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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인생도 농업도 기본기를 지켜야 하거늘

7.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요사이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그중에 하나다.

작은 거실의 귀퉁이 하나를 광대한 면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우리 집 안마기는 8단계의 자동코스 기능이 있는데 모두 완주하려면 두 시간이 소요된다.

이것을 이틀에 걸쳐서 절반씩 나누어 안마의자에 몸을 누이면 TV를 보다가도 밤 열 시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기 마련이다.


그만 들어가서 자라고 하는 와이프의 거듭된 종용이 있고서야 ‘먼저 들어간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휑한 안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한다.

곧 전역을 앞둔 막둥이 말고도 독립한 딸과 큰아들의 방이 모두 비어있던 관계로 와이프는 딸의 방으로 이사 나간 지 벌써 몇 년째다.

이것도 우리 부부가 나이가 들었다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인데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상대방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각방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모처럼 아이들이 집을 찾는 날에도 누군가는 차라리 마루에 이불을 깔고 각기 편하게 자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난 여간해서는 잠자리를 바꾸지 않는 성품이라 본래의 내 자리를 고수하는 편이지만.


어제는 새벽 세시 반에 기상하여 벼루고 있었던 대추농장 제초제 살포 작업을 끝내고 들어오니 아침 일곱 시였다. 모자에 부착하는 LED 플래시 덕분에 별빛을 보면서도 어렵지 않게 제초제를 살포할 수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대추농장을 조성한 지도 어느덧 7년째다.


겸업 농부가 되기로 작정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관리 가능한 영농의 형태를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왕대추농장이었다.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다가 한 농장에서 소개하는 봉우리 농법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원활한 뿌리 활동을 위하여 봉우리 모양으로 높다란 두둑을 만드는 방식으로서 따로 비료나 퇴비를 주지 않아도 뿌리가 알아서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찾아간다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묘목의 식재 후에는 제초 매트로 봉우리 전체를 완벽하게 밀봉하여 지긋지긋한 잡초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현장교육까지 받고 나니 ‘옳거니 바로 저것이구나!’라면서 무릎을 치게 되었다. 벌써 몇 년째 주말마다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이 농원의 드넓은 교육장에는 이날도 전국에서 몰려온 수십 명의 초보 농부들로 꽉 들어찼다.


기존의 과수 농장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과도한 인건비 때문에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 대안으로 제시한 이 농장의 농법이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나와 같은 전국의 초짜 농부들이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 포클레인을 이용하여 봉우리 모양의 두둑을 만들어야 하는데 두둑의 높이는 최소 1미터 이상으로 할 것,  


둘째, 묘목의 식재 후에는 제초매트를 설치하여 뿌리까지 완벽하게 밀봉할 것,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본적인 가지치기 정도 말고는 이후 거의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경의적인 농법이 다 있었단 말인가? 농장을 조성할 때 들어가는 초기의 비용과 초기의 육체적 고생 이후엔 설렁설렁 과실만 수확하면 된다고 하지 않은가?

그야말로 게으른 농부에게는 구미에 딱 들어맞는 농법이라 판단했으므로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물론 경이적인 농법을 하사해준 그 농원에서 대규모의 묘목을 구입함으로써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일에 어찌 공짜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만고의 진리를 깨치는 데는 고작 3년이면 충분했다.


첫째, 2년 차까지는 흙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양분으로도 열매가 맺혔지만 영양분이 부족했던 3년 차부터는 열매의 수확이 부실해졌다. 

충분한 퇴비의 공급 없이도 뿌리와 줄기 잎은 정상적으로 성장했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생식 성장까지는 무리였던 것이다.


둘째, 봉우리 모양의 높은 두둑에 나무를 식재하는 것은 확실히 뿌리 활동을 왕성하게 하여 병치레도 적고 나무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차량이나 트랙터가 진입해야 하는 도로를 무지막지하게 파헤쳐서 1미터 깊이의 수로가 만들어졌으니 농장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기계장비는 고사하고 일용 차 한 대를 끌고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으니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셋째, 3년 차부터는 많은 비용을 들여서 설치한 제초매트의 기름기가 빠지기 시작하여 잡초 방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이사이로 잡초가 거침없이 뚫고 올라와 마음 같아서는 싹 걷어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보통일이 아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제야 과수 농원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진짜배기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이런 황당한 농법이 어디 있느냐며 혀를 찼다.

이것은 그냥 단순히 나무만을 키우겠다는 것이지 열매 수확을 목적으로 하는 과수원의 운영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SS기가 진입할 도로도 없이 어떻게 십여 차례나 되는 농약 살포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며 또 퇴비 살포는? 수확은? 수확한 과일은 대체 무슨 수로 실어 낼 것이냐며 펄쩍 뛰었다.

이런 방식의 농법은 적어도 수익을 목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과수원으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제대로 된 수확을 바라면서 농장을 운영하고 싶다면 또다시 전면적인 개조가 불가피하다는 처방전을 내렸는데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첫째, 1미터 이상의 과도하게 깊은 골을 다시 흙으로 메워서 최소한 트랙터라도 진입이 가능한 도로를 확보할 것,  


둘째, 제초매트를 모두 걷어내고 생식 성장이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퇴비를 살포할 것,   


셋째, 얄팍하게 요령부터 배우려고 하지 말고 기존의 전문 농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통방식 그대로 농장을 정상적으로 관리할 것.


어설픈 겸업 농부는 땀 흘리지 않고 설렁설렁 쉽게 가려던 자신의 잔꾀가 돌부리가 되어서 그만 코가 깨어지고 말았지만 누구를 탓하기도 민망했다.

어찌 되었던 근본 원인은 땀 흘리지 않고 공으로 먹으려다가 벌어진 일!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지만 더 늦기 전에 선택을 해야 했다.

또다시 적지 않은 비용과 어마 무시한 나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전면적으로 농장을 개조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대안을 찾아낼 것인가?


이때 알게 된 것이 미생물과 천연 액비였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무료로 미생물을 나누어준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윤 사장을 따라나섰다가 미생물의 효능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작물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천연비료의 역할과 병원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천연 농약의 역할까지 한다는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서 난 속으로 환호했다.

미생물과 액비를 혼합한 물을 농수관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토양에 살포해 준다면 퇴비와 비료를 동시에 살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라고 하니 그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의 물질이었다.


대추농장들마다 스프링클러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관주 시설로 변경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적어도 또다시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대추나무의 생식 성장을 위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진입통로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게으른 겸업 농부로서는 타협책으로 삼을 만했다.


통로를 확보하는 문제는 친구 윤 사장의 조언대로 시범 삼아서 한 필지의 대추농장 제초매트를 전면적으로 걷어냈다.

빗물이 흙속으로 스며들게 되면 장마기간을 거치면서 봉우리 모양의 흙들이 서서히 침식돼 깊은 골도 메워질 수 있다고 하니 지켜보기로 했던 것이다.   

미생물은 매주 한차례씩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여 정기적으로 20리터씩 공급받아 온다.

지만 액비는 우리 집과 농장에서 나오는 음식물과 야채의 부산물 그리고 매일매일 어마 무시하게 떨어지는 낙과 과일을 이용하여 내가 직접 제조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연초에는 갑자기 몸살이 심해져서 사무실에 출근도 못한 채 꼬박 2박 3일 동안 끙끙 앓아누운 적이 있었다.  

전날 치과에서 한 시간 가량이나 입을 벌린 채 있었으니 100% 코로나에 걸렸다고 확신했었다. 자가 격리를 한답시고 와이프는 음식이며 속옷을 방문밖에 두고 가면서 일체의 출입로를 봉쇄해버렸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면서 보건소에서 반나절을 기다려 겨우 할 수 있었던 코로나 간이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어서 몸의 상태를 토대로 이것저것을 검색해보던 중 내게 딱 들어맞는 병명을 발견했는데 놀랍게 대장균이 원인자인 급성 전립선염이었다.

치과를 다녀온 직후 변변쟎은 차림으로 수행했던 액비 통 교체 작업이 마음에 걸렸다.

액비 작업을 수행할 때는 마스크는 물론이고 보안경과 고무장갑 장화 등으로 완전무장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 기본을 간과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뇨기과를 방문하여 검사를 받아보니 급성 전립선염과 방광염이 동시에 진단되었는데 액비 작업 도중에 소변을 본 행위가 유력한 감염 원인자로 추정되었다.

독한 항생제를  일주일 치나 꾸역꾸역 먹으면서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인생도 농업도 기본기를 지켜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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