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저녁상을 차렸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 예! 선생님" 잠깐 망설이는 듯한 그의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차린 밥상 앞에서 잠깐 갈등이 일었다. 선생님께서 댁에서 출발하신다니 얼른 먹고 나가자. 어차피 선생님은 저녁 드셨을 것이라고. 선생님은 아픈 사모님의 저녁을 제시간에 맞춰서 같이 드시기 때문이다. " 무진장 보고 싶다 하시네." 수저를 드는 그의 코 끝이 붉다. 약속장소 근처에 선생님은 우리를 맞으러 오고 계셨다. 몇 달 전에 나무 전지를 하시 던 중에 떨어지셔서 허리를 다치셨다. " 내가 연락 하마 " 간혹 전화로 안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죄스러워했지만 선생님의 깔끔하신 성격은 우리를 다독여 주셨었다. 허리가 35도쯤 굽어서 얼른 알아볼 수 없었다. " 선생님 들어가 계시지. 왜 올라오셨어요?" " 빨리 보려고." 목젖이 내려앉았다. " 약주 드셔도 괜찮으세요? " " 저녁 먹다가 막걸리 한 잔 하는데 니들이 너무 보고 싶은 거야. 마누라한테 욕 한 바가지 먹고 왔어." 막걸리 한 잔 유쾌하게 들이켜신다. 우리는 목젖이 열리지를 않아서 입술만 적실 수밖에 없었다. 5개월 만에 뵙는 선생님은 많이 수척해지셨다.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결국 우리가 먼저 눈물을 흘렸다. " 몸이야 치료받아서 낫고 있는데, 그리움은 마치 암덩어리처럼 커지면서 아픈 거야." 술잔을 채워 주시는 선생님의 손끝이 떨리신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회사를 승계작업에 들어가셨다고 하시며 이제는 좀 쉬시며 그간에 써 놓으신 책을 발간하신다고 하신다. 그간 아픈 시집들을, 감동의 많은 글들로 뒤돌아보신 생애를, 이제는 애증의 강을 건너시며 참회의 글을 쓰시겠다 하신다. 나는 보았다.
선생님의 눈 속에서 찾아낸 단어 하나. 후회하고 계신다. " 선생님, 10년 전의 제나이로 돌아가신다면 뭘 제일 하고 싶으세요?" 순간 눈이 붉어지신 선생님의 목소리는 끓는 울음이었다. " 난 한 사람에게만 존경받고, 사랑받고, 아끼며 행복하게만 해주고 싶어. 난 욕심 껏 사업만 넓히며 산 것이 집사람에게 제일 미안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 것 같아. 정말 돌아간다면 집사람만 위해서 살고 싶어. 내게 있어 하나뿐인 내 마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