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나의 어른의 기준은 술과 커피였다.
마실 수 있는가, 마실 수 없는가.
살짝 맛본 쓰디쓴 것들을
굳이 마시고 싶지도 않았지만,
인상을 쓰면서도 계속 마시는 어른들이
진짜 어른 같았고, 이해가 안가면서도 신기했다.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는 나이가 되자
나는, 어른의 시작이 되는 나이는 몇살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릴때 생각했던
'뭘 할 수 있게 되는 나이'
가 과연 어른의 시작일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꼭 어른인것은 아니고,
나보다 어리다고
꼭 아이가 아니었다.
배려가 빠진 자기생각에 빠져
고집스럽게 자기 이야기만 하고,
이타심 따위 상관 없는,
적나라한 욕심과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솔직하다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뻔뻔한 어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게 아니라는 것에-
나는 참 서글퍼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참고로 나의 뻔뻔은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긍정의 뻔뻔함인 이중의미의 "뻔뻔"이다.)
사전적 의미의 어른은
다 자란사람,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결혼을 한 사람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이라 적혀져 있었다.
그 의미를 본 순간, 나에게
어른의 뜻이나 의미가
중요한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작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가 아니라,
"어떤 어른이 될것인가" 였다.
그 고민과 성찰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가치의 욕망을 품고 있는 이상,
계속 이어질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어른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어른이 될 수 없다.
"오늘도 뻔뻔한 하루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