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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과 육식사이: 교차하는 그 어딘가_비건(3)


    앞선 에세이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비건 생활양식은 더 이상 수적 소수의 영역이 아니다. 쉽게 말해 비건 식이 지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비건' 혹은 '채식주의'가 낯설지 않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채식에 대한 이미지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자성의 보편화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담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 때 실현된다. 사회적 담론은 주제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당사자와 관계하는 공동체 전체의 몫이다. 따라서 마지막 에세이에서는 논비건과 나눈 채식주의 이야기를 실어보고자 한다. 아래 글은 비대면으로 진행된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편집한 것이고, 필자 혹은 팀 유니버스의 의견과 대상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필자는 '설', 대화 대상자는 성씨를 사용하여 지칭했음을 밝힌다.



 : 비건이세요?


 : 지금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 꼭 고기가 아니더라도 신념이나 종교때문에 먹지 않는 음식은 없으세요?


설 : 그런 생각 없이 음식을 먹어왔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서 요즘 (비건)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안 먹는 음식 있으세요?


 : 그렇구나. 저는 안 먹는 음식이나 메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음식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안 먹는 것들이 있어요. 개고기의 경우에는 개를 필요 이상으로 고통스럽게 죽이기 때문이라든가, 중국 김치 공장 운영에 신뢰가 가지 않아 중국산 김치를 먹지 않는다든가. 또는 나중에 기회가 되어도 거위 간을 먹지 않을 것 같아요.


설 : 그것도 제가 궁금해하는 식이 지향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것 같네요. 꼭 소수자의 권리라는 입장에서 비건을 바라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개인의 식이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 네, 정리하자면 음식이 윤리적 그리고 위생적으로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논란 없이 제공된다면 다 먹습니다.


설 : 대중에게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기준이 어떻게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요?


 :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 것 같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그리고 제공되는 전체 과정에서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공식품의 경우 원재료를 얻고, 노동자가 가공하고, 소비자에게 제공되는데 이 각 단계에서요.


설 : 각 단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구 : 먼저 원재료를 얻는 과정에서 동물을 장애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바주(gavage, 고무관을 이용하여 음식물을 위장에 주입하는 것)를 이용하여 거위의 지방간을 만들어내는 것,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가슴살이 지나치게 많은 닭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요. 


설 : 가공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구 : 원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는 노동자들의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당에나 매점에서 가공되는 음식이 우리에게 제공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계약직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착취한 경우도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설 : 식이 지향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단순히 음식 그 자체를 넘어서 음식을 다루는 윤리적 태도와 음식과 관련된 노동자의 권리일 수도 있다는 점이 신선하고 좋아요. 


구 : 나아가 가장 중요한 점은 위에 언급한 내용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친구들과 무한 리필 돼지고기 집에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가격 부담도 적고 친구들이 좋아하니까요. 저는 그런 곳에서 제공하는 돼지가 깔끔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권리를 보호받으면서 자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그냥 먹어요.


설 : 인지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구 :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뷔페가 불법적으로 남획한 물고기를 사용한다는 내용을 접한 뒤로는 뷔페에 가서 어류를 섭취하지 않으려 해요. 또 출처를 쉽게 알 수 있다면 확인하는 편입니다. 


설 : 정리하자면 우리가 육식을 하는 과정에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동물을 대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장애를 만들어서는 안 되고, 두번째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며, 세번째로 이 과정을 인지하는 것에 한해서 행동한다는 것이네요.


구 : 맞습니다.


설 : 그러면 그러한 점을 인지하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접하는 일을 능동적으로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구 : 제가 그런 것들을 능동적으로 찾아봐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인가요 혹은 다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는 질문인가요?


설 : 개인이 어떻게 느끼는지와 그것이 사회적 당위인지에는 차이가 있겠네요. 식이 지향을 포함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설 : 급식과 학식을 제공하는 곳에서 따로 비건식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공공이익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국민 재원을 이용해서 따로 기호식을 마련하기보다는 개인이 원하는 식품을 별도로 가져오도록 방향을 바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설 : 특히 급식의 경우에는 학생 개인이 경제적 어려움 혹은 능력의 한계로 식사를 챙겨오기 힘든 문제도 생기지 않을까요?


문 : 공공기관이 아니라 비건 식품을 포함한 다양한 식품을 기업 또는 재단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학급식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요.


설 : 그러면 채식주의 부모를 둔 아이들이 채식 식단을 먹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육 방식인만큼 가정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하더라고요.


문 : 영양학적으로는 아는 것이 없어서 말씀 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다만 부모가 아이와 비건식을 먹으며 채식주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비건 생활양식을 넘어서 당위로서의 이념을 강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도 주체성과 판단력을 가진 독립적인 주체이고, 부모가 자식 개인의 생각을 대신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설 : 그러면 동물성 원료를 지양하는 생활양식은 사회적 당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문 : 동물 해방의 논리에서는 사회적 당위를 넘어서 의무라고 보더라고요. 인간과 동물 간의 불균형한 착취 관계를 타파해야한다는 주장인데, 저는 그것이 의무라는 의견에는 비판적입니다. 


설 : 그러면 채식주의 담론이 개인의 지향을 넘어서 사회적 당위의 위치까지 오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문 :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점을 생활양식의 동질성으로 파악해서 비건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비건을 사회적 의무 혹은 당위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에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설 : 최근 반려동물과 관련된 정책과 법안이 마련되는 상황을 보면 말씀해주신 바가 와닿습니다. 


문 : 논비건도 마찬가지로 가축 및 도살을 하는 과정이 윤리적이고 위생적이어야 한다고 보고, 논비건이라고 해서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회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설 :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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