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자매 중 막내였던 나는
'방의 선택권'이 없었다.
태어난 순서대로 결정 된 방의 짝꿍과
서로의 취향과 성향은 상관 없이
늘 '같이' 방을 썼다.
옷장과 두개의 책상을 놓고 나니 꽉찬 방에서
그날의 당번을 정해 이불을 펴고 개고,
자고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집에 대한 그리고 내 방에 대해서
나는 참 많은 상상을 하곤 했다.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나무가 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한쪽 벽면에 가득 차 있는 책장,
그리고 그 앞에는 노란 빛을 품은 기다란 조명,
2명이 앉아도 충분한 길이의 오크색의 책상과
편안한 의자와 서랍장.
나의 취미를 담고 있는 공간에는
드럼과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언제든 그릴 수 있는 상태의
이젤이 펼쳐져 있는 한쪽 공간.
나의 상상의 공간은
내가 펼쳐보고 싶으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기억 속에 존재했다.
'언젠간' '내 집이 생기면' '나중에'
꼭 그렇게 만들 일이었다.
그렇게 기억속에서만 존재했던 그 공간이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꺼야'
'지금이어도 괜찮지 않아?'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나는
자연스럽게 집에 관련된 전시를 보고,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만 찾아 보던
지역의 집들을 보고,
그렇게 자연스레
'나의 취향'을 찾아가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 그냥 주어진 대로가 아닌,
'갖고 싶은' '알고 싶은' '궁금한'
의 감정을 담아 관찰하게 된 것이다.
조금씩 나의 취향이 느껴진다.
알게 되며, 발견되어지는 순간이
재미가 있다.
공간의 중요성을 느낀것도 그즈음이었다.
방송일을 하면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집은 그저 가까운, 안전한,
등의 내 "편리성"에 집중된 것이었다.
나의 취향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에 내 정서의 변화가
달라지는 것도 깨달았다.
지저분한 방일 때는 늘어지는 듯한,
게으름을 닮은 날이 많아지는 것처럼.
나의 취향을 담은,
기억속의 내 공간을
좀 더 빨리 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