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나물은 고구마순이지
손끝에 남은 자줏빛깔의 기억
어린 날 여름
나는 곧잘 고구마순의 껍질을 벗기며 엄마를 기다렸다.
유난하게 좋아하시던 그 나물..
오늘 난 딸애들을 위해 또 고구마줄기의 껍질을 벗긴다
외할머니 음식의 익숙한 맛을 기억하는 딸애들을 위해 손끝에 자줏빛을 물들인다.
왜 껍질을 벗기느냐는 물음에 엄마는 그래야 부드럽고 간이 잘 밴다고 하셨다.
간장과 양파와 풋고추, 그리고 마늘을 넣어 조물 거려서 볶아내면 된다.
열무김치 넣어 같이 비비면 금상첨화였던 나물.
특히나 엄마와 같이 먹었던 맛이라서 더 자주 하게 된다.
그리움은 아직도 곳곳에 숨어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앞집 기철이 엄마는 고구마순나물을 좋아한다면서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미장일을 하는 남편이 일을 나가지 않는 날을 빼고는 늘 신작로만 내려다본다.
그런 기철엄마를 엄마는 마음이 허한 병에 걸렸다면서 종종 반찬을 나눠 주곤 하셨다.
유독 내가 주기 싫어했던 반찬이 고구마순나물이었다.
신작로에 말갛게 서 있을 시간에 사다가 까서 삶으면 되는데, 아니면 내가 다듬을 때 같이 까던지 하면 덜 쌜쭉했을 것을......
부르튼 내 입술을 꼭 누르며 엄마는 꼭 이렇게 말했었다
" 여름 나물은 빨리 쉬니 맛있을 때 나눠 먹으면 좋잖아."
이제는 그때의 엄마나 기철엄마의 허했단 나이보다 훌쩍 커버린 나는 봄가을로 나물 잔치를 한다.
특히나 남편이 더 신나 한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나물들을 남편은 어릴 때부터 채취했던 곳을 기억해서 때 맞춰 준비해 온다.
봄나물 잔치 때는 엄나무순, 오가피순, 두릅, 오이순, 가죽나물을 겨울에는 묵나물로 친구들 모여 앉아 서로의 웃음을 나눈다.
남편은 제철에 나는 나물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있으니 꼭 나눠 먹고 모두 허한 기운 채우라는 말을 한다.
고롬 고롬!
모두 모여 허한 마음 꼭꼭 채우며 사는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