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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그림.

보이는 아픔.

by 날개



딴딴한 벽처럼 박무는 새벽을 밀어 부치 듯이 세상을 장악해 버린다.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단지 전체가 숨도 쉬지 못하는 것 같다.
앞 동 12층의 불빛이 깜빡이는 듯이 켜진다. 이내 안갯속으로 숨어버린다.
옆동 8층은 깜깜하다.
한 달전쯤 문득 옆동 8층의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었다.

어질러진 듯한 광경이 놀라웠다. 그야말로 일부러 어질러 놓은 것인듯했다.
며칠은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거슬리는 물건들의 어지러운 상태가 자꾸 시선을 끌었다.
높은 층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하늘의 광활함 때문인지라 뭔가 촘촘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었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어느새 창을 내려다보다가 고개가 그쪽으로 돌려졌다.
유난히 넓은 베란다는 던져 놓은 것 같은 물건들로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쌓여 있다.
적채 된 양은 시긴이 오래 쌓인 듯하다.

누군가 아프구나.

지난 주말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8층의 베란다를 묘사하는 중에 두 친구는 모두 경험이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마치 지난날 자신들의 시간이었던 듯이.
어느 한때.

자신들의 아팠던 시간을 풀어놓는다.
그저 멍한 시간이었다고. 자신을 잃어버린 때였었다고.
그랬구나.
많이 아팠었구나.


옆동 8층의 누군가는 지금 많이 아프구나.

첫 삽을 뜨듯이 자신의 어둠을 퍼내야 할 텐데......

퍽! 퍽!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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