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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참 열심히 사는 농부들의 새벽 세상

9.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오늘 눈을 뜬 시간은 새벽 세시 반이다. 어젯밤 열 시부터 잠을 잤으니 적당히 잠은 잔 것 같고 본격적으로 장마가 오기 전에 아직도 덜 끝낸 대추농장의 제초제 살포 작업이나 할까 하고 스마트폰을 열어보았다.

다행히 원기 날씨에서는 아침까지 바람이 불지 않을 것으로 예보되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모자에 부착하는 LED 플래시까지 챙겨서 마당으로 나왔다.

저만치서 이웃농부의 작업차량이 정차한 것으로 봐서는 십중팔구는 풀약을 치러 나왔을 것이다.

다들 참으로 열심히 사는 농부들의 새벽 세상에 동참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우쭐한 생각마저 든다.


어깨가 묵직한 20리터짜리 분무기를 짊어지고 집 앞 대추농장으로 향했다.

금년 들어서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매주 간격으로 분무기의 약통을 짊어진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던 잡초들도 새벽 기습작전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마을 곳곳에 산재한 건성건성 관리하는 부재지주자들의 농장과는 시각적으로 그 때깔부터가 달랐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여름과 가을까지 지나고 찬바람이 불려면 아직도 갈길이 먼데 벌써부터 어깨에 무리가 와 더덕더덕 파스를 붙이지 않는 날이 없다.

하지만 어찌하랴! 남들의 이목도 이목이지만 풀씨라도 날려서 주변 농민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제초제를 살포하는 동안 코로나 94 마스크를 썼다고는 하지만 고약한 농약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방독면을 쓰고 작업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는 있다지만 대체 이 방법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추농장은 잡초도 잡초지만 뿌리에서 뻗어 나온 산조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라 골칫거리다.

대부분의 대추나무 묘목은 자잘한 대추알이 열리는 산조인을 대목으로 사용하는데 잡초보다도 더 독하게 제초제를 살포하지 않으면 감당이 안된다.

한 필지의 농장에 제초제 살포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어느덧 태양이 솟아올랐고 시간은 여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수동 분무기의 살포 막대 끝부분에 동그란 나팔관이 붙어있어 약제가 튀는 것을 웬만큼은 방지할 수 있지만 태양이 떠오르면 제초제 살포작업을 중단해야만 한다. 태양의 열기로 발생한 수증기로 인하여 농약의 분말이 퍼지면서 작물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필지의 제초제 살포작업은 다음으로 미루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블루베리 화분들을 위해서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켰다.

만 리터짜리 대형 물 저수조 통에 전날 타놓은 미생물과 액비 두 말이 잘 녹아들었던지 물의 색깔이 짙은 먹물 색으로 변색되었다.

지금은 블루베리가 한창 익고 있을 때라 수분이 부족하면 자칫 열매의 당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삼십 분가량 충분히 적셔주었다.


다음 순서는 어제 새벽부터 수로의 물을 넣기 위하여 3마력 용량의 양수기를 계속해서 작동시켜 놓은 모내기 한 논으로 향했다. 그런데 충분히 넘치고 있어야 할 논의 물이 웬걸 절반은 말라 있었다. 양수기를 살펴보니 수로에 담가놓은 흡입 호수의 입구가 물 위에 둥둥 떠있어 수로의 물이 제대로 빨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사다리와 물신 블록 한 장과 끈을 준비해서 돌아왔다.


우선 무릎까지 오는 긴 물신으로 갈아 신고 사다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2미터 깊이의 콘크리트 수로로 내려갔다. 그리가지고 내려온 블록에 끈을 묶어서 흡입구에 단단히 묶은 후 물속으로 가라앉혔다.

잠시 후 다시 양수기를 가동했더니 길게 연결된 호수에서 메마른 논으로 물이 펑펑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발길을 돌렸다. 

        


오늘 하루의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침 일곱 시 반이 되었다. 새벽 네 시경에 집을 나섰으니 세 시간 반 만에 돌아온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도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백 회장이라 불리는 전업 농민으로부터 들은 애기가 생각났다.

그분은 적지 않은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는 분인데 자신은 웬만한 농사일은 새벽시간대에 다 끝낸다고 했다.


본격적인 겸업 농부 생활을 하기 전에는 아침 여덟 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몇 시간 동안 고된 농사일을 해치우고 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었다.

하긴 하루 걸러 주구 망태가 되었던 그 시절에는 새벽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었지 농사일하러 밭에 나가는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도 출근에 앞서 내가 직접 커피머신에 전원을 켠 후 베란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자 와이프는 이제 포기했다는 듯이 원두를 내리기 시작했다.

“은하가 못 빠져나와서 어떡하지?”

원두를 들고 오던 와이프가 뜬금없이 공모전에 나오는 은하 애기를 꺼냈다.

“왜? 은하가 걱정돼?”

“은하 죽일 거야?”

“아니 서울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 거야”

“연변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빠져나오지, 그 대목에서는 독자들이 입을 쩍 벌리게 될 거야!

“아 잠깐! 더 이상 말하지 마! 말하면 재미없어!”


내일까지 연재된 글들로 공모전의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어느새 내 연재 글도 절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신경 쓰였던지 난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다.

“터질 때가 됐는데?”

“그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지? 그냥 완주하는 것에 만족한다며?”

“두고 봐? 곧 몽쳐진 꽃망울이 터지듯이 화사하게 터져 나올 테니까! 재미를 떠나서 메시지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곧 터지게 되어있어!”

“읽히지 않는 글은 글도 아니라면서 공모전 도중에 절필을 선언한 작가도 있다며? 그 작가는 아직도 절필 중 이래?”

“며칠 그러다가 말겠지! 그 고생해서 완성한 글을 중간에 내린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래도 당신은 이번에 소득이 컸다고 봐!

당신 글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잖아! 난 벌써부터 당신의 다음번 작품이 기대가 되는데?”

어깨가 축 늘어진 날 위로한답시고 와이프가 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작으나마 위안이 된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매일 아침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커피타임을 고집하는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오전 내내 사무실을 지켰지만 손님다운 손님은 딱 한 손님뿐이었다. 물론 그전에 그냥 놀러 온 초등학교 동기 곽 사장이 두어 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 갔었다. 이 친구도 내 공모전 작품에서는 국정원의 곽 차장으로 등장하지만 내가 언질을 주지 않았으니 그런 사실을 알턱이 없다.

그냥 오늘 우리의 토론 주재는 소소하게도 세계경제의 전망과 농협의 대출이자 문제였다.

곽 사장은 전기감리회사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주말을 이용해서 간단한 전기공사까지 겸하여 제법 짭짭한 부수입을 올리는 알뜰 실속파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화재가 옮겨간 거창한 주제의 토론 말미에 현실적인 문제로 옮겨왔다.

금리인상으로 머지않아 6∼7%까지 대출금리가 오를 것 같다며 얼마 되지도 않는 농협 대출금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난 머리가 지근지근할 정도다. 사실은 우리 부부도 몇 달 전부터 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던 차였다. 그나마 비교적 손이 쉽겠다고 판단한 물건이 강변 땅이었는데 강 건너에 조성 중인 에코델타시티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강의 조망권이 부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며칠 후 잔금을 치르게 될 100평짜리 작은 땅부터 매도했고 또 바로 옆의 농장까지 마저 팔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것까지 손에서 내려놓아야 농협 대출의 큰 부분을 상환할 수 있어 와이프는 미련 없이 내려놓자고 하지만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낚시터 농장을 남에게 넘긴다는 것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특히 우리 두 아들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낚시도 하고 보트놀이도 하는 특별한 곳이라 쉽게 결정할 수 없었지만 농협 대출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곽 사장이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간다며 나간 사이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온 진짜베기 손님이 불쑥 들어왔다.

용무는 간단했다. 강변에 붙은 작은 농지를 구한다고 하기에 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마지막 강변 농장으로 손님을 안내했다.

성목이 된 왕대추나무의 푸르름만으로도 마음을 꽉 차게 만들지만 강변에 그림처럼 지어진 농막을 구경하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 건너편으로 에코델타시티가 펼쳐지는 압도적인 강의 조망권을 바라보자면 누구라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당개가 3년이면 풍월을 외운다고 하지 않던가. 25년 공인중개사 생활로 땅의 임자를 알아보는 혜안 같은 것이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내가 했던 말은 부동산 교본에도 나올만한 명언이었다.

“내 땅이 되려고 하면 최소 3일은 눈앞이 삼삼해서 밤잠을 설쳐야 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거든 전화를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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