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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Aug 20. 2023

김숨의 국수를 읽으며.

나의 국수와 그녀의 국수


  국숫발을 뽑는 데는 힘이 오지게 든다.
  글을 읽다가 밀가루반죽을 치대고 있는 어린 날의 나를 만난다.
 11살의 아이와 소설  43살 어른의 손으로 만드는 국수는 같지만,

  나의 국수와 그녀의 국수는 다르다.

  머리에 이고 온 보따리 내리며 엄마의 코는 멸치가 적당히 우려 졌는지 덜 우려 졌는지부터 냄새로 가늠하셨다.


 밀가루만 반죽하면 맨질거리지만, 콩가루를 섞으면 덜 들러붙고 도톨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맛도 고소해지고,

 지금처럼 냉장고에 넣지 못하니 더 많이 치대고 젖은 천으로 덮어둔다.
 동생들이 좋아하는 감자를 많이 넣은 국수는 동생들 먼저 먹이고, 엄마가 좋아하시던 호박을 듬뿍 넣어 끓여 내는 국수는 엄마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부지런히 밀대로 밀어 끓여낸다. 

 그래서 나의 국숫발은 늘 쫀득쫀득 했다.
 하루의 시장끼를 보따리와 함께 내려 둔 엄마가 맛나게 드시니 자주 만들었다.


 마흔도 되지 않았던 엄마의 머리색은 외할머니보다 더 희었다. 내게 세상은 저녁에 만나는 엄마의 표정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졌다.
 나의 국수는 늘 엄마를 웃게 만드는 천국의 국수였다.

 하지만,

 그녀의 국수억지로 만들어진 모녀의 끈이 과거의 분말이던 때부터 반죽을 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까지 시나브로 질겨져 버렸다. 어쩌면 덜 치댄 국수가 아니었을까?
 밀가루 분말에 소금물을 부어 휘적이며 손에 붙은 반죽을 떼어내듯이 진절머리 냈던 과거에 엉겨 붙은 기억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필요한 숙성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녀는 새어머니와의 첫 만남에서 등장한 말간 국수가락을 톡톡 자르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한다. 함께 엉켜지기 싫었던 반항을,
 특별할 것 같지 않았던 국수 한 그릇에 묵었던 시간이 머리를 헤쳐 풀 듯이 퍼지고 그나마 입안의 암으로 넘길 수 있는 음식이 국수라고 생각한 그녀는 속죄하고 싶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새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들어와서 하녀처럼 산 여자. 절제하기도 이미 늦어버린 72살의 여자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혀에 생긴 암으로 나머지 말을 묻었다.
 퉁퉁 불어 저절로 끊어져 버리는 시간을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밀가루반죽 덩어리를 치대면서 그녀는 꾸준히 과거와 현재를 밀개로 민다.

 나의 국수는 미래였다.
 잠시 후에 웃으며 맛있게 드셔 줄 엄마가 오실테니, 맛있다고 칭찬을 해 주실테니......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불어 터진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작가의 불어버린 국수는 결국 숟가락으로 똑. 똑. 잘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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