이가 찢긴 것이었다. 상처가 깊어 보였다. 길이도 새끼손가락만 했다. 빨리 병원을 가자고 했지만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병원에 가지 않았고 상처는 흉터로 남았다. 그 사고 이후 처음 다시 농구를 하는 거라 나는 마음이 조금 불안했다. 남편과 아이 둘 다 안경을 쓰고 있어서 또 딱딱한 농구공에 얼굴을 맞을까 봐, 농구공을 받다가 손가락이 부러질까 봐, 공을 잡겠다고 뛰다가 엎어져 얼굴이 깨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제는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는 한 시간 넘게 신나게 농구를 했고, 아이는 목표한 대로 골을 열개 이상 넣은 후 뿌듯해하며 집에 왔다. 날씨가 풀려 강아지는 신나게 공원을 달렸고, 나도 오랜만에 따스한 햇살에 일광욕을 하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조금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남편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을 것이다. 역시 남편은, 오래 힘들게 하고 잠시 웃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이혼서류를 가지러 가정법원에 갔다. 재작년에 남편과 가고 두 번째 가정법원 방문이었다. 원래 아주 길치인데 그래도 한 번 가봤다고 헤매지 않고 능숙하게 협의이혼 서류 수령 및 신청하는 곳까지 갔는데.... 망할, 점심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친구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가정법원에 가서 협의이혼 서류를 챙겨 왔다. 창구에 계신 분이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평일 9시 30분까지 와서 교육을 꼭 들어야 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차마, '전에 한 번 와서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지 못해서 처음 듣는 척 그분의 말씀을 경청한 후 서류를 챙겨 나왔다.


협의이혼 서류를 챙겨 온 것이 남편과 꼭 이혼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이건 일종의, 부적과 같은 것이다. 사실은 나는 웬만하면 이혼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고 나도 남편에 대한 감정이 아직은 남아있다. 올해가 지났을 때 이 서류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어쩌면 이 서류들의 빈칸을 다 채운 후 남편과 함께 가정법원에 앉아 미성년 자녀 양육 영상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협의이혼 서류를 내가 올해 쓰게 될지, 그래서 마이 허즈번드가 마이 X-허즈번드가 되는 날이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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