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Aug 29. 2022

잡초와의 전쟁 선포

8.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농촌은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잡초와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늘 패배했던 그간의 기억들 때문에 꽤 많은 비용과 노동력을 투입해서 처음부터 제초매트를 깔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수명이 5년가량 된다는 말만 믿고 무턱대고 덤벼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겼던 것은 고작 3년 정도? 그다음부터는 항복 항복하는 소리들이 대추농장의 거의 대부분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년까지는 일 년에 세 차례씩 예초기를 들고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장마 직후의 농장 모습은 무성한 잡초 속에 대추나무가 갇혀버린 처참한 몰골이었으니 달리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었다.

8월 초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무지무지하게 무더운 날, 머리에는 눈 보호 헬멧을 꾹꾹 눌러쓰고 무릎에는 야구선수들이나 찰법한 무릎보호대를 해야 했다.

작은 돌들이 예초기의 날에라도 튀는 경우 자칫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어 이렇게 완전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복장상태로 어깨에는 10킬로 중량의 기계까지 짊어지고 엄청난 굉음소리의 제초작업을 그것도 일주일 내내 하자면 저녁 무렵이면  예외 없이 녹다운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7년 차에 접어든 올해부터는 전투의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도 우리 마을의 노인들이 고수하고 있는 오래된 전법인데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히 검증받은 전법이다. 새벽 네 시경 슬그머니 잠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잔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그리고 작업복 차림으로 마당으로 나서면 네 시 반경, 한 말 용량의 수동분무기 약통에 물을 가득 탄 후 제초제 한 병과 약효를 배가시킨다는 전착제를 두 뚜껑 혼합하여 잘 흔든다.

그런 다음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있는 코로나 94 마스크로 코를 가린 후 무거운 분무기를 어깨에 짊어 메고 농장을 향해서 출발이다.


새벽이라 바람도 없고 적당히 어둠도 물러가는 중이라 약 냄새를 맡은 잡초들이 벌써부터 비명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족히 두어 시간은 전투에 몰입할 수 있는데 작전명은 ‘잡초 박멸 새벽 기습작전’이다.

때로는 삼십 분 정도 더 일찍 일어나 새벽에 플래시를 이마에 부착하고 작전을 전개하기도 하는데 박멸해야 될 잡초의 량이 많을 때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 메모 창에 이런저런 영농일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금년 봄부터는 매주 단위로 새벽 기습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에 앞서 우리 집 전용 베란다 카페에 앉았다.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전투의 자랑스러운 훈장인 듯 왼쪽 어깻죽지에 와이프가 파스를 붙여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좀 적당히 해요! 이러다가 사람 잡겠어요!”

“무슨 소리! 이렇게 안 하면 저것들이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엄청난 속도로 자란다고! 잠깐만 방심하면 곧 장마가 시작될 텐데 끝장이야 끝장!”

“무슨 수로 잡초를 이겨요? 이기려고 하는 당신이 더 무모한 것 같은데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보는 게 어때요?”

“휴전을 하라고? 그러는 사이에 풀 약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으로 커버리면 날보고 또 8월 땡볕에 일주일 내내 예초기 들고 싸우라고?”

“당신이나 잡초나 둘 다 징글징글해서 하는 소리예요, 이러다가 건강이라도 해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거저 남들 보기에 흉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해도 된다는 말이에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저 놈들한테는 적당히가 안 통한다니까!”  


내가 멋대로 갖다 붙인 베란다 카페라는 호칭은 실상은 대단할 것도 없는 소박하게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불과하다. 베란다 한편에 딸이 두고 간 캠핑용 의자 두 개와 탁상 하나가 전부지만 마당의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자리를 우리 부부는 그 어떤 카페보다도 좋아한다.

“약 다 먹을 때까지 커피는 사무실 가서 마시라니까 꼭 먹고 가려고 그러네? 식사 후에 바로 마시는 것이 안 좋다고 해도 도통 말을 안 들어요!”

파스를 붙이고서도 내가 엉덩이를 계속 깔고 앉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원두 두 잔을 내려온 와이프가 하는 소리다.

위내시경 검사 후 병원에서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해보자 하여 군말 없이 검사에 응했더니 결과는 가정의학과 교수의 짐작대로였다.

2주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는 제균제는 그 량도 한주먹이나 되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설사가 쭉쭉 나오는 통에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제는 치과에서 임플란트 나사까지 박은 터라 또 약이 추가되었는데 당분간은 뜨거운 커피를 자제하라는 주의까지 받았었다.

이런 사실까지는 와이프가 모르기에 망정이지 알았다면 베란다에 앉아서 모닝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마저 박탈되었을 것이다.

“어제는 당신이 날 웃겼어!”

뭔 소린가 싶어 커피 잔을 내려놓자 내가 은근히 기다리던 공모전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고작 가슴 한번 훔쳐본 걸 가지고 아가씨가 울고불고 뭐야 그게! 뭐 좀 실감 나게 표현도 좀 할 줄 알아야지 작가가 그렇게 겁이 많아가지고 무슨 글을 쓴다고…

그게 당신의 한계야! 그래도 나니까 이 정도라도 봐주는 거지”

“교황님 도착했어?”

“어제 방문했으니까 오늘쯤 평양 들어가시겠네?"

“교황님을 중심으로 펼쳐질 그 미세한 감정 신을 주의 깊게 보라고! 진짜로 신경 써서 디테일하게 그려났으니까 꼭꼭 씹어서 읽어봐! 지금부터는 훨씬 역동적일 거야!”


딱 한 명뿐이다. 공모전에 올린 글이 절반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지만 이런 얘기를 나눌 사람이 고작 딱 한 명! 

그것도 함께 사는 와이프다.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명이나마 말벗을 자청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주식 때문에 다들 어려운 것 같더라고, 당신이 이해해! 전번에 당신 친구 왔을 때 얼굴이 새까만 게 눈 밑에 다크서클도 장난이 아니 더만, 그동안 벌었던 몇 억이 다 날아가게 생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심란하겠어? 그 와중에 당신 소설 읽을 정신이 어디 있겠어?”

“그래서 진작부터 내가 주식 그만하고 안전한 땅에다가 묻어 라고 그렇게 애기해도 못 빠져나오더구먼! 하긴 오죽 해서면 뉴턴조차도 주식을 신의 영역이라고 했겠나? 뉴튼 같은 천재도 두 손 두 발 다든걸 어떻게 이겨먹겠다고?

내 기준에서 볼 때는 말이야! 주식이나 코인은 도박하고 똑같은 거야!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그것만 쳐다보고 있으니 다른 일인들 제대로 되겠어?

도박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본전만 회복하면 그만두겠다는 말인데 그게 어디 쉽나? 그냥 처음부터 안 하는 게 장땡인 거지!”

온 세상이 코로나로 점령당했을 때 넘쳐나는 유동자금으로 인하여 주식이 꽤나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럴 때 우리 주변에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주식에 입문하였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계적인 폭락 장세 속에서는 적지 않은 지인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뉴턴의 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례도 있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산행 도중 규태로부터 들었던 애기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그룹과 원숭이 그룹이 편을 나누어서 주식게임을 했다고 한다.

원숭이들은 무작위로 작대기를 던져서 해당하는 종목과 시기에 사고팔고를 했겠지만 교수그룹은 치밀하게 분석하여 뉴턴처럼 했을 것이다.

물론 초중반의 성적표는 당연히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투자에 임한 교수그룹이 압도적으로 앞섰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고 한다.

무엇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의 욕심이 개입하게 되면서 조금만 더 먹겠다며 지체하다가 결국 상투를 잡히는 실수를 반복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 뉴턴마저 손을 들게 만든 인간의 욕심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투자만이 만고의 진리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보려고 하니 이런 사단이 발생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도 농업도 기본기를 지켜야 하거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