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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그냥 이걸로 만족하자고

5.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하루 이틀, 두 달 석 달, 1년 2년 무료하게 텅 빈 사무실을 지키다 보면 저절로 독서광이 될 수밖에 없고 거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이것저것 자판을 두드리게 되면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어 종이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는 세상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웹소설 쪽으로 기웃거리게 되었다.


웬 공모전? 기존 신문사의 신춘문예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은근히 흥분되기 시작했다. 평창올림픽 때 영감을 얻어 조금씩 구상을 시작하다가 코로나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 2년 동안 나름 혼신을 다해서 마무리 집필 중이던 장편소설의 첫 등용 처로 결정했다.


무식하니까 용감하다고 총 6억의 상금이 내걸린 지상 최대 웹소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온갖 상상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난데없이 일억 원의 상금이 생긴다면 어떡하지? 앞으로 3년은 자경농지 대토 기간이라 3700만 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곤란한데 차라리 200만 원짜리 특선이 나을 것 같은데…

방송에서 인터뷰하자면 어떡하지? 이제부터 인상관리를 좀 해야 되나? 거울을 쳐다보면서 히죽히죽 맘껏 망상의 나래를 펼쳤다.  


다시 한번 쓱 거울을 쳐다봤다. 채 몇 년 남겨놓지 않은 육십의 오래된 얼굴 사이로 타협 불가의 지독한 옹고집이 한가득 드러났다.

그래도 자꾸 연습하면 인상이 좀 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런 인상 저런 인상으로 변신을 거듭해보았지만 내 맘속에 간직되어 있던 본래의 그 모습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공모전의 첫날인 5월 11일 오전 열 시를 갓 넘겼을 때 드디어 떨리는 심정으로 1회와 2회 글을 동시에 올렸다.

다음날 아침 다음 회차의 글을 올리기 위해서 첫 반응을 확인하기까지 내 상상력의 나래는 끝 간 데 없이 펄럭였다.

중국과 일본의 네티즌들이 떼로 몰려와서 거칠게 항의하면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나 함께 싸워줄까?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유제석이가 부르면 가야 하나? 밤새 이런저런 생각으로 자는 둥 마는 둥 잠까지 설쳐가며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설레는 감정으로 싱글벙글 이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가끔씩 아이들이 들릴 때 말고는 촌집에 덩그렇게 단둘이 사는 와이프가 궁금한 듯 묻는다.

“공모전 시작된 것 몰랐더나?”

난 친절하게도 와이프의 스마트폰에서 직접 다운로드를 실행하여 공모전에 올린 내 소설 찾는 법을 알려준 후 태연히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당도하여 25년째 나의 전용 주차칸이 비어있음을 확인하고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한 착각에 빠졌다.

삼십 대 초반부터 걸어놓은 나의 사업장 간판이 무려 25년째 위풍도 당당하게 걸려있다.

‘구청 등록일자 1998년 8월 5일’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냥 굳이 개업 일자를 기록한 뜻은 그것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충대충 사무실 바닥 청소를 끝내고 구석구석 코로나 방지용 소독약도 뿌린 뒤 무카페인 커피 한잔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공모전에 올라온 육천 편이 넘는 어마 무시한 숫자의 장편소설들로 넘쳐났다. 침을 한번 꼴딱 삼키며 주최 측에서 별도로 선별한 검색순위 200위권 안에 내가 올린 연재 글이 있는지 찾고 있다.

그런데 어라! 벌써 두 번째 찾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200위권에도 못 들었다면 뭐야 이거 출발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내 작품을 클릭하자 그만 억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겨우 열 명 남짓!

커피 한잔을 다 마실 때까지 온갖 생각들이 스쳐서 지나갔지만 3,4회부터는 분명히 다를 거야를 반복하면서 실망 대신 긍정의 합리화를 애써 찾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현대 판타지물이 처음부터 순위권을 휩쓸었고 내 연재 글과 같은 일반 소설 장르에서는 주목받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내가 올린 작품에 대한 반응은 차디찬 외면의 연속이었다.

아침 출근에 앞서 베란다 카페에서 원두 한잔을 하면서 어렵게 운을 뗐다. 시야는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꽃밭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거 있잖아! 입소문을 좀 내야겠어! 조용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지명도가 없는 일반 소설이다 보니까 자꾸만 뒤로 처지는 기분이야!”

무척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와이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요즘 세상에 판타지도 아닌 고리타분한 일반 소설을 보는 젊은 애들이 어디 있다고? 우리 애들도 안 보는데 뭘 기대했던 거야, 알았어! 내가 주변에 아름아름 애기는 해볼게!”

“그런데 당신은 읽어봤어? 어떻데?”

“응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재미있어! 그런데 그렇게 엄청나게 재밌는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그냥 볼만한 정도?”


사무실에 출근해서도 내내 귓전에 맴도는 소리는 ‘그냥 볼만한 정도?’였다. 그렇지만 난 회차를 거듭할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달라질 것이라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냥 나의 바람이겠지만 말이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따금씩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공모전 도전 사실을 알렸던 것은 그래도 몇 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내 작품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일만큼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안돼 보였던지 와이프는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도 열심히 하면서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해 주었다.


이러는 사이 무려 8년 만에 반가운 손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과거 우리 사무실에서 일 년여 동안 함께 일하다 지금은 보령 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만 듣고 있던 정태 형이었다.

그동안 간간히 연락을 취해도 소식을 주지 않던 형에게서 ‘너 때문에 처음으로 문피아를 다운로드했어, 잘 읽어볼게!’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서 다른 말은 할 수 없었고 ‘고맙소! 형’ 이라고만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 코로나 정국으로 모임을 가질 수 없었던 강사회가 2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모임을 가졌다. 강사회는 강서지역에 살고 있는 65년생 뱀띠들의 모임이지만 강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있어 넓은 의미의 고향 친구 모임이다.

모임이 예정된 민물장어집에 도착하자 이웃마을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는 이 소장이 환한 표정으로 내게 했던 말이 또다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와! 당신 천재요! 그런 엄청난 글을 어떻게 썼는데? 지금 독도 전쟁 편을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 우리 친구 대단해요! 대단해!”

이 한마디로 인하여 코로나 정국 2년 동안 사무실에 털어 박혀서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작업했던 기나긴 외로움의 시간들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이 소장은 강사회의 모임 중에도 기어이 날 일으켜 세워서 인사말을 하게 했고 내 연재소설이 정말 재밌다면서 열성적으로 광고해주었다.


그리고 나와 우리 아이들의 모교인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근 십 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우리 동문들에게 큰 림을 남기신 이 교장으로부터도 감동적인 장문의 격려글을 받았다. 따듯한 말 한마디에 이렇듯 감동을 받다니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연재의 삼분의 일을 지나갈 때쯤에는 조만간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할 것이라고 주접을 떠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목표했던 100회 예약 등재를 마친 후에는 비록 적은 숫자지만 매일매일 연재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어 고맙다고, 몇 해 동안 정말 열심히 썼고 다음번에는 이보다 더 잘 쓸 자신도 없다며 독백처럼 말했다.


이후 의도적으로 조회 수 확인을 외면하게 되었고 이따금씩 베란다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때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 다였다.

“아직 안 터졌지?”

“그런 기대는 하지 말라니까 또 그러네, 몇 명이라도 읽어주는 게 어디야?”

뭐 몇 명? 아직도 몇 명이라고 한다. 알 만한 사람들한테는 웬만큼 연락을 넣었는데도 끝까지 따라 부치는 독자가 고작 몇 명이라고?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 그래, 우리 나이에 당신처럼 한가하게 글이나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려고? 그리고 또 눈들이 침침해서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오래 쳐다볼 수가 없다고 하네, 이해를 하라고!”

“그래도 재미는 있다고 했잖아?”

“그래 나는 재미가 있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르지, 그냥 이걸로 만족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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