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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논

16.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출근하자마자 농협의 대출담당자로부터 지점을 들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마이너스 통장의 기한이 다 되어 연장을 시키려면 몇 가지 처리할 업무가 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자동으로 연장이 되었지만  대출이율이 계속 오르는 시점에서는 방문하여 처리하는 것이 이율 관리에 유리하다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어제 강변 낚시터에서 망중한을 즐길 때만 하더라도 마지막 남은 강변 농장만큼은 사수하리라 각오를 다졌었다. 하지만 오늘 장 과장의 전화를 받은 이후로는 또다시 현실의 생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농협 대출의 주원인은 농지구입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인데 부동산업과 농업을 겸하는 직업적인 성격상 늘 이렇게 농협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년 적지 않은 이자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처지다 보니 농협으로부터는 중간치 정도의 손님 대접을 받곤 한다.

연말이면 사무실에 걸어둘 대형 달력 한 장을 챙겨주는 정도? 그래도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기분은 좋다.


매번 월요일이면 와이프와 인수인계를 하자마자 자동적으로 농협기술센터 방향으로 차를 몬다.

미생물을 분배해주는 담당자가 이제는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얼굴만 보고도 장부에 이름을 기재하면서 묻는다.

“오늘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난 스마트폰의 메모 창을 열고서 최근에 공급받은 미생물의 순서를 하나하나 읊조린다.

“효모 광합성 GCM 고초균까지 가져갔으니 오늘은 다시 효모 차례네요, 효모로 주세요! 오늘 효모는 어때요?”

“효모뿐만 아니라 모든 미생물이 다 잘 나왔습니다, 다들 아주 싱싱합니다!”

“요즘은 매주 몇 분이나 오시던가요?”

“겨울부터 봄까지는 백이삼십 분 가량 오시다가 여름부터는 육칠십 분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겨울철에는 대저토마토 재배 농가에서 많이들 오시겠지만 여름철인데도 많이들 오시는군요! 지금 오시는 분들은 사시사철 빠지지 않고 오시는 분들이겠다 그렇지요?”   


그 사이에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들 몇 분이 양손에 든 말통 하나씩을 내려놓으며 내게 물어봤다.

“여기 네 가지 종류 중에서 어떤 놈이 제일로 좋던 교?”

“여기 미생물들은 다 좋은데요, 저 같은 경우는 매주 다른 걸로 받아갑니다, 미생물들마다 조금씩 특징들이 달라서 골고루 살포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럼 나는 맨 앞엣것 두 개로 골고루 담아 주보소!, 다음 주에는 뒤엣것 두 개를 받아 가보지 뭐!”

담당자가 아주머니의 성함을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히 하는 말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지난주에 우리 아저씨가 저 세상으로 갔뿌는 바람에 내가 대신 왔다 아입니까? 우리 아저씨가 땅에 좋다면서 맨날 뿌리던 기 돼 나서 각중에 안 하기도 그렇고 해서 내가 대신 왔는데 한통에 반말씩만 담아 주보소? 무거워서 한말씩은 못 들고 가겠데! 그라모 인자부터는 이름도 내 이름으로 바꽈야 되겠지요?”


함께 온 다른 아주머니 한 분이 자리에 앉아있던 담당자에게 다가오더니 살포시 미소 뛴 얼굴로 물어본다.

“여기서 나눠주는 액비를 밭에 뿌리면 좋다고 해서 같이 따라왔는데 우리도 좀 주보소? 그런데 진짜로 좋기는 좋은교?”

이때 담당자가 날 바라보더니 빙긋이 웃는 것이 경험자로서 설명을 좀 해주라는 의사표시다.

“제가 올해로 3년째 미생물과 액비를 혼합해서 매주 농장에 살포하고 있는데요, 우선 지렁이가 몰라보게 많아진 걸로 봐서는 그만큼 토질이 좋아졌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라고 우리 집 상추 맛을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유별나게 아삭거린다고 하거든요,

요즘은 한창 블루베리 수확철인데 씨알이 다른 집보다도 실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다 여기 미생물 하고 액비를 자주 살포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내가 미생물 전문가라도 되는 듯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을 물어봤고 난 마치 미생물 전도사라도 되는 냥 신나게 경험담을 설명해줬다.

“저는 일만 리터짜리 저수조 통에 받아놓은 지하수 물에 미생물과 액비를 50대 1 정도로 혼합해 두었다가 하루정도 지난 뒤에 스프링클러나 관주로 살포하고 있습니다,

하루 정도 지나면 물 색깔이 먹물 같은 까만색으로 변하는데 미생물이 번식해서 그렇지 않나 짐작합니다만 그럴 때 살포하는 것이 약효가 잘 받는 것 같아서 매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토질에도 좋고 작물에도 좋은 것 같아서 매주 한 번씩은 꼭 미생물을 받아 가고 있습니다!"

“아이 고매! 그렇게 큰 저수조 통이 있는 걸로 봐서 아자씨는 농사를 크게 짓는 가보요?”

“아입미더! 아입미더! 하우스 파이프 동가리를 땅에 박아가 내가 직접 만든 저수조 통인데요, 

파이프 골조에다 비닐을 덮어서 사용하는데 그냥 쓸만합디더! 그라고 저는 옳은 농사꾼이 될라카모 아직도 가맣습미 더!”  

      


그날 저녁 식탁에서 우리 부부간에 예상치 못한 작은 다툼이 있었다.

와이프가 별 뜻도 없이 무심코 내어뱉은 한마디가 나의 아픈 손가락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집 옆에 있는 우체부 아줌마 논은 인제 완전히 살아났더만! 우리 논은 아직도 살아날 기미가 안보이지?”

대뜸 내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한번 가보기는 했어? 가보기나 하고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동안 나도 바빴잖아! 블루베리도 따야 하고 사무실에도 가야 하고…”

“우리 논이 어디 함안에 있기를 하냐? 밀양에 있기를 하냐?

사무실 가는 길에 5분만 둘러가면 바로 거긴데 바빠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말을 하다 보니 내 목소리가 더욱 커졌고 한번 뻗힌 열기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새벽 네 시에 나 혼자서 모판 스무 판을 땜빵하고 온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래 아직까지도 바빠서 들여다보지도 않으셨어요? 그래 놓고는 뭐가 어째! 우체부 아줌마 논에 비해서 뭐가 어떻다고?

“그럼 난 뭐 놀았어? 혼자서만 일한 사람처럼 왜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봐?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고 그냥  보기가 싫어서 일부러 안 가봤던 거지?”

“그래 맞아! 당신이 자꾸 엉망이 되었다고 하니까 그래서 가보기가 싫었어!”

“그렇지! 그런데 벼농사 개판 쳐놓으면 동네 사람들이 누구한테 손가락질할까?

내가 아니고 우리야! 우리를 욕한다고! 최소한 말이야, 당신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제3자가 말하듯 그렇게는 말하지 마란 말이야! 기분 나쁘니까…”


그리고는 휑하니 내 방에 들어간 후 다음날 새벽까지 두문불출이었다. 밤새 오기 시작한 비가 새벽까지 이어지더니 급기야 세찬 바람까지 몰아쳤다.

마치 와이프와 한 바탕의 전쟁을 치른 후의 복잡한 내 맘처럼 비바람이 그렇게 밤새 몰아쳤다.

어느덧 450평짜리 작은 논은 나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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