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그날은 시부모님의 제삿날이었다.
같은 날이어서 가족이 모두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철상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고명딸이었던 시누이가 빨뚜미소 한 잔을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
" 나는 하도 엄마한테 욕을 먹어서 우리 딸에게는 욕을 한 적이 없어. 왜 그렇게 욕을 입에 달고 사신 것인지. 이름은 알고 있었으려나?. 이년 저년이 내 이름인 줄 알았어."
보라돌이들이 모두 놀란다.
또 한 순배의 술잔이 돌고, 짜릿을 넘어 찌르르했다.
그때였다 막내 시동생이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띄운다며 하는 말이.
" 나는 작은형한테 이름을 불렀는데 엄마, 아버지, 형, 누나가 ㅇㅇ야 하니까 나도 그렇게 불러야 하는 줄 알았어. 작은 형 미안해."
까르르륵. 빵 터진 웃음.
술잔을 비운 큰형의 두툼한 입술이 열린다.
" 나는 일곱 살 이후로는 설날이 싫었어. 지금도 가래떡 은 별로야. 가래떡 보다 더 길게 온갖 욕이라는 욕을 다 먹어서."
" 왜? 어릴 때는 설날이 제일 좋은 날인데."
멀뚱 거리는 시누를 건너다본다.
" 우리가 외가에서 살 때였어, 원래 가래떡은 설날이 오기 며칠 전에 하잖아. 굳어야 썰 수 있으니까. 지금도 기억이 선명해. 다음 날이 설인데 사연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밤에 엄마가 쌀을 머리에 이고 내가 앞에서 후라시를 비추며 방앗간을 갔어. 근데 엄마를, 니들도 알다시피 나보고 쌀 다라이 보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잖아. 길게 늘어 선 줄이 줄어들고 어쨌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떡을 빼서 집으로 올 때였어.
눈이 왔었는지 아니면 잔설이 얼어붙은 건지 길이 미끄럽기도 했어.
두 발자국쯤 앞서 가며 불빛을 비추는데 뒤에서 엄마가 신이 벗겨지면서 떡 다라이를 엎은 거야. 그런데 넘어진 건 엄만데 왜 나 때문이라는 건지. 같이 떡을 주워 담았어. 세상의 욕이라는 욕은 그때 다 들었던 것 같아. 그 모지락 지던 목소리. 따뜻했 던 것이 떡인지 내 눈물이었는지."
" 몇 살이었다고?"
"아랫집으로 분가 전이니 일곱이나..... 많아야 여덟 살이었지."
" 우리 손주 나이네. 에고."
조용했다. 모두가 울고 있었다.
애들 고모부는 아예 티슈를 다 적셨다.
사 남매의 추억에 우리 보라돌이( 우리 사 남매의 자식들에게 내가 붙인 이름이다.)들도 눈가도 젖었다.
" 자 자! 한 잔해 한 잔해!
우리들은 더 잘 살자."
쭈욱 들이키는 빨뚜가 씻어 내린다.
시누이의 분위기 전환에 모두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제삿날의 에피소드다.
제사나 명절이 우리 가족에게 주는 행복은 나눔도 되고, 치유도 되고, 서로에게 배움도 주니.....
안주를 데우며 혼자인 나는 마냥 부러웠다. 울고 웃는 저 사 남매가.
지난 명절에 폐렴으로 입원을 해서 지나쳤던 모임을 오늘에야 한다.
어머님, 아버님!!
두 분을 그리워하다가 기억이 부른 참사에 가까웠지만 절대 원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