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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모르면 끝까지 물어본다

10.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요즘은 웬만한 세무신고는 민원인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국세청 홈텍스의 기능들이 썩 잘 갖추어져 있다.

25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홈텍스가 개설된 이래 늘 단골손님이었으니 이쪽 분야에선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컨설팅 업자의 세법지식은 대충 넓고 살짝 얕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은 세무사라는 전문분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직업군들 가운데서 세무사와 법무사 부동산중개업자는 끈끈하게 연결된 삼각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년 전에 있었던 단 한 번의 나쁜 기억만으로도 난 그들에게 의지할 마음이 사라져 버렸고 홈텍스를 통하여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세무서의 담당 공무원과 직접 통화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126번 국세상담센터에 전화하여 의구심을 해소하게 되는데 간혹 여기서도 한 단계를 더 나아가야 할 때도 있다. 126번을 통해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면 부득이 국세청에 정식으로 질의해야 하는 경우다. 그래서 우리 사무실에 보관 중인 서류철에는 제법 고난도의 질의회신문을 여러 장 보관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 지역은 하나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고향마을이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동문 선후배 사이로 엮여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도 이런 관점은 늘 작동되기 마련인데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그놈의 오지랖이 발동하고 말았다.

후배가 소유한 단독 필지의 대지에는 작은 주택과 그보다 큰 근린시설 창고가 있었다. 후배는 1세대 1 주택이었으므로 주택부분의 양도세에 대해서는 비과세였으나 문제는 창고 건물에 부속된 대지의 양도세가 꽤 부담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양도세는 세무사와 상담하라고 떠넘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라 나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양도세의 문제에 까지 개입했다. 후배에게 홈텍스의 세금 모의 계산하기에서 계산된 두 종류의 예상 양도소득세액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선 두 건물의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개별 건물의 부속토지 면적을 안분 계산했다. 그런 후 창고의 부속토지는 공시지가와 엇비슷하게 주택의 부속토지는 그 외의 예상 매매금액으로 구분하니 두 부속토지의 평당 가격이 배 가까이나 차이가 났다.

이렇게 계산했을 때와 매매금액을 단순히 전체 대지의 면적으로 나눈 가액을 창고의 부속 대지 면적으로 곱했을 때의 양도세가 어떻게 차이 나는지를 후배에게 비교 설명한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적지 않은 금액의 차이로 인하여 후배는 당연히 절세의 조건이 아니라면 매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 조건에 동의하는 매수자를 물색해야만 했다.

당초 후배는 1세대 1 주택을 매도한다는 생각에 양도세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터라 과도한 양도세를 부담하면서까지 매도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렵게 계약을 체결하고 잔금까지 치른 이후 양도신고업무를 의뢰받은 세무사로부터 제기되었다.

동일 필지의 대지는 동일 가격으로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차등 적용하게 되면 세무서에서 인정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후배는 애당초 이런 조건이 아니었으면 계약은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핵심은 과도한 양도세를 부담하면서까지 매도인은 계약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두 건물의 부속토지 가액을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계약의 전제 조건이었다는 사실이다.

계약을 체결한 이후 단순히 양도세를 탈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이렇게 인위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 팩트다. 따라서 후배로서는 세무서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당한 이의제기를 하게 될 것이다.


엊그제 생전 처음으로 국세청에 ‘사전답변 신청’이란 것을 해놓았는데 홈텍스에 들어가서 진행사항을 확인해 보니 접수 완결이라는 안내문이 떴다. 매번 그렇듯이 단계를 거쳐서 이 단계에까지 왔다. 의문사항을 세무서에 문의해 보니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담당자는 126번으로 안내해 주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겨우 126번 상담관과 연결되어 궁금증에 대해서 또박또박 질의했지만 전화를 받은 상담관의 답변이 지나치게 신중했다. 법령으로는 가능한 것 같지만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으니 친절하게도 사전답변 제도라는 것을 안내해 주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국세청 홈텍스를 통해서 부동산 등기부와 계약서까지 첨부하여 사전답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사전답변을 신청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홈택스 화면에 민원처리가 완료되었다는 공지가 떴다. 그런데 회신문이 뜨지 않아서 법규해석 담당자에게 연락해 보았더니 의외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법령이 너무나도 명확하여 해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신청서를 반려한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하면 물어볼 것을 물어봐야지 왜 이런 기초적인 질문을 하느냐는 답변이었다. 하나의 새로운 농지를 대상으로 회계연도를 달리 하는 두 개의 기존 농지를 농지대토 양도세 감면신청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쿨한 답변이었다.


충분히 예상된 답변이었지만 단순히 질문의 사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발생한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126번 상담관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어려운 세법 상담을 해야 하는 상담관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렇듯 난 모르면 직접 물어보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라도 반드시 명쾌한 답변을 얻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적합을 추구하는 겸업 농부의 입장에서는 길게는 십 년 이상을 구상하여 농업경영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불명확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문제다.    


와이프에게 사무실을 인계한 후 대토농지 감면의 대상이 되어 매서운 눈매로 지켜보고 있을 문제의 새로운 농지로 직행했다. 모내기를 한지 열흘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도 제대로 활착이 되지 않아 비실비실한 것이 걱정되었다.

남북으로 된 논의 바닥 경사가 고르지 않아서 논에 물을 넣으면 절반은 물에 잠기고 절반은 겨우 물기만 닿을 정도라서 발생한 일이다. 그래서 종일 양수기를 가동하여 하루는 물을 집어넣고 또 다음 날은 완전히 배수하여 햇빛에 말리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북쪽편의 어린모들이 위태위태한 것이 문제였다.


애당초 뿌리가 조밀하게 엮인 튼실한 모판으로 이양기 작업을 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는 악화되지 않았을 터,

이 모두가 진짜배기 전업 농부의 고견을 허투루 들어서 발생한 일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수일 내에 활착에 실패한다면 필시 물에 녹아버릴 북쪽편의 어린모들을 바라보며 이제라도 새로 심는 것이 옳은지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이웃에 사는 지역의 선배님이 다가와 지도편달을 자처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중간에 논두렁을 하나 더 만들어서 깊은 논과 얇은 논을 구분해서 물관리를 하면 좋은데 그러자면 보통 일이 아니제! 올해는 그냥 이래 하더라도 가을에는 손을 좀 봐야 되겠다”

“예 행님! 그렇잖아도 가을에는 트랙터로 남쪽의 흙을 북쪽으로 실어 날라서 바닥의 구배를 맞춰보려고요”

“그래 관리기로 두둑도 더 치올리야 되겠네, 두둑이 낮아서 물이 넘치니까 남쪽으로 못 밀고 오는 거라, 생각보다 농사가 안 쉽제? 농사 중에서 벼농사가 제일 쉬운 것 같해도 막상 해보면 보통일이 아닌 거라!”


 부동산 중개업자가 무슨 농사를 짓느냐며 잔뜩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이웃 농민들이 하나둘 의심을 거두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때 어설픈 겸업 농부는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썩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웃 농민들에게 흉 잡히지 않을 정도로는 농사짓고 싶은 것이 겸업 농부의 마음인데 그 마음이 대견했던 모양이다.


진짜배기 전업 농부로서는 농지를 단순히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웃 농민들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농사를 지으려고 했을 때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왕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면 그 과정만큼은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지역 농민들의 경계심을 풀게 하는 것이 적합을 추구하는 겸업 농부의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이양기로 모내기 작업을 도와준 친구 윤 사장에게 전화했다.

“지금 논에 와있는데 시간 날 때 한번 봐줬으면 좋겠네, 다행히 여분으로 남겨둔 모판은 충분하니까 당신이 새로 심어라 하면 그렇게라도 할 테니까 한가할 때 한번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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