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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Sep 16. 2023

그 골목 사람들

쌈닭의 진정한 고수는?

"나는 내가 영수를 낳은 줄 알았잖아."

 이 말은 동병상련의 내게 모든 것을 함축한 안부였다.
 내가 안부를 묻기도 전에 영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툭 이 말을 뱉었다.
  가끔 경조사에서나 만나게 되지만 그때마다 영이는 늘 나와 술 한잔을 청했다.
 알지. 내가 알지. 다 알지.
우리는 장녀였다. 부모에게는 아픈 손가락일 테지만 우리에게는 떼어내도 자꾸만 달라붙는 도꼬마리 은 동생들.

 영이의 동생은 지체와 지적 장애가 있었다.
 6학년 초에 전학을 온 영이는 꽤나 밝은 아이였다. 키는 작았지만 쉬는 시간이면 뒷자리인 우리 근처에 와서 머스마들과 싸운 이야기를 마치 지어내 듯이 이야기해 준다.
 이유는 나와 같았지만 나는 항상 이겼고, 영이는 늘 동생과 숨거나,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
 영이가 사는 동네는 상이군인촌이라 아이들도 더 억셌다.
 영이 아버지도 한쪽팔에 장애가 있어서 엄마랑 같이 일을 다녀야만 했다.
 작기도 했지만 영이도 건강하지도 않았다.
 내 동생은 병치례로 제 나이만큼 자라지 못했는데 영이의 동생은 먹고 자는 것을 좋아해서 인 나이보다 훌쩍 자랐다.
 스무 살 무렵의 우리는 영수가 있을 만한 복지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웃자란 영수가 어릴 때 하던 대로 아무나 만지는 것이 문제가 되었단다.
 영이의 엄마는 절대 보낼 수 없다고 했지만 밑에 어린 세 동생과 함께 영수까지 보살피며, 직장을 다녀야 했던 영이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어른 몸을 가진 어린아이.
여주에 있던 복지시설에서부터 서울까지 우리는 울면서 왔다.
 
 조문을 갔다가 만난 영이는 또 눈짓을 보낸다.
 내가 끄덕이자 친구들이 아예 작정하고 들러붙는다. 또 둘만 따로 논다며.
 마침 영이가 사는 곳이 가까워 영이가 안내해서 대여섯 명이 몰려갔다.
 한 순배 술잔이 돌고 나서 영이가 내 어깨를 잡으며 하는 말이
 " 얘들아! 나 6학년 때 작았잖아. 그때 경이가 내게 (넌 큰 나무 같다.)

고 했어. 6학년, 13살짜리 입에서 동갑내기에게 말이야. 그런데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내가 나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하하하."
 내 기억에도 없는 말을 한다. 하긴 그때 내게 책을 빌리러 자주 왔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 그러고 보니 나는 높이 올라가야만 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경이 봐라. 얘는 넓게 살았어. 난 경이가 부러워.
우린 늘 아픈 동생과 모자란 동생 때문에 늘 전전긍긍했지. 오죽하면 난 정말 내 동생을 내가 낳은 줄 알았다고. 지난주에는 엄마 아빠 모시고 코로나 접종하러 갔는데 세 살 백이 쌍둥이 보다 더 힘들었다. 우리 영수 도 아직 세 살인데...... "
 넘기던 술이 쓰디썼다.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푸념처럼 영이의 입에서 말하기 꺼렸던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세상과 싸웠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살게 되었지만 결국 온몸이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안타까웠다.
영이는 오롯이 모든 것을 혼자 해 냈다.
자존심인 줄 알았던 것이 열등감에서 비롯된 악착이었을 뿐이라고.
 다른 친구들은 영이와 나를 생경스럽게 본다. 하긴  우리의 이야기를 말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사실은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그랬다. 그래야만 했다.
 모여 앉은 친구들 중에 가장 밝고 씩씩했으니까. 
 " 야! 모두 술잔 들어. 어릴 땐 내가 쌈닭이었지만 진짜 쌈닭은 영이었네. 잘들 살아냈네. 산 91번지 친구들아."


 낮술은 이상하게 정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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