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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01. 2023

이 교장의 눈물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교육감을 면담하고 돌아온 바로 다음날, 한시라도 마음이 급했던 공 회장이 구청장실을 방문했다.

그들은 중학교시절부터 막연한 친구 사이라 평소에도 편하게 청장실을 드나드는 사이였다.

공 회장은 우리 학교의 체육관 문제를 강서구청장과 북부교육장이 잘 협의해서 처리하라는 교육감의 결정사항을 전하며 이제는 정말 모든 문제가 일단락이 된 것처럼 흥분했다.


끊임없는 실무진들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이라도 이 사업을 이끌고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리 학교에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 구청장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다.

평소 구청장 자신의 정책적인 소신이기도 했지만 이 교장과 공 회장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북부교육장 또한 이 교장의 고교 선배가 되다 보니 그들 세 사람 간에는 고교동문으로서의 끈끈한 연대감이 존재했다.

이런 이유로 이 교장을 비롯한 우리 추진위원들은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두 기관 실무진들이 핑퐁놀이를 하듯이 가지고 놀던 도시락폭탄의 유효기간은 이제 완전히 종결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다만 신중한 공 회장은 그동안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한 가지의 사항을 특별히 주문했다.

두 기관장이 만날 때는 가급적이면 실무 책임자인 환경위생과장과 시설지원과장을 대동하고 함께 만나기를 요청했다.

두 기관장들이 제아무리 대승적인 차원에서 합의를 잘 보았다 하더라도 이후의 실무논의 단계에서는 또다시 삼천포로 빠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특약등기가 어떠니 소규모학교 통폐합 계획이 어떠니 하면서 처음의 원점으로 회귀시키고도 남을 위인들이었다.

그래서 쌍방의 기관장들이 보는데서 실무협의를 하게 하고 그러다가 막힌 부분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통 크게 막힌 부분을 뚫어주어야만 이 사업이 순항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제는 구청장이 주무부서인 환경위생과에 다시 한번 학교 체육관 사업을 재촉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 때문인지 오늘은 환경위생과에서 소음대책위 백 회장에게 사업계획서의 제출을 독촉하더라는 것이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서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이제야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간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건축물의 연면적은 녹산중학교 체육관 규모인 200평의 규모로 하고,

약 10억 원의 사업비로 완공된 녹산중학교 체육관시설에다가 무대조명 장치와 방송 장치, 냉난방 시설을 추가하여 도합 12억의 사업비를 맞추었다.

공 회장의 오래된 애마인 봉고차도 오늘따라 쌩쌩 잘 달린다. 정말 오랜만에 날아갈듯한 컨디션으로 구청 청사의 높다란 계단을 오르고 있다.

환경위생과에 최종적인 사업계획서까지 제출하고 나니 이젠 정말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준비한 학예 발표회가 열리는 날이다.

아침에 사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운영위원장과 고 총무, 곧이어서 공 회장까지 모처럼만에 여유로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삼십여분의 여유시간을 활용하여 모닝커피를 들면서 곽 위원장이 먼저 운을 뗐다.

“공 회장님! 구청장 하고 북부교육장이 언제 만났답디까?”

“그러게 아직 소식이 없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인데 서로가 안 바쁘겠나?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만나겠지! 뭐 인자는 거진 다 된 일이라고 봐도 안 되겠더나?”

곽 위원장이 화장지로 구두에 묻은 먼지를 닦기 위하여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인자는 진짜로 별일 없겠지요?

잘 돼 가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180도로 뒤집히는 꼴을 벌써 몇 번째 겪다 보니 도통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요!”

공 회장도 공감한다며 가벼운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교육감이 그렇게까지 약속했는데 또 무슨 일이 있을락꼬?

허기사 양쪽 실무진들이 또 무슨 요상한 수를 부릴지 누가 알겠노마는 마음 못 놓기는 내도 마찬가지다!”

고 총무도 한마디 보태고 싶었던 모양이다.

“맞십니더! 돼봐야 되는 거지 다됐다고 마음 놓고 있다가는 조짓뿌는 수가 있으니까 절대로 긴장 풀면 안 됩니더!”


일행들은 시간에 맞추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 두 칸을 연결하여 사용 중인 도서관은 공연하는 아이들과 지도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온 엄마들로 인해서 발 디딜 틈 없는 북새통이었다.

이 교장은 우측 중간쯤 귀퉁이에 앉아서 공연평을 위한 기록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몰입을 하고 있었던지 우리가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 건성으로만 인사할 뿐이다.


아이들의 학예발표회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았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극하는 우리 아이들의 동작이 얼마나 절도가 있고 우아하던지 그 동작 하나하나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것은 단순히 짬시간을 이용하여 가볍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무대장치며 아이들의 의상이며 충실한 프로그램의 내용들까지 이렇듯 수준 높은 학예발표회를 우린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여기저기서 탄성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운영위원장은 이렇게까지 훌륭한 프로그램인 줄 알았더라면 동문회와 마을에도 초대장을 돌려서 함께 구경했어야 했다면서 뒤늦은 후회의 말을 했다.

옆자리의 고 총무가 맞장구를 치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거론했다.

"지금도 자리가 부족해서 터져나가는데 그래 많이 불러가 감당이 되겠는교! 위원장님?"

"…"

 

성황리에 학예회 행사를 마쳤을 때 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회 임원들과 선생님들을 위한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모두는 공항인근의 한 복국집으로 이동했고, 준비된 넓은 홀 안에는 나란히 연결된 대여섯 개의 식탁 양쪽으로 나뉘어 앉았다.

기본 반찬은 이미 들어와 있었지만 메인 음식인 복국이 들어오려면 다소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인사말을 하기 위하여 이 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훌륭하게 선보인 학예발표회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우리 74명의 전교생 전원이 방과 후의 시간을 이용해서 2주 동안 열심히 연습한 결과였습니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우리 학생들 모두가 참여한 대단히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여러 학부모님들 앞에서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기 위하여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인사말 도중에 이 교장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잠시 벽을 응시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표정이다.

잠시 후 다시 어렵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멋진 공연을 좁은 도서관이 아니라 좀 더 넓은 다목적 강당에서 공연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만…”


순간 이 교장의 말문이 막히더니 불현듯 눈가에서는 이슬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숨기려는 듯 한동안 말없이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때 예닐곱 평 남짓한 홀 안에는 숨소리마저도 자제하려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이 교장의 눈물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이 눈물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어색한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이 교장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이 교장의 낡은 금테 안경 사이로 물기에 젖은 눈망울이 몇 번 껌뻑였다.

멋쩍은 표정으로 잠시 미소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다목적 강당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동문님들께서 애쓰시는 만큼 내년에는 틀림없이 더 넓은 대강당에서 우리 학생들이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곳에서 많은 학부모님들과 동문님들을 모신 가운데 우리 학생들이 정성껏 준비한 프로그램을 마음껏 발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방금 우리가 목격했던 이 교장의 눈물은 우리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는 한 인간의 가장 순수한 열정을 보았고, 이 열정은 우리 모두를 경건한 마음으로 인도했다.

오늘 행사에서도 이 교장만의 고집스러운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참여시켰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다리가 불편한 장애우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장애우마저도 소외되지 않도록 그에 걸맞은 역할을 맡기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배려했다.

그것은 감수성 예민한 장애우의 마음조차도 헤아려주려는 이 교장의 섬세한 마음 때문이었다.


보통의 일반 학교에서 학예회를 할 때는 선택받은 몇몇의 아이들만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는 그 아이들이 빛나도록 돕는 조연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글자 그대로의 진정한 공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 모두가 학급당 열명내외의 소규모 학교이기 때문에 실천할 수 있는 이 교장이 지향하는 특성화 교육의 산물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이 교장의 성향은 다분히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향하면서도 교육에 대해서 만큼은 대단히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무상급식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에 따른 일체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소신을 거침없이 피력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언젠가 이 교장에게 그동안의 궁금증을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비교적 가정형편이 부유한 아이들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의 답변은 명쾌했다.

가정 형편상 급식비 내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받게 될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무상급식은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재작년 이 교장은 부산교육감이 선정하는 교장·교감 다채널 평가에서 최우수 교장으로 선정되어 꽤 두둑한 상금과 인센티브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때 받은 상금을 18년째 이어오던 일본 기리시마시 관내 초등학교와의 상호 교류 방문 때 몽땅 털어 넣었다.

그 덕분에 전액 학교부담으로 5, 6학년 전원을 데리고 3박 4일간 일본을 다녀올 수 있었다.

올해도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비용의 전액을 학교에서 부담하여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일본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한다.

밖의 웬만한 체험활동에 대해서도 비용의 전액을 학교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전교생 스키 교실을 비롯하여 수련회와 문화체험, 승마, 골프, 사물놀이 풍물패, 조선통신사행렬재현, 맥도강 생태 탐사 등 그 프로그램의 종류만도 무궁무진하다.


이 모두가 이 교장이 지향하는 뚜렷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한번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황소처럼 밀어붙이는 강인한 추진력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산물이었다.

이렇듯 진정한 공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 교장의 소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도 우리 학교처럼 소규모 학교니까 가능한 일이다.

시내의 대형 학교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것을 보면 적정수의 소규모 학교일수록 오히려 질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양질의 교육이 담보되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에서는 학생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들이 단지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경쟁의 논리를 들이밀며 마치 기업체를 병합시키듯 거칠게 밀어붙이려 한다.

이 교장처럼 진정한 교육자의 눈에 눈물까지 흘리게 하면서 말이다.


이 교장의 감동적인 인사말이 끝나자 운영위원회를 대표하여 곽 위원장이 일어났다.

“사실 오늘 우리 운영위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년에는 학예발표회를 엄마들만 관람했기 때문에 작은 발표회 정도로만 알고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규모로 보나 준비한 정성으로 보나 학교운동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큰 행사였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방과 후에 딱 2주간만 연습했다고 했지만 제가 볼 때는 최소 두 달 이상은 연습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것도 다른 공부는 하나도 안 시키고 하루 종일 연습만 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교장 선생님! 이실직고하시고 사실대로 말씀해 보십시오?”

운영위원장의 재치 있는 농담에 모두는 박장대소로 응답했다.

“그 정도로 오늘의 행사가 완벽했다는 말입니다.

단지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훌륭한 행사를 협소한 도서관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교장선생님 못지않게 저 역시도 대단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기뻐해주십시오! 내년 봄에는 드디어 우리 학교에도 근사한 다목적 강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운영위원장이 사실상 체육관 건립을 확정적으로 선언해 버리자 모두는 감격에 복받친 듯 열광적인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곽 위원장은 고무된 표정으로 한층 더 신나게 연설했다.

“상상해 보십시오! 내년부터는 200평 규모의 대강당에서 우리 아이들이 학예발표회를 하게 될 겁니다!

우리 엄마들뿐만 아니라 동문들과 마을 어르신들까지 좌석을 꽉 채워서 함께 구경하게 될 겁니다.

멋진 공연을 펼친 우리 아이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미래 배영호의 참모습입니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째지지 않습니까?”

이때 고 총무가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예! 기분 째집니다!"

곽 위원장의 희망에 찬 연설이 끝나자 이 교장이 다시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는 또다시 북한식의 열광적인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박수를 쳤던지 나중에는 손바닥이 다 아플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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