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Aug 29. 2022

아픈 손가락 살리기 대작전

19.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저녁을 먹으면서 와이프가 넌저시 모판 애기를 끄집어낸다.

온 동네를 다 뒤져서 어린 모판 다섯 판을 구해서 우리 논에 갔다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새벽에 일어날 테니 같이 논에 가자고 했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판 처음 손으로 직접 모내기를 하겠다는 와이프의 마음만 받기로 했다.

이른 새벽부터 물신을 신고 흐느적거리며 모내기를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사진이나 좀 찍어주고 가! 셀카로 찍으려니 얼굴만 나오지 논의 배경이 잘 안 잡혀!”

“그럼 새벽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되겠네! 몇 시에 일어날 건데?”

“네 시 반부터는 움직여야 되니까 네 시 경에는 일어나야지!”

내일 새벽에 치르게 될 우리 부부의 대사를 앞두고 평소보다도 한 시간이나 이른 아홉 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나야뭐 어렵지 않게 단잠에 빠져들어 새벽 네 시가 되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원기 날씨부터 확인하고 부엌에서 물 한잔을 하려는데 식빵 한 봉지가 식탁에 놓여있었다.

새벽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나를 따라서 함께 논에 가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갑자기 이 시간에 일어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설 거머니 방문을 열어보니 아직도 곤히 잠자고 있어 가만히 문을 닫아주고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

기왕에 샌드위치를 보았으니 그 정성을 보아서라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원두를 내린 후 이른 시간이지만 베란다 카페에 홀로 앉았다.


부부가 생각을 공유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든든함이 느껴진다.

새벽에 못 일어나면 어떤가! 어차피 나 홀로 스무다섯 개의 모판을 새로 땜빵한 이력이 있지 않던가.

그깟 다섯 판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함께 거둘어주겠다는 와이프의 그 마음이 고맙고 가상했던 것이다.

‘사진이야 뭐 셀프 사진이기는 하지만 이미 여러 장을 찍어났으니… 자 이제 출정을 해볼까나!’


네시 반쯤 이제는 우리 부부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논에 도착하여 준비해온 물신으로 갈아신었다.

모내기 후 벌써 세 번째로 하는 어린 모 땜빵 작업이라 마음의 부담은 훨씬 덜했다.

논의 입구에는 어제 와이프가 애써 구해온 어린 모판 다섯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와이프가 어제 이웃 농민의 조언대로 배수로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었다.

물이 몽땅 빠져나간 논바닥의 모습은 한마디로 눈뜨고서는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구배가 얼마나 엉망이었던지 평탄을 유지해야 할 논바닥이 어떤 곳은 움푹 파인 웅덩이 같았고 또 어떤 곳은 우뚝 솟은 봉우리 같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논에 물을 가둘라치면 어린모들이 깊은 물속에 잠겨버려 얼마 못 가서 녹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나마 1,2차에 걸친 어린 모 땜빵 작업으로 흉하게 보일 정도는 면했다지만 진짜배기 전업 농부들의 시각으로는 아직도 덤성덤성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제 와이프가 긴급하게 논의 물을 뺀 탓에 최근에 새로 심었던 어린모들이 질식사할 위기는 겨우 넘긴 것 같았다.

어설픈 겸업 농부의 시견머리로는 더 이상 물만 공급하지 않으면 될 줄 알았다. 배수로를 막아냈으니 장마철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물에 어린모들이 물속에 잠겨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답답한 인사를 보고서 이웃의 형님이 얼마나 혀를 찼을까?

장마철에는 물을 빼더라도 어린모들이 마르지 않으니 이때 숨을 쉬게 하여 빨리 활착을 유도해야 하거늘 미련스럽게도 계속 물속에 가두어 두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웠을까?


물을 완전히 뺀 논에 물신을 신고 들어가니 습지대도 이런 습지대가 없었다.

한번 빠진 발을 여간해서는 다시 뺄 수가 없어 움직이기가 무진 힘들었다. 흐느적흐느적 겨우 움직이면서 어느덧 네 개의 모판을 비울 때쯤 와이프가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도 들어갈까?”

“아니야 거의 다 됐으니까 거기서 사진이나 찍어봐? 논의 배경이 잘 나와야 되니까 여러 장을 찍어봐?”


국세청의 요주의 대상인 겸업 농부의 처지로서는 자경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낭패를 당할 수도 있음을 이미 경험한 터였다. 그러기에 농작업의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암행어사가 출두하듯 국세공무원들이 현장실사를 나왔을 때 이웃 농민들은 부재지주자나 겸업 농민에 대해서는 결코 우호적으로 증언해주지 않는다.  


실제로 자경을 했더라도 그 사실을 가령 하느님 부처님만 알뿐 입증할 방법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럴 때 그 어떤 서류보다도 유용한 것이 실제로 자경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이나 동영상이다.

“여보! 좀 더 찾아볼까? 주변에 남은 모들이 있나?”

“알아서 하세요!”

나머지 한판마저 마저 심고 논에서 나오려는데 저 멀리서 이웃 형님 내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고 대견하다는 듯 형님 내외도 따듯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논두렁에 앉아 물 한잔을 들이키며 목을 축이고 있었을 때 와이프가 어디서 구해왔던지 모판 두 개를 낑낑대며 들고 왔다.

“이거면 얼추 마무리되겠다,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당신은 이제 그만 들어가 봐!”

“사진이나 몇 장 더 찍고 들어갈게”     


새벽시간의 대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돌아와 샤워까지 마치고 아침체조를 하려는데 거실의 벽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아직도 단잠에 빠져있을 와이프였지만 완전무장한 그 복장상태 그대로 부엌에서 아침상을 준비하고 있다.

주문받은 블루베리가 많아서 그 량을 다 맞추려면 오전 내내 바쁘게 생겼다며 싱걸벙걸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나의 아픈 손가락 같은 논 살리기에 자기도 동참한 것에 대한 뿌듯함이 몰려왔을 것이다.


평소보다도 일찍 서둔 와이프 덕분에 아침밥을 삼십 분이나 일찍 먹게 되었다. 여덟 시가 되려면 아직 십 분이나 남았지만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모닝커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엊그제 새벽 세찬 바람에 부러져버린 자이언트 해바라기 얘기를 해주었더니 와이프가 연민의 표정으로 돌변했다.

“살 수 있을까?”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르지! 3미터나 자라는 자이언트 해바라기를 고작 고추 지주대 하나로 묶어났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나 말이야! 에이 참!”

“아깝지만 하는 수 없지 뭐!”

“난 도무지 볼 용기가 없으니까 당신이 나중에 가서 한번 확인해봐! 혹시 살아났는가?”


그 사이에 공모전의 연재 글이 올라와 스마트폰으로 읽기 시작하자 와이프도 따라서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한마디를 건넨다.

“아이고 구린다 구려! 젊었을 때 제대로 연애 한 번 안 해본 티를 팍팍 낸다니까! 이러니 젊은 애들이 읽고나 싶겠어?

규태의 사랑이야기는 이게 어디 젊은 애들이 보는 공모전 작품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뭐 재미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아니 우리 연배가 읽기는 괞쟎은데 젊은 애들한테는 구린다는 말이지,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젊은애들의 사랑 트렌드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라고! 이런 감각으로는 안돼!”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모전 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겨우겨우 열명 남 짓만 따라오고 있었지만…

아니다. 자세히 보니 댓 명이 더 늘어나 열대여섯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뭐지 이것은? 꽃망울이 터지듯이 대박이 터지려는 조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진인사 대천명이거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