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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부동산 중개업자의 변신은 무죄

2.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내 직업을 소개하자면 IMF 이듬해인 1998년부터 햇수로 25년째 부동산 중개업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업자다. 그것도 우리 마을에서는 가장 위치가 좋다는 마을 입구 최 요충지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최고참 업자다. 오래된 연식답게 우리 사무실에 진열된 대형 화분들의 포즈가 장난이 아닌데 대부분 개업식 때 들어온 25년 수령의 화분들이다.

그런데 이렇듯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차마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곧 육십이 코앞인데 삼십 대 청년시절부터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하다 보니 무료하여 몸살이 날 지경이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하루 일과를 비유하자면 조용한 호숫가에서 물고기의 입질을 기다리는 민물낚시와 같다. 온종일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보니 몸은 편할 수가 있지만 한시도 찌에서 눈을 떼서는 안 되니 중개업자의 피로도는 중노동 못지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몸에 맞지도 않은 옷을 억지로 끼어 입고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초심을 잃어버렸고 그 순간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내 눈동자는 초롱초롱했고 사업에 대한 의욕도 충만했었다. 당연히 사무실은 손님들로 북적북적하여 며칠 간격으로 계약서 쓰기에 바빴지만 요즘은 그냥 한가하고 엄청 무료하다.


손님들은 사업에 임하는 나의 태도에 대하여 대단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가감 없이 평가를 해주었던 것이다.

무료한 사무실에서 하품이나 쩍쩍하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독서광이 되었고 때로는 PC의 좌판을 두들기며 작문을 한답시고 몰입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많은 무료한 시간들을 다 채울 수 없었다.

무작정 이렇게 무기력하게만 지낼 수 없어 선택한 것이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토지 전문 부동산 중개 업자로서 그 현장은 당연히 지가 있는 들판이겠지만 이번에는 양복과 구두를 벗어던지고 작업복과 장화 차림이었다.

태어난 고향마을이기도 해서 오래전부터 적은 규모나마 농사를 지어왔기에 특별히 부담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주말이나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부담 없이 시엄시엄하던 얼치기 농부가 작정을 하고서 겸업 농부로 변신을 시도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5년 전에 있었던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내 노동시간의 절반 이상을 농업에 투입하는 본격적인 겸업 농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당시는 실제로 10년 넘게 직접 자경한 농지를 매도했기 때문에 그 어떤 부담감도 없이 8년 자경농지 양도소득세 감면신청을 했었다.

그 이후 3년이 임박하도록 아무 일도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을 때 느닷없이 관할 세무서에서 양도소득세 감면에 따른 현장 확인조사가 나왔다.


집 앞 블루베리 농장에서 피트모스와 펄라이트를 혼합하여 대형화분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을 오후 시간이었다. 내가 등록된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농지매도에 따른 양도소득세 감면의 적합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합리적 의구심을 가지고 현장 확인을 나왔다고 했다.

두 명의 조사요원 중 자신을 팀장이라고 소개한 선임자가 주로 말을 했는데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고 우호적인 말투도 아니었다.


우리 집 마당 한 편의 비닐하우스 안에 세워져 있던 트랙터 경운기 관리기 등의 각종 농기계며 실제 내가 농사일을 하고 있던 장면을 목격했던 터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가졌을 법한 합리적인 의심이 흔들릴 만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시 팀장이 했던 말은 날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지금 자신들이 지켜본 모습으로도 내가 농업을 겸하는 겸업농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면을 신청한 해당 농지에서 8년 이상을 자경한 증거는 될 수 없다고 했다.

감면 신청한 농지를 콕 찍어서 그 농지에서 8년 이상 자경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여 자신들의 의구심을 풀어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신들은 당연히 감면 불가 판단을 내리게 될 텐데 이러한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관련 절차를 밟아서 이의제기를 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구구절절한 말은 필요 없으니 자경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해 보라는 팀장의 고압적인 추궁에 슬슬 화가 치밀었다. 마치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로 의심하는 투였으니 말이다.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릴 테니까 구체적으로 한번 말씀해 보세요? 도대체 무엇을 더 제시하면 합리적이라는 그 의심을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단정 지어진 합리적 의심자에게 베풀 온정 따위는 없다는 듯 팀장은 나름 꼼꼼하게 적어온 목록서를 차가운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우선 연도별로 농사 내역을 상세하게 기록한 농지 자경 진술서가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해당 농지에서 벼농사와 엽채류 농사를 지었다고 했으니까 쌀을 도정한 정미소가 있을 것 아닙니까? 도정 확인서를 받아주시고 도정한 쌀을 팔았다면 당연히 입금내역서가 있어야겠고 또 밭작물 농사도 지었다고 했으니 작물을 판매한 상인의 입금내역서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농협에서 발행한 연도별 면세유 관리대장과 농기계들의 매매계약서도 필요합니다. 또 농지를 지분으로도 매매하셨던데 자경을 목적으로 했다면 당연히 쌍방의 지분 위치를 확인하는 측량 서류와 공증서류 정도는 있어야겠지요?”    


자경사실을 확인하는 서류라면 이미 3년 전 양도소득세를 신고할 때 차고도 넘치게 제출했었다.

매년 구청에서 발급받은 십 년 치의 농지원부와 십 년 치의 쌀 직불금 확인서, 농협에서 발행한 십 년 치의 농자재 구매 내역서 그리고 인근 주민들의 자경확인서 등 꼼꼼하게 챙겨서 신고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것도 그 번지의 농지에서 농사 지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닌 것 같은데…’

괜스레 국세청 직원의 신경을 곤두세워서 내게 좋을 게 없었으니 특별히 따지듯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 중얼거린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난 그들의 합리적 의심을 해소시킬만한 비장의 무기 하나를 소지하고 있었다.

오래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해당 농지에서의 트랙터 작업 장면을 와이프를 시켜서 찍어둔 적이 있었다. 당시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그러는 것이 좋겠다는 예감이 들어서 취한 행동이었는데 놀랍게도 그것이 적중했던 것이다.

다행히 3년에 걸쳐서 내가 직접 트랙터를 운전하는 장면의 사진들이 네이버의 사진 함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이 사진들에는 과거 철거되기 전의 이웃 촌집도 그대로 나타나 있어 나의 자경 알리바이를 입증할 빼박 증거가 되기에 충분했다.


단 이틀 만에 목차까지 달린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소명 자료집이 만들어졌는데 팀장이 요구한 자료들은 물론이고 마지막 장에는 십여 장의 기록사진까지 첨부되었다.

이 자료집을 전달하기에 앞서 느긋한 마음으로 평소 거래하던 세무사에게 연락하여 자문을 구해보았다.


그런데 나름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그 세무사가 내게 했던 말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꽤 많은 손님들을 연결시켜 주던 시절이라 내가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8년 치 이상의 증거 사진이 있다면 모를까 현장실사를 나온 이상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으니 차라리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작업 비용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내 입에서는 험한 말들이 튀어나왔고 이후 그 세무사와는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았다.


약속된 날짜에 다시 만난 두 조사요원에게 두툼한 소명자료집을 전달하자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앞의 부분들을 건성건성 넘기던 팀장이 뒷부분에서는 표정이 달랐다. 여러 장의 사진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확인이 되네요!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완전 끝!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종결이었다.  


이 사건 이후 나의 농부 생활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별생각 없이 설렁설렁 농부 흉내나 내어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등록된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이유로 합리적인 의심을 피할 수 없을 바엔 기왕에 하는 것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사무실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있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중개보조원으로 등록된 와이프와 교대한다.

아침에 출근하여 하루의 반은 부동산 중개업에, 저녁 무렵까지 또 다른 절반을 농사일에 종사하니 시간으로 따져보면 동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농작업을 이야기할 때 서너 시간의 새벽시간은 가히 황금 같은 시간으로서 진짜배기 전업 농부들은 대체로 이 시간대에 웬만한 농사일을 다 해치운다. 이 시간까지를 포함한다면 나의 일상은 압도적으로 농부의 삶에 치우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무실 교대시간을 십 분이라도 늦을 성싶으면 표정이 굳어지면서 와이프의 휴대폰에서 난리가 나는데 그만큼 감옥 같은 답답한 사무실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의사표시다.

와이프가 도착하자마자 뭣이 그리도 급한지 간단한 인수인계식도 없이 쌩하니 사무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다.


오후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대적인 복장의 변신은 필수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양복과 구두 대신 작업복과 모자 장갑 장화로 무장하고 얼굴 잔뜩 선크림을 바른 후 참으로 먹을 빵 하나와 물통까지 챙겨서 애타게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농장으로 직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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