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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맛!

열무김치를 담그며......

by 날개

홍고추 믹서기에 넣고 드륵 드르륵 거칠게 간다.
열무 얼갈이 절여 놓은 것을 씻어서 건진다.
식혀놓은 풀에 양념 넣어 간 맞춰서 털듯이 버무린다.
여름 맛의 으뜸인 열무김치.

시골 고모라고 불렸던 시고모님이 머리에 이고 등에 메고 양손에 가득 들고 오신 보따리에서 나온 시든 열무와 얼갈이 그리고 붉은 고추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쉰다.
단내 나는 입마름을 한 대접의 물로 가시고 그제야 인사를 받으신다.
" 무겁게 이걸 다..... 여기서도 요즘은 별로 비싸지 않은데요."

들으신 건지 못 들은 척하시는 건지 벌써 마당에 펼쳐진 김치거리는 소금에 절여지고 있다.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온 내 손이 멋쩍어졌다.
친정엄마도 손 빠르시기로는 지지 않으시는데 시고모님의 손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끝물이라 굵기도 제각각에 사이사이 붉은 고추가 섞인 고추 한주먹과 꼬부라진 가지를 주시면서 그제야 웃으신다.
딸 셋을 오빠네 맡겨 놓고 항상 미안해하시는 모습에서 오히려 사촌시누이들을 살뜰하게 챙겨 주지 못하는 내 입장이 부끄러웠다.
시고모님에게는 올케가 되시는, 내게는 시어머니가 되시는 분의 나눌 줄 모르는 고약한 심성이 더 부끄러웠다.
새벽부터 김치거리 뽑고,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훑다시피 따셨을 테고, 옆에 심어 놓은 쪽파 잡히는 데로 뽑아서 밭을 벗어나며 딸 시간이 없어서 매달려 있던 마를 대로 마른 옥수수도 몇 개 담아 오셨다.
자며 졸며 까 놓았을 마늘 얼려놓은 것까지 챙겨서 첫차를 타셨으리라.
이고, 지고, 들고 오른 첫차에서 남은 피로를 재우셨을 시고모님.

부모 마음이 모두 같지 않다고 말하는 남편은 고모를 항상 자신의 엄마와 바꾸고 싶었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자취하는 세 딸의 살림이 오죽한가.
지금이야 흔히 믹서기도 없으니, 두둘두둘 거리는 항아리 뚜껑 같은 데다 물고추를 거칠게 갈아 시골에서 가져오신 실치젓을 넣어 김치를 버무리신다.
한쪽에서는 마른 옥수수가 단내를 뿜으며 석유곤로 위에서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딸들에게 소리친다.

" 엄마 왔어. 빨리 와."

맛을 보라며 집어주신 그 김치는 실치젓갈의 맛이 아닌 어미의 젖맛이었다.
지금도 열무김치를 담글 때면 실치젓갈의 미지근한 비린 맛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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