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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모처럼 와이프가 신이 났다

22.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모처럼 와이프가 신이 났다. 농협 산악회다 마을 부녀회 회장단이다 해서 이틀 연속으로 관광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난 꼼작 없이 온종일 사무실에 잡혀있게 생겼다.

요즘의 농촌은 옛날과는 정 반대로 겨울철의 시설채소 재배 기간이 바쁜 농번기라고 할 수 있고 모내기를 끝낸 요사이 여름철이 최고로 한가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휴식을 취하는데 활동량이 많은 어떤 부녀자는 5일 연속으로 관광버스를 타는 경우도 있다는데 농번기 동안 고생한 부녀자들을 위한 배려의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교통이 편리한 우리 마을의 지리적 특성상 오래전부터 농업과 공업이 사이좋게 뒤섞여서 공존하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근본은 농업이라 할 수 있다.

버섯공장 콩나물 공장에서 알 수 있듯이 농업 용도의 창고를 소규모의 제조업소에 임대준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이 또한 농가소득의 방편이므로 임대인의 다수는 마을 농민들이다.


농사를 짓는 면적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농협의 조합원이면서 농민 작목반의 회원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한 대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기에 와이프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난 일체의 군말이 없었지만 이틀 연속은 좀 과한 것 같다.


손님도 없는 무료한 사무실을 지키는 공인중개사가 할 일이라고는 독서하기 아니면 공모전 준비하기 또 그것도 아니면 두 개의 지방지와 5대 일간지 섭렵하기인데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국세청 홈택스 들어가기다.

연재를 시작된 지 두 달을 넘긴 공모전은 어느덧 70회에 들어섰고 모처럼만에 사무실에서 오늘 올라온 연재 글을 차근히 읽어 보았다.

내가 봐도 주재는 다소 무겁다. 통일의 과정과 통일 이후의 여러 파열음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면서 모두가 함께 통일을 음미해 보자는 상록수 같은 스토리가 분명하다.


이럴진대 대체 누군들 무겁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좀 더 재미나게 풀어나갔더라면? 지나치게 디테일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역시 결론은 이 이상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와 메시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자 했지만 아직은 덜 세련된 글재주라 이 이상은 무리였으니까.

그래도 열명도 더 되는 구독자들이 끝까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얼치기 아마추어 작가 주제에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인터넷으로 7대 일간지를 꼼꼼하게 섭렵한 감상평은 ‘2006년 미국 금융 위기급의 대위기가 몰려온다’였다.

‘농협 대출금을 좀 더 줄이긴 줄여야 하는데…’를 맘속으로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국세청 홈텍스에 들어가 세금 모의 계산하기를 클릭했다.

순간 번쩍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번에 저장해 두었던 계산내역 조회하기를 열람하여 두 계산의 내역을 합산해 보았다.


‘아뿔싸!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양도세의 농지대토 감면은 5년 동안 1억 원이 맥심인데 강변 땅의 작년과 올해 매도분을 합산하더라도 그럭저럭 여유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낚시터 농장마저 매도하여 대출금을 더 줄여볼 생각이었지만 이제 열흘도 남지 않은 대토 감면의 기한이 문제였다.


그런데 맥심 1억에서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회계연도의 양도신고는 합산 계산이 원칙임을 깜빡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이미 매도한 100평 농장과 낚시터 농장을 합산하여 계산하니 세율이 달라져서 생각보다도 세액이 부쩍 늘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8년 자경으로 가는 것이 맞겠네! 2년만 있으면 전액 감면이 가능한데…’

문제는 앞으로 추가로 발생하게 될 대출이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예상 매도금액만큼의 대출이자를 따져보았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이럴 땐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을 해야만 예상치 못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앞으로 대출이율이 지금보다는 두 배 가량인 8%대까지는 각오해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계산을 한다면…


서둘러서 매도해야 될 만큼의 실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굳이…

이제 해답이 나온 것이다. 매사의 세상 이치가 그렇듯 물건을 걷어 들이기로 마음을 굳히고 나면 그제야 서로가 사지 못해서 난리다.

하지만 명색이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사람이 한 입에 두 말을 할 수도 없어 이미 제시되었던 기한 내에 잔금을 치르겠다면 부득이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두 손님 모두 얼마간의 디스카운트를 조건으로 제시하였고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거둬들일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졌다.

이런 사정을 알턱이 없던 손님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협의를 원하였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마음을 정리한 기념 삼아 무성한 왕대추나무의 이발이나 시켜줄 작정으로 오후 무렵 자동 전지가위랑 호미를 준비하여 강변 농장에 들렀다.

장마철에는 도장지들이 뻗어 나와 기승을 부리는데 그때그때 잘라주어야 한다.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영양분만 축내는 도장지를 그대로 방치하면 열매의 성장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도둑놈 가지라는 뜻으로 도장지라 이름 지었던 모양이다.  

자동 전지가위는 대단히 힘이 좋아서 3센티 내외의 웬만한 가지들은 그냥 싹둑 잘라버린다.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전지작업을 할 수 있으니 작업의 효율은 대단히 높아졌지만 자칫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어 최대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어 시간 만에 가지치기를 마치고 이번에는 보다 더 정밀한 작업을 할 차례다.

3년 전, 흙을 가득 담은 열 개 남짓한 플라스틱 콩나물시루 통을 대추나무 옆에 밀착하여 두고 가지를 길게 당겨서 흙에 묻어 놓았었다.

분주법으로 묘목을 생산해 보려던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휘묻이에 도전해 보았던 것인데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기존의 왕대추나무 가지를 자른 접수를 대목에 접목하는 방법으로 묘목을 대량 생산하는 현실에서는 묘목이 성장하면서 대목에서 우후죽순으로 뻗어 나온 산조인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돌아서면 솟구치는 산조인을 보이는 족족 잘라내야 하지만 잡초만큼의 엄청난 번식성 때문에 내 딴에 생각해 낸 것이 새로운 묘목의 개발이었다.


보은 지방의 복조 대추처럼 접목법이 아니라 분주법으로 묘목을 생산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수립하고 어미 씨 나무 생산에 도전장을 던졌다.

왕대추나무의 가지를 휘묻이하여 온전한 형태의 왕대추 유전자를 가진 묘목을 생산해서 그 뿌리를 분주할 계획이었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작년에 세 개의 시루 통에서 기적적으로 휘묻이에 성공했지만 본 나무에서 가지를 자른 후에는 모두 말라서 죽고 말았다.

허긴 그것이 쉬웠으면 누군들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묘목 농원에서 생산한 접목한 묘목을 구입할까마는 남다른 실험정신을 가진 겸업 농부는 올해 또다시 시도해 볼 작정이다.


첫째, 휘묻이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하여 이번에는 흙에 묻을 가지의 껍질을 벗기지 않기로 했다.

껍질을 벗긴 가지는 메마르기 십상이어서 뿌리의 활착이 여의치 않았다.


둘째, 휘묻이에 성공한 가지라도 성급하게 가지를 자를 것이 아니라 충분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미나무와 단절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조금씩 발전하고 있으니 조만간에 ‘앗싸 따봉!’을 외칠 날이 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조짐이 엿보인다. 


비주얼이 기가 막힌 강의 조망을 바라보며 강 건너의 신천지를 상상해 본다.

3년 후 입주 예정인 최근 두 차례의 에코델타시티 공공분양아파트의 경쟁률이 무려 140대 1을 넘길 정도로 치열했었다.

54점이라는 적지 않은 청약가점으로도 난 두 번 연속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당첨이 되었더라도 현재의 자금 형편상 큰 부담이 되었겠지만 나중은 나중이고 청약이나 해보자는 취지에서 무작정 도전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비당첨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큰 점수차의 탈락이었다.


활기찬 3년 후의 에코델타시티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을 때 와이프로부터 전화가 왔다.

“규태 씨 부인한테 전화해서 이번 주말에 같이 산에 가자고 했으면 하는데 어때요?”

“좋지! 그런데 멀리는 말고 가까운 승학산에나 가자고 해봐? 내가 아는 코스로 가면 거의 숲 속으로만 걸어가니까 암만 더워도 까딱없어!”

공모전 속의 규태는 지금쯤 통일 이후의 혼란상을 잠재우기 위해서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알고나 있는지…

산에 가더라고 혹여 규태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공모전 애기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작 본인은 읽지도 않고 있는데 내가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거리면 얼마나 무안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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