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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섭 Oct 24. 2021

서울 사람의 신호등 계산법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신호등 계산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자주 다니는 길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복잡한 계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계산법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나도 자주 틀려서 좌절감을 격곤 한다. 고도로 잘 적응한 서울 사람들은 신호등 계산법의 정확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복잡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신호등 계산법을 한번 알아보자. 

가장 너그러운 사람은 아주 간단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파란불이 켜지면 건너간다. 빨간불이 켜지면 멈춘다.”


일반적인 너그러운 사람은 조금 더 발전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뇌가 발전시킨 논리적 미래 예측을 적용시킨다. 

“파란불 다음에는 빨간불이 켜질 것이다. 빨간불 다음에는 파란불이 켜질 것이니 그때 건너자.”


조급한 사람은 조금 더 복잡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신호등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을 추가한다. 

“내가 건너야 하는 신호등은 50미터 앞에 있다. 지금은 빨간불이다. 그렇다면 내가 저 신호가 바뀌기 전에 도착하려면 어느 정도 속도로 가야 하는가?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가면 가능할 것이다. “


“내가 건너야 하는 신호등은 50미터 앞에 있고, 그다음 신호등은 150미터 앞에 있다. 지금 신호등은 파란불이므로 내가 뛴다고 해서 이번 신호에 건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음 신호등까지 도착한다면 어떨까?”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더욱 복잡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거리를 추가한 다음 주변 환경까지 고려한다. 대표적으로 사거리가 그렇다. 

“나는 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현재 내 진행방향에서 가로로 먼저 건너고 그다음 세로를 건너는 방법과 세로를 먼저 건너고 그다음 가로로 건너는 방법이다. 지금 내가 걸어가면서 살펴보건대 현재 가로 방향 신호등이 녹색이고 신호등이 켜지는 순서가 시계방향이니 내가 신호등에 도착하는 시점에서 세로 방향 녹색불이 먼저 켜진다고 해도 가로방향 녹색불이 켜지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기다리더라도 가로방향을 먼저 건너는 것이 빠를 것이다.” 


일상적으로 아주 바쁜 사람들은 성질이 급한 사람들보다 더 복잡하게 계산한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바쁜 서울살이에 고도로 잘 적응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횡단보도 외에 지하철 입구 등 다른 수단과 자동차 신호등까지도 고려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 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른 횡단이 가능할 것이다. 

“ 나는 길을 건널 것이다. 50미터 앞에 내 목적지가 있고 길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횡단보도를 활용하는 방법과 지하철 입구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먼저 횡단보도를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신호등의 길이와 6차선 도로인 것으로 보아 이 신호등의 신호는 평균보다 길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시점에서 파란불이 켜져 있으니 내가 도착한다면 빨간불을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지하철 입구를 활용하는 것이 빠르다. 서대전네거리역의 3번 출구는 가깝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없고 4번 출구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2번 출구로 들어가서 4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횡단보도 가는 길에 있는 2번 출구로 들어가자.” 


  횡단보도에 서서 자동차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었을 때 발을 내딛는 사람도 있고, 신호등 보지 않고 옆 사람이 걸어가면 따라서 걷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바쁘고 각박한 사람, 여유가 없는 사람일수록 머릿속으로는 더 복잡한 생각을 하고 미세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각박한 사회일수록 화가 더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참고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시간은 기본적으로 보행 진입시간 ‘7초’ + 횡단보도 ‘1m 당 1초’를 원칙으로 결정되는데,  예외적으로 어린이, 장애인 등 교통약자 이동이 많아 배려가 필요한 장소에는 더 긴 보행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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