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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진짜 농부가 되어가는 유쾌한 과정

21.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베란다 카페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에서 ‘삐리릭’ 소리가 났다. 정각 여덟 시, 미리 예약을 걸어둔 공모전의 연재 글이 올라왔다는 알람 소리다.

벌써 66회면 2/3가 지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응은 신통챦았다. 이제는 정말로 기대를 접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당신 글은 무슨 계몽을 목적으로 쓴 상록수 같은 냄새가 나는 게 문제야!

웹소설을 읽으면서 정신적인 힐링을 원하는 요즘 분위기와는 안 맞다고나 할까? 70 80세대라면 몰라도…”

이 말은 한마디로 꽝이라는 애기였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초월했으니까 더는 할 말도 없었다.


“그나저나 화단 앞 골에도 풀 약을 한번 쳐줘요? 한 번씩 새끼 뱀이 숨어 있었어 얼마나 놀래는지! 빙초산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어쨌든 화단 주변으로는 풀이 있으면 안 되겠어!”

여름철 화단 근처의 풀 속에 숨어있는 새끼 뱀 때문에 와이프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뱀만큼은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유튜브에서 빙초산을 뿌리면 뱀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와이프가 인터넷으로 구입한 값비싼 빙초산을 화단 여기저기에 뿌린 적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부부가 목격한 장면은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화단의 모습이었다. 빙초산의 역할은 그냥 독한 제초제의 역할이었던지 식초가 닿은 자리마다 식물들이 폭삭 녹아내려 보기에도 흉측했다.  

그 이후로는 마당의 화단 주변에는 가급적 풀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제초제를 살포했었다.

하지만 화단 바로 앞의 작은 골에는 혹여나 독한 제초제의 분말이 화단의 꽃으로 튈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새끼 뱀에 놀란 와이프는 지금 그곳까지도 박멸을 명령했다.   

  


아침부터 윤 사장이 임대차계약서가 몇 장 필요하여 사무실에 들렀다. 농지법에 의해서 농지의 임대차는 불법이지만 농지법 시행일인 96년 1일 1일 이전에 소유권을 취득한 농지에 대해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된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면 여기저기서 임대차계약서 한 장을 적어달라고 아우성들이다.


소유한 농지가 없는 소작 농민이 농민의 자격을 증명하는 농지원부라도 만들랍시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때 필요한  임대차계약서는 농지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농지라야 만 했기에 마음씨 좋은 윤 사장이 이런 부탁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내가 만들어놓은 표준임대차계약서가 있었다. 우리 마을의 실정에 맞게끔 일목요연하게 특약사항들을 정리하여 기재한 계약서였다. 더러 필요한 농민들이 있을 수 있으니 윤 사장 편에 넉넉하게 챙겨서 주었다.


얼마 후 윤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 논에 잠시 들렀는데 그런대로 상태가 양호하다면서도 높은 남쪽으로  여기저기에 솟구친 피의 관리를 주문했다.

꼭두새벽부터 모판 스무 판을 땜빵 작업하던 바로 그날 요소 반포와 함께 중기 제초제를 세병이나 흩였었다.


하지만 구베가 높은 남쪽으로는 물이 들지 않았던 관계로 제초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논의 여기저기에 어린모들을 위협하는 고약한 피들이 잔뜩 솟구쳐 있었다.

윤 사장의 말로는 지금 잡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일일이 손으로 뽑아내야 하는데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했다.


하기사 몇 년 전에도 장마철이 끝나자마자 한여름 땡볕에 논에 들어가서 낫으로 저 놈들을 도려낸다고 죽을 고생을 했었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와이프와 인수인계를 하자마자 농협으로 달려갔고 피를 잡는 제초제를 구입했는데 무려 세병이나 되었다. 살포할 논의 평수를 말했더니 농협 직원이 그에 맞는 용량이라고 하기에 그런가 싶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장부터 완전무장을 했다. 그런 후 수동분무기의 약통에 약을 타기 위해서 구입한 약의 설명서를 읽어보았더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리터 약통에 100미리의 용량을 혼합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구입한 약의 용량이 무려 1,500미리였다. 그렇다면 열다섯 번을 살포해야 된다는 것인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 윤 사장에게 다시 전화해보았다.


윤 사장의 말은 논에 솟구친 피의 면적만 부분적으로 살포하면 되기 때문에 500미리 한 병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량보다는 조금 더 많게 150미리씩 세 번만 살포하면 될 것 같다면서 나머지 두병은 반품 처리하라고 일러주었다.

농협가는 길에 잡풀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제초제를 알려주어 그것까지 준비하여 내일 새벽의 결전에 대비했다.


설명서에는 중기 제초제와는 달리 논의 물을 모두 뺀 후에 치는 약제라기에 논의 물부터 빼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웃 형님이 작은 구멍 하나만 남기고 배수로를 전체적으로 다 막아버렸기 때문에 논의 물을 모두 빼내려면 밤새 빼내야 했다.

그래서 결전의 순간은 내일 새벽으로 연기되었지만 나의 어이없는 무지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설명서 하나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무작정 세병이나 약을 구입하여 그것도 무턱대고 물이 가득 찬 논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어설픈 겸업 농부란 말인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노인성 습관이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던 탓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 사장이 일러준 용량대로 수동분무기의 약통에 두 종류의 농약을 혼합한 후 감초 역할을 담당하는 전착제까지 두 뚜껑을 쏟아 넣었다.

어치피 모두 세 말을 살포해야 했으므로 세 종류의 약을 봉지에 담아 약통과 함께 차량의 적재함에 실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분무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논에 들어가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다.

물신을 신은 상태에서 20리터짜리 수동 분무기를 어깨에 짊어 메고 움직이려니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논에 물이 없으니 마치 진흙에 빠진 형태로 물신이 자꾸만 벗겨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했다.


두 번째로 분무기를 짊어지었을 땐 가벼운 현기증까지 몰려왔지만 잠시 멈춘 상태에서 서 있었더니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두 통을 살포하니 거진 마무리가 된 것 같았지만 세 통을 살포하라는 윤 사장의 지시사항이 귓전을 맴돌아 기어코 한통을 더 짊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모두 두 번씩 확실하게 확인 사살까지 하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벼농사가 이렇게까지 힘들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마는 어쨌든 난 이번 여름에 나의 아픈 손가락 같은 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벼농사를 잘 지어서 돈을 벌 욕심도 없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비록 어설픈 겸업 농부지만 어쨌든 농부는 농부니까 농부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농지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 벼농사를 대하는 전업 농부들의 애틋한 정서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나의 도리를 다 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과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에는 정말로 올해보다는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과 자신감도 있기 때문인데 딱 두 가지만 해결하면 된다.


첫째는 제대로 된 모판 만들기다.

사실 올해의 모판은 윤 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갖다 버려야 되는 실패작이었다.

몇 년 전에도 우리 막둥이와 모판을 만들면서 실패했던 그 과정을 이번에도 큰 아들과 작업하면서 그대로 반복하고 말았다.

상토흙 위에 볍씨를 뿌리면서 흙이 모두 덥힐정도로 충분한 량을 뿌렸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그만 깜빡하고 다소 헐 건하게 뿌렸던 것이다.


볍씨 위에 상토흙을 모두 살포하고 나서야 남은 볍씨의 량이 아마 무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상토흙이 덥힌 모판 위에다 또다시 볍씨를 살포했지만 추가된 볍씨의 발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윤 사장은 새 모판을 구해서 모내기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내가 부득부득 고집을 부려서 무리하게 모내기를 강행한 결과는 처참한 결과로 나타났다.

현격하게 밀집도가 떨어진 어린모들의 약한 뿌리 응집력으로는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깊은 논에서는 제대로 활착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남북으로 높낮이가 다른 논의 바닥 구배 때문인데 이 문제는 가을 추수가 끝나자마자 트랙터 작업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실패의 원인도 알고 그 실패의 해결책도 알고 있다면 문제라고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아픈 손가락 같은 우리 부부의 논을 하나하나 치유해가는 과정이 난 무척 즐겁다. 비록 지금은 어설픈 겸업 농부일지라도 진짜배기 농부가 되어가는 그 과정이 대단히 유쾌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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