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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내 글이 너무 무겁다네

15.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와이프가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절친 두 명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마당에서 숯불을 피우는 등의 요란스러운 접대를 한사코 사양하고 텃밭의 채소들로 소박한 만찬을 즐겼던 모양이다.

평상에 둘러앉은 중년의 여사님들을 위해서 하루 저녁 석쇠에 고기 굽는 마당쇠를 각오하고 있었지만 나에 대한 배려였던지 아니면 나이 따라 취향도 변했던지 담백한 휴식을 위해서 다대포 바닷가를 선택했다.


그렇구나! 중년에는 번잡함보다는 여백과 같은 자유를 더 갈망한다더니 와이프의 친구들이 꼭 그랬다.

나이 든 소녀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난 그들의 시간에 방해되지 않도록 평소보다도 일찍 잠자리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무려 한 시간이나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은 나름 계산된 행위였다.

십중팔구는 어린 소녀들의 감성으로 새벽녘까지 재잘거리다가 잠자리에 들었을 건넌방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마음으로!


이미 대명천지가 되어버린 새벽 다섯 시에 마당에 나온 것은 꽤 오랜만인 듯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바닥에 떨어진 매실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주워 모으니 꽉 찬 광주리로 두 개가 되어 끙끙대면서 일용 차에 실었다.

그리곤 발걸음 소리마저 조심조심하며 마당을 지나 거대한 삼천 리터 용량의 액비 통에 쏟아부었다.


풀과의 전쟁을 치러내자면 제초제의 사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살충 살균제 같은 농약과 화학비료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저농약 농법을 고수하는 입장에서는 천연 비료인 액비의 비중이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액비제조의 주원료를 우리 농장에서 생산된 것들로 충당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땅바닥에 떨어진 과일이나 버려진 채소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농장의 토질과도 꽤 잘 맞아서 해마다 그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어제저녁 와이프가 당부한 대로 나이 든 소녀들의 아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계란볶음밥으로 대충 아침을 해결하고 이것저것을 챙겨서 서둘러 강변 농장 낚시터로 향했다.

호미로 대충만 긁어도 지렁이가 지천이라 새벽녘에 이미 지렁이 한통을 준비해 둔 터였다.

오늘은 제법 씨알 굵은 놈으로 손맛을 볼 작정으로 처음부터 바늘 하나당 굵은 지렁이 한 마리씩을 통째 끼우고 낚싯대 두 개를 강물에 던졌다.

어젯밤 적당히 비도 내렸겠다 바람마저 부는 둥 마는 둥 날씨까지 흐리니 대물 손맛을 볼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이 구비되었다.

그런데 웬걸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입질 한 번이 없다. 아무렴 어떤가!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인 것을…   


이때 인기척이 들려 뒤를 돌아보니 불쑥 신 사장이 들어왔다. 내 차가 주차돼 있어 들어와 봤다면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농막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특히 푸세식 화장실의 구조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생각보다 청결하면서도 편리한 구조에 놀라워했다.

자신도 현장의 노동일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라서 척 보면 안다고 했다.

“소장님! 고생 참 많이 하셨겠네요, 이 많은 일을 혼자서 다 했단 말이지요?”

“기계도움 하나도 안 받고 순전히 삽으로 망치로 톱으로 다 만들었다 아입니까? 재미로 하니까 시간 가는 줄 모릅디다”  

“정 안되면 나도 농막 화장실을 이렇게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시 조례가 만들어졌는데도 농막 안에다가 퍼세식 통을 묻는다는 것이 좀 서글퍼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두고 보시죠? 의회에서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래 봬도 오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입니다,

삽으로 파서 천 리터짜리 약통을 묻었는데 용량이 다 차려면 한 십 년은 거뜬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깨끗하고 냄새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나중에는 퇴비로도 사용할 수 있겠고 그나저나 고기는 좀 있습니까?”

“강의 수질을 개선한답시고 낙동강 본류 물을 계속 밀어 넣는다고 하더니만 그 때문인지 물고기들이 씨가 말랐네요, 오전 내내 겨우 한 마리 잡았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우리가 어데 고기 잡으러 왔습니까? 이 분위기가 좋아서 왔지!”


잔뜩 부러운 표정으로 한 번 더 꼼꼼하게 나의 잡다한 작품들을 감상하던 신 사장이 돌아가자 신통치 않은 낚싯대 대신 스마트폰을 꼼지락거리면서 공모전의 진행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내일이면 55회가 연재될 예정인데도 구독자 수는 여전히 열명 남 짓만 따라올 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젠 정말로 마음을 비워야 하나?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공지에 올린 나의 희망 섞인 기대를 저버리기엔 왠지 모르게 좀체 미련이 사라지지 않는다.

두고 보라지! 머지않아서 터지고 말 테니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또 한심스럽기도 하여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났다.


출출하던 참에 라면을 끓여서 한입 먹으려던 차에 낚싯바늘을 메단 찌가 사정없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잽싸게 낚싯대를 당겼지만 그만 ‘톡’ 제대로 손맛을 느껴보기도 전에 놓치고 말았다.

'아씨! 묵직한 게 분명히 대물이었는데…'

아쉬운 생각을 떨쳐내면서 이제 이만큼 즐겼으면 된 것 같아 낚싯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후 벽에 세워 두었던 고무보트를 내렸다. 배터리에 연결된 모터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정도의 속도밖에는 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소음이 전혀 없어 조용한 뱃노리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명지시장통까지 갔다 오려면 한 시간가량이 소요되는데 한창 에코델타시티 공사가 진행 중인 강 건너편엔 오늘이 휴일이어서 그런지 마냥 조용하기만 하다.


강의 이쪽 편에 위치한 카페 손님들이 간혹 보트를 바라볼 뿐 그 어디에서도 보트에 탄 나를 주시하지는 않는다.

홀로 보트놀이를 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가족 톡방에 올렸더니 아이들이 툭툭 한 마디씩 던진다.

‘왜 아빠 혼자 노는데?’

‘엄마는?’

그제야 장황하게 사정 얘기를 하는 와이프의 톡이 올라왔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어쩌고 저쩌고… 방금 친구들을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라며 어쩌고 저쩌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녁에 마당에서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하니 잽싸게 큰아들에게서 집에 들르겠다는 화답이 왔다.

그렇잖아도 다음 주에 큰 아들의 생일이 예정돼 있어 앞당겨서 파티를 해줄 요량으로 와이프가 케이크까지 준비해 둔 터였다.


평상에 둘러앉아 육즙이 잘잘 흐르는 돼지 목살구이로 실컷 배를 채운 후 아들이 8월 12일을 언급하기에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100회 공모전의 마지막 회가 연재되는 날인데 이 놈이 어떻게 알았지? 그런데 저희 전셋집 이삿날이 그날이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뭘 기대하고 있나?        




오늘 아침도 출근에 앞서 베란다 카페에서 와이프와 커피타임을 가졌다. 와이프의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꺼낸 말이 옹색하다.

“집에 온 친구들은 안 봤데?”

“공모전 당신 글?”

“… …”

“앞부분은 봤다는데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잘 안 봐지더래”

“역시 그렇지! 그놈의 무거운 것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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