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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변하지 않으려는 오래된 습성

14.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모처럼 어젯밤부터 시작된 비가 사무실에 앉아있던 오전 내내 내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원기 날씨의 예보로는 오늘 오후부터 일주일 내내 비가 없단다.

엊그제 북쪽 편 논가에 모아둔 모판 다섯 개를 떠올리며 여차하면 오후에 해치울 생각으로 전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최근에 내게서 백 평짜리 작은 강변 땅을 매입했던 신 사장이 오전 시간의 말미에 사무실을 들렀다.

농막 용도로 설치했던 세 평짜리 컨테이너의 위치 때문에 앞집 사람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기에 성심껏 의견을 말해주었다.

구청 건축과에 농막 개설신고를 할 때 혹시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해두었던 서류를 챙겨주었다. 부산시 건축조례 중 최근 개정된 내용의 일부를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쳐서 표시해두었다.

“아마도 시 조례가 만들어지고서 신 사장님이 처음으로 농막 화장실 개설 신고를 할 것으로 보아지는데요, 담당자가 딴소리를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이 서류를 챙겨가십시오! 짐작컨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제 경험칙에 의하면 평소 자신들이 해오던 대로 처리하려는 묘한 관성 같은 것이 있더라고요,

시 조례가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초창기에는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서 쉽게는 안 해주려고 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법과 조례가 정비되었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해결되겠지만 당분간은 시끄러울 겁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농막 화장실 개설이 어렵다고 하면 독립투사도 아니신데 굳이 공무원과 싸우려고 하시지 말고 알겠다고 그러세요,

그 문제는 우리 식대로 차근차근 풀어나가 볼 테니까 문제가 다 해결되면 그때 가서 처리하도록 하고요,

그런데 수도 신청을 하려면 농막 신고필증이 나와야 하니까 농막 개설 신고부터 먼저 하고 오시죠?”


신 사장이 돌아간 후 농막 화장실에 대한 그간의 진행과정을 되돌아보니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다.

지역의 시의원 형과 난 80년대 학창 시절부터 의기투합했던 사이로서 그 형은 나의 권유로 지방 정치인이 되어 무려 이십 년 동안 생활정치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의원 선거에서는 낙선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고 지금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다.

그 형의 임기 마지막에 만든 조례가 농어민을 위한 농막 화장실 개설 조례인데 아이디어는 내가 제공했다.

농막 화장실 개설이 가능하도록 충청북도의 건축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신문기사를 보고서 그 자료를 형에게 전해주었던 것이다.


작년 봄 환경부 고시 제2021-59호가 개정 고시됨으로써 드디어 농막에도 정화조를 설치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까지 마련된 터였다.

이번에 개정된 부산시 건축조례 제18조 가설건축물의 범위에는 10㎡이하의 농어업용 화장실이 추가되었고 18조 3항에는 건축사의 설계도서 대신 간이 평면도만으로 개설 신고가 가능하도록 되었다.

이렇게 해서 농막 화장실의 법률적 요건은 말끔하게 완료되었지만 법률과 조례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오래된 관성인지라 신 사장의 민원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지켜볼 일이었다.       


지방선거가 있던 날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사무실로 가던 도중이었다. 학교 뒤 농자재 사무실 한편에 힘없이 앉아있던 형을 발견하고서 차를 정차시켰다.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때 투표일을 맞아서 모처럼 마을을 찾은 연세 지긋한 선배 한 분이 발걸음을 돌려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대뜸 날 바라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 선배는 투표 당일 내가 시의원 형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서 이번에도 내가 형의 선거를 열심히 도운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난 벌써 오래전부터 일체의 선거에 개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형의 선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진 각오로 담배를 끊었고 이후 술까지 멀리하는 인생의 대결단을 내리게 되면서 동시에 일체의 진영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런데 가끔씩 마을을 찾아오는 나이 든 선배들은 이런 사실을 알턱이 없으니 지금도 내가 형의 선거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공모전에 올린 연재 글이 40회를 지나가던 날 아침시간에 형이 사무실에 들렀다.

같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도 축 쳐진 형의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리고 투표날 연세든 선배님이 내게 했던 인사말이 여전히 귓전을 맴돌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선거에 도움을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뭔 소리! 선거전에 해줄 일은 다 해줬으면서…”

왠지 분위기가 서먹하던 순간 난 형의 휴대폰을 받아 들고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로드를 실행했다.

공모전이 진행 중인 웹소설 사이트로 들어가 연재 중인 내 작품을 클릭했다.

“지금 현재 연재 중인 장편소설입니다, 5월 11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해서 오늘 40회가 올라왔는데요, 8월 12일에 마지막 100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공모전 준비한다고 나름 정신이 없었습니다”

“고생했겠네! 나도 읽어볼꾸마!”

핑계 치고는 그래도 꽤 명분 있는 핑계가 되어준 것이 나의 공모전 도전이다.

60대의 초반, 아직은 창창한 나이지만 난 이제 형이 정치가 아닌 새로운 길을 걸어갔으면 한다.


이 중요한 인생의 가을 같은 시기,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는 시끄러운 정치의 장을 벗어나 훨씬 의미 있는 활기찬 삶의 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때론 농사도 지으며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인생의 새 길을 함께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좀이 쑤셔서 더 이상은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괴로울 때쯤 와이프가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오후 일정의 순서는 이미 머릿속으로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기에 집에 들러 전투복으로 갈아입자마자 곧장 논으로 향했다.

다행히 비 온 직후의 흐린 날이라 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고 물에 담가 둔 다섯 개의 모판도 어느 정도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논일하는 장면을 셀카로 찍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사실은 주변의 풍경을 자세히 담으려면 다른 사람이 찍어주면 좋은데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남짓만에 모판 다섯 개를 해치워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덤성덤성한 것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아 뒷맛이 개운하다고나 할까?


흐뭇한 표정으로 나의 작품 감상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구청에 갔던 신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소장님 말이 정확합디다, 부산시 조례를 내어 밀어도 조례에 문제가 많다고 하면서 자꾸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라고 하네요, 그래서 그냥 알았다고만 하고 농막 개설신고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지요? 오랜 관성이란 것이 참 무섭지요! 이후의 문제는 우리 방식대로 풀어볼 테니까 한번 지켜보시죠!”


그날 저녁 잘 알고 지내던 구의회의 지방의원에게 여섯 장의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냈다.

사진에는 농막 화장실 개설을 허용하는 환경부 고시와 부산시 조례가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문자의 내용은 이랬다.

‘박 의원! 우리 구청에서는 아직도 농막 화장실 개설 신고를 안 받아주는 모양인데 그 이유를 알고 싶군요?’

잠시 후 도착한 답신에는 ‘네 선배님, 안 그래도 관련 민원이 들어와서 내용을 확인 중인데 건축과장을 불러서 보고를 한번 받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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