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출산 스토리

by 휴지기

가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거나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하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역시 사람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서 성당이나 교회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사주팔자 같은 것을 보기도 했다.


어느 사주 집에 가든 내 사주팔자는 아주 좋게 나왔다. 정신적, 경제적 큰 문제없이 잘 산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문제투성이인데 사주풀이가 이렇게 나오는 건 아무래도 내가 태어난 시가 잘못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아 나는 종종 엄마에게 나를 정확히 몇 시에 낳았는지를 묻곤 했다.


“엄마, 나 몇 시쯤 태어났어?”

“너? 아침에 태어났지.”

“그러니까 아침 몇 시?”

“몰라. 해가 뜨기 전이었나, 해가 다 뜬 뒤였나, 잘 생각이 안 나네. 너무 옛날 일이라.”


내 태어난 시를 잘 모르는 이유는 내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들은 얘기를 정리해보면,


만삭의 엄마는 아빠와 함께 밭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진통이 오는 것 같다고 하여 아빠는 누군가에게 차를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는 전화를 하러 윗집으로 뛰어갔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전화기도 없고 차도 없어서 엄마가 병원에 가려면 이런 번거로운 절차들이 많이 필요했다.


아빠가 전화를 마치고 뛰어왔을 땐 내가 이미 나오기 직전이었다. 아빠는 병원까지 갈 새가 없다고 판단해 할머니와 함께 출산 준비를 했고 나는 빠른 속도로 순풍, 나왔다.


그래서 엄마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밭에서 일을 한 시간은 이른 아침일 테지만 진통을 몇 시간을 했는지, 한두 시간인지, 서너 시간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때는 아기를 건강하게 잘 낳았다는 게 중요했지, 몇 시에 낳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난 시간을 정확히 확인하지도, 당연히 기록해놓지도 않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했다. 병원에 갈 경황도 없던 그 찰나에 어떻게 내가 태어난 시간을 기록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아침이라고 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수밖에.


신기한 건, 내 동생들도 둘 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침에, 논일이나 밭일을 하다가 말이다. 그래서 사실 엄마, 아빠가 얘기해준 저 출산 스토리는 내 것이 아니라 동생들 것인지도 모른다. 동생들이 자신들의 출산 과정을 물어도 엄마는 항상 저렇게 답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아침에,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하다가 순풍 나왔고, 언제나 아빠와 할머니가 우리를 직접 받고 탯줄을 잘랐다는 것만 알고 있다.


딸들은 엄마와 비슷한 출산 과정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래서 내가 출산을 할 때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엄마를 닮아 오래 진통하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네 시간인가 다섯 시간 만에 순풍 자연분만을 했다. 아침 7시 35분에.


우리 아이는 나중에 혹시나 사주를 볼 일이 있을 때 정확히 자기 생년월일시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마저 딸이었을 때 할머니의 상심이 컸던 것 같다. 셋째를 출산했을 때는 할머니가 미역국도 안 끓여 줬다는 이야기를, 엄마는 할머니랑 싸울 때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도 할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하셨다.


출산하기 전에는 미역국이 뭐라고 똑같은 얘기를 질리지도 않고 하나 싶었는데, 아기를 낳아보니 출산 직후의 받은 상에 미역국이 없었을 때 엄마가 느꼈을 당황스러움과 공허함, 원망 등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왜 애기 낳는 날 아침까지 일했어?”

“그날 느이들이 나올 줄 몰랐으니까.”

“곧 애기가 나올 거라는 건 알았잖아. 병원에서 예정일 줬잖아.”

“애기가 예정일에 딱 나오나? 그리구,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 눈 떴으니까 일하러 나가야 한다구. 애기야 뭐,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안 힘들었어? 배 잔뜩 불러서 일하는 거”

“힘들었지. 언제는 안 힘들었나? 맨날 힘들었지. 어떡한다냐,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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