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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두 직업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

4.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물론 억억 소리 나는 거액의 세금을 할인해 주는 국세청의 입장에서도 아무나 대충 조특법을 적용해주지 않는다. 확실한 전업농이 아닌 어중간한 반푼짜리 농민 행세자들이 조특법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장산곶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것은 당연한 그들의 소임이다.


보통 2인 1조로 현장 확인조사를 나오는데 마을 입구에 있는 미니점포부터 들린다. 고된 농사일의 중간에 막걸리 한통을 나눠 마시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떠들썩한 곳이 시골마을의 미니점포다.

그런 곳에 국세청 조사관들이 들이닥치면 그야말로 안주 하나 없이도 막걸리 몇 통이 삽시간에 비워 질정도로 최고의 안주감이 된다.

“저기 양수장 앞의 삼각구 논을 본인이 직접 자경 했다면서 시내에 사는 논 주인이 세금 감면을 신청해 왔거든요, 진짜 전업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세금 감면의 혜택을 악용하려는 자들이 있어 마을 주민들에게 여쭤보러 나왔습니다! 실제로 논 주인이 8년 이상을 직접 농사지은 것이 사실입니까?”

“뭔 소리여! 그 삼각구 땅은 십 년 전부터 우리 옆집 사는 최 씨가 소작하고 있는데!”

“그전에는 감자바우 영감이 감자 농사짓다가 헐값에 팔아먹은 땅인데 논 주인이 뭔 농사를 지었단 말이여? 순전히 뻥이여! 뻥! 세무서에서 그런 얌체족들을 잘 찾아내서 나라 세금을 빼앗기면 안 되여!”

“암! 농지를 투기로 생각하는 놈들에게는 세금을 따따블로 더 부과해야지! 감면을 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제!”


이쯤 되면 조사관들도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잖아도 비자경자들에게는 정상 세금보다도 10%의 중과세를 더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주는 지금까지 그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적이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니까! 가을에 수곡이나 받으러 왔으면 왔지 농사는 뭔 농사여! 택도 없는 소리제!”     

그 자리에서 재빨리 확인서의 문구를 적어 내려간 조사관들이 서둘러서 서명을 받은 후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허위신고 과태료와 지연이자까지 합해서 무려 1억 원에 가까운 세금을 추징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라의 곳간 지킴이로서 그 뿌듯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도시근교에 위치한 우리 마을의 경우 이미 8 팔 이상의 농지가 외지인 소유인데 물론 과거에는 지금까지도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지역 농민들의 땅이었다.

농사를 지어서는 자녀들 교육시키기가 어렵던 시절 어쩔 수 없이 팔아넘긴 땅에서 다시금 소작농이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부재지주들에게 좋은 감정 일리가 없다.

그래서 국세청의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하며 비전업 농이 거액의 세금을 삥땅 치지 못하도록 협조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우리 부동산중개 사무실의 손님들 중에는 가끔 비자경자가 8년 자경자로 위장하려는 용감무쌍한 부재지주자들이 있다. 그때마다 난 직접 경험했던 국세청의 실사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국세청의 합리적 의심을 돌파할 수 있는 모범 답안지를 알려준다.


첫째, 실제로 8년 이상을 자경 했을 것,

둘째, 그 사실을 입증해 줄 인근 농민들이 아주 많이 존재할 것,

셋째,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 서류가 빼곡히 있을 것,


이 중에서 첫 번째의 요건도 갖추지도 못한 자가 이 어려운 과제를 무사통과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자들은 웬만해선 안 믿어주니까! 국세청 직원의 합리적 의심을 해소시킬 자신이 없다면 대단히 억울하지만 부과된 양도세를 일단 납부하고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당연히 대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다. 그쯤 돼야 국세청 입장에서도 올바른 국세행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지만 자신의 8년 자경 사실을 하느님 부처님만 알고 있다면 하느님 부처님과 소통할 방법이 없는 국세청 직원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하물며 자경도 안 한 자가 자경을 한 척 쇼를 한다? 나의 25년 부동산 중개업 경험칙상 적어도 최근 10년 동안 이러한 쇼가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서 쓸데없는 짓에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고 차라리 꼼꼼한 세무사를 찾아가서 푼돈이라고 아껴보라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게 중에는 완전범죄를 치밀하게 준비한 경우를 보기도 한다. 농지원부니 농업경영체 등록증이니 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것은 초보적인 제1차적 서류에 불과하고 진짜 중요한 서류는 따로 있다.

공익 직불금 수령 확인서와 해당 마을 농협지소에서 발행하는 영농자재 매입 내역서다. 그것도 일이 년 치가 아니라 연속해서 십 년 치 정도를 미리 준비했다면 서류적으로는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커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두는 현지에 사는 농지의 임차농이 아주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어야만 가능한 일인데 지주 명의로 수령한 공익 직불금 전액을 임차농에게 다시 되돌려 주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임차농의 여름 벼농사에 필요한 농약이나 비료를 지주가 직접 농협지소에서 구매한다면 농협의 전산 영수증에 지주의 구매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그런 후 연말 수곡 계산할 때 함께 정산한다면 그 부재지주자는 틀림없는 프로다.

그런데 십 년 치를 연속해서 그렇게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겠지만 이 모든 노력들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 국세청 직원의 현장 확인 절차인 암행어사 출두다.


암행어사들은 마을 입구에 차량을 세워두고 해당 농지까지 걸어가면서 만나는 농민들마다 직접 물어보는 대단히 우직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는 진실이 까발려질 수밖에 없다. 국세청과 그들의 조력자를 자처하는 진짜베기 전업 농민들이 쳐놓은 촘촘한 그물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입장에서도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밉기는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는 특종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적합을 추구하는 겸업 농부다.

농지를 매매차익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농지 투기꾼으로 볼 수도 있지만 철저하게 법을 지키는 투기꾼! 법을 지키니까 투기라는 험한 말보다는 투자라는 보다 온순한 언어로 불릴 수밖에 없는 차원이 다른 자를 적합을 추구하는 겸업 농부라고 부른다.


농지 투자의 기본 사이클은 대개 십 년가량이다. 투자수익을 회수하기 위하여 주식을 십 년 정도 보유했다면 투자의 정석을 지켰다고 칭찬받을만하겠지만 농지는 그냥 보유만 해서는 안된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면서 진짜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농사지어야 한다.

인근 농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만 잡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닌 것이 가장 어려운 난제가 바로 풀과의 전쟁이다.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6∼7개월 동안 무지막지한 잡초와의 전쟁을 그것도 해마다 치러내야 한다.


풀씨라도 날려서 인근 농지에 피해를 준답시면 마을 통장은 물론이고 주민센터 농지 담당자의 호출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과실나무 묘목이나 대충 심어놓고 설렁설렁하다가는 자경이 아니라 휴경이나 폐경으로 오인하여 농지처분명령이라는 초강력 행정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또 해마다 봄가을로 항공촬영을 하는데 십 년 치 정도의 초정밀 촬영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국세청 공무원의 눈초리를 피해나갈 재간도 없으니 애당초 설렁설렁은 통할 수가 없다.   


전업농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흉내 정도는 내어주어야 자경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 제대로 고생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새벽에는 어김없이 20리터짜리 약통을 어깨에 짊어매고 풀약을 쳐야 하고 모내기 후에는 어린 모가 잘 자라도록 아침저녁으로 물관리를 정성껏 해주어야 한다.


경자유전의 나라에서는 관청의 허가 없이는 휴경하는 것도 범죄로 간주되기 때문에 무조건 작물을 심어야 하고 작물보다도 무지막지하게 빨리 성장하는 잡초를 성심껏 제거해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십 년 동안! 어떻게? 인근 농민들에게 민폐를 안 끼칠 정도로 바지런히!


솔직히 나의 글을 국세청 직원들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딱히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주목을 받아서 좋은 것이 없으니 괜스레 움츠려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성품이라 웬만해선 경찰서나 검찰청에 불려 갈 일은 없었지만 가끔씩 국세청과는 용무가 있는 처지라 내 기준에서는 그들이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어찌어찌하여서 조특법의 최종 관문을 통과했을 땐 당연히 보상이 따르지만 그 과정은 대단히 험난하고 지루하다.

겸업 농민이 한 바퀴의 경제적 사이클을 도는 동안 그사이 먹고사는 것이 당면한 문제가 된다.

그나마 3700만 원이라는 마지노선은 다행스럽게도 농업소득을 제외한 소득이기 때문에 농업을 통한 이익창출이라면 얼마든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세상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듯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농업을 포기하고 부동산 중개업에 매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부동산업을 포기하고 진짜 전업농을 해볼까 생각할 때도 있다.


단순히 경제적 실익만 따져보면 계산이 좀 복잡해지지만 난 지금도 그 어렵다는 적합을 추구하는 겸업 농부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상충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직업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가 무료한 중년의 일상생활을 활기차게 만들기 때문인데 그래서 난 이 위험한 직업놀이를 앞으로도 쭈욱 계속할 것 같다.


오전과 오후의 하루 일과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엔도르핀이 팍팍 샘솟는다고나 할까? 이제는 오전에 하던 일을 오후까지 계속하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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