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이이구 이년아!
아직도 자고 있으면 워쪄? 염전에 나가봐야 할 것 같으니 오빠랑 영희 밥 챙겨 먹여."
엄마의 샛된 목소리에 깨기는 했는데 눈이 들러붙었다. 어젯밤에 제사를 지냈다. 늦게 먹고 잔 탓인지 눈곱이 눈을 막아버렸다. 밥풀 같은 눈곱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없는 살림에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 한다며 아버지는 할아버지 제사를 우기듯이 고집했고 엄마는 대꾸대신 옆집에서 한 됫박 빌려 온 쌀로 뫼를 떠 놓았다.
말린 생선 몇 마리 쪄 놓고 어디서 구해 온 건지는 몰라도 시들하긴 해도 사과와 배가 있었다.
어제 하루종일 툴툴거리면서도 엄마는 묵나물도 볶아냈다.
두어 번 제사를 기억하지만 어젯밤 제사가 제일 풍성해 보였다.
아버지가 있는, 아니 보이는 곳에서 멍청하게 서 있을 거면서 뭐 그리도 바쁠까.
찢어진 문구멍으로 아침 바람은 싸늘해도 햇빛은 따사롭다. 오빠는 볼 것도 없는 뒷동산에 올라갔을 거다. 나이보다 작은 체구에 힘을 기른다나 어쩐다나 허구한 날 밥만 먹으면 뛰고 구르고 나무에 대고 주먹질을 해댄다.
이사 와서 아직 학교를 못 가고 있고 그렇다고 성격이 원만치도 못해서 아직도 친구 하나를 사귀지 못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밤에 도착한 이 집도 지난번에 살던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금기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염부들의 막사는 늘 찝찔했다.
아버지는 전에 있던 곳에서 하던 염 부장 일을 한다며 이사 온 다음 날부터 쨍한 소금밭에 두 발을 묻고 서 있었다.
" 또 이사 가?"
엄마는 매번 서둘러 손에 잡히는 대로 짐을 쌌다.
소금밭으로 염부가 아닌 사람이 다녀가면 엄마의 얼굴은 항상 울상이었던 것은 훗날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대충 싼 이삿짐을 지게에 지고 밤을 기다렸다가 우리 삼 남매를 앞세워 길을 나섰다.
얼마를 걸어야 할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붙박이처럼 아버지의 발은 소금밭에 심어져 있고, 엄마의 발은 아버지가 보이는 곳에서 땅을 파고 심어지고 있다.
남사당 패거리가 오는 날이었단다. 시루단지를 엎어 놓고 내다보던 양가집 맏며느리의 눈에 들어온 꽃소년은 엄마의 짝사랑이 되었고, 결국 내일이면 떠날 꽃소년과 야반도주를 했던 그때부터 엄마 아버지의 도주는 이제 이사라는 말로 정당화 했지만, 아직도 도망 중이었다.
도망은 발이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
염전에서 차례로 태어 난 우리 삼 남매는 소금에 절여 저서인지 유달리 또래보다 작고 쪼글쪼글 마디게 컸다.
저 아래 염전에서부터 지금 이곳 황해도 염전까지.
이제는 이사도 못 가게 되었다는 말을 나는 옆집 박 씨 아저씨에게 들었다.
무슨 금을 그어 놓아서라고 했다.
땅따먹기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