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이 서울 외 지역을 바라보는 태도
시골, 지방, 지역, 촌 등 서울 사람들이 서울 외 지역을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서울에 살 때는 이런 표현들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서울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모부 님의 고향이 강원도 속초, 양양이었고, 명절 때 가는 할아버지 집이 정말 ‘촌’ 이어서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서울에 살 때 다른 서울 외 지역에서 활동을 하던 활동가를 만나면 항상 들었던 소리가
‘서울 사람들은 지역을 너무 몰라’
라는 말이었다. 지금 대전에 살고 있는 이유도 그때 그런 이야기에
‘그럼 한번 살아봐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지금 서울 외 지역에 살면서 서울 사람들의 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그때 그런 말을 했던 대구 부산 충청 전라권의 활동가들의 영향도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 서울 사람이 그린 대한민국 지도 등을 쳐보면 실소를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그림들이 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니 웃픈 그림들이다.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업데이트되기도 하는데 내가 본 최근 지도는 대전에 성심당이라고 쓰여있었다. 대전에 사는 사람으로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틀린 인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지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 외 지역은 지방이고 시골이라는 그런 인식은 유의미한 해석이다. 이런 인식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해로운데 하나는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해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 사람들 내면의 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촉진제 역할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서울 외 지역에 살게 되면서 느끼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뉴스와 신문을 들 수 있다. 서울에 살 때는 흔히 말하는 5대 일간지와 3대~5대 뉴스 방송사를 보면 서울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로는 네이버 뉴스 칸에 가면 서울에서 벌어지는 곳곳의 소식들과 어떤 소속사에 어떤 연예인이 어떤 카페에 갔다더라 하는 것까지도 알려줬다. 서울 외 지역에 살면 내가 ‘한국’ 소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 ‘서울’ 소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서울은 한국의 수도니 서울스러운 소식도 있고 한국스러운 소식도 있겠지만 인터넷 신문기사 포털에서는 죄다 서울 이야기다. 별도의 지역신문을 구독하거나 찾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지역의 소식을 접하기 어렵다.
이런 것은 재난상황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데, 서울에 비가 오면 한국에 비가 오는 것이지만 화개장터에 폭우가 내려서 소가 떠내려가면 특정지역에 비가 많이 온 것이다. 포항의 지진은 서울 사람들이 여진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될 것이다. 강원도 산불은 화재 연기가 태백산맥을 넘어 서울까지 가서 서울 사람들이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니?’라고 말을 할 때 비로소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될 수 있다. 화개장터에 쏟아지는 비 속에서 공영방송이라는 KBS 날씨 안내 아나운서가 “오늘은 화창한 날씨니 산책을 나가보시는 게 어떠시겠어요?”라는 말을 듣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지 생각해보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과 불타는 집에서 탈출하면서 튼 라디오에서 편안한 서울소식을 듣고 있으면 서울 관악산에 불을 붙이면 어떨까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과한 생각일 수 있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서울소식은 서울방송에서 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을 한국이 아니라 서울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국가 균형발전이니 지방자치니 지방 소멸이니 이런 이야기들이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악영향이 있는데, 서울 사람들은 특히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서울을 벗어나는 일을 엄청 큰일로 생각한다. 서울 국민은 서울에 있어야 하니 계속 사람들은 몰리고 집값은 상승하고 자원도 집중된다. 더 복작복작해지고 더 스트레스받고 서울에 살지 못할까 봐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지금이야 좀 덜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서울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갈 때 “여기도 영화관 있어? 여기도 맥도널드 있어? 여기도 스타벅스 있네” 같은 말을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한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서울 강남 논현역쯤에서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었다. 나는 대전에서 퇴근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이었는데, 장소를 잡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버스 타고 올라가니까 고속터미널에서 가기 편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서울 친구 한 명이 “대전에서 강남 오는 직통버스 없어?”와 같은 말을 했다. 심지어 그 친구는 구미 출신이었는데, 서울 사람 다 되었다고 한참 놀린 기억이 있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을 벗어나는 것을 일종의 탈락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직장 때문 에라도 서울을 벗어난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한다. 연봉과 직장의 기준은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한다. 서울은 일종의 감옥이다. 서울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서울은 더 강력한 감옥으로 작동한다. 보이지 않는 행정구역 선은 마치 국경처럼 작동한다. 그런 곳에 살고 있으면 당연히 화가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