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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우리 아이들의 생일선물

23.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의 생일날이 두리뭉실하게 변해버렸다.

현실적으로 아이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주말로 앞당겨서 시간이동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었으므로 어느새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 집에서 가족의 생일이 차지하는 위상은 꽤 높은 편이다.

6년 전 아이들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여전히 생일상을 차리게 되면서 그 중요성이 한 단계 상향되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같은 성현들의 생일날은 엄청나게 챙기지만 정작 돌아가신 날은 기억하지 않음에서 그 영감을 얻었다.

허긴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물리주의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말이다.


큰 아들이 귀한 에그 프런트를 구해왔기에 풍요로운 토요일 주말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냉커피와 함께 생소한 맛을 감상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 집 마당 앞의 농장 풍경은 식재한 지 십 년에서 십오 년에 이른 온갖 과실수들이 탐스런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복숭아의 수확 시즌이다. 아들 녀석이 워낙 농장 체험하기를 좋아하여 복숭아 따기를 시켰더니 과일 수확기와 바구니를 들고 가면서 신이 났다.

사실 지난주에도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에서 수확했지만 2/3 가량을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봄부터 지금까지 여섯 번이나 살충 살균제를 살포했지만 당도가 높은 복숭아의 특성상 그것으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겉은 멀쩡해도 어떻게 파고들었던지 속에 송충이가 파고들어 멀쩡한 복숭아가 거의 없었다.

과수원을 제대로 운영하는 진짜배기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봄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무렵 방제에 실패할 경우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 시기에는 거의 매일 약통을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데 건성건성 게으름을 피운 댓가가 가감 없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은 당도가 다소 떨어진 새로운 품종의 복숭아나무 두 그루를 지정해 주었다. 해마다 이 나무에서 수확한 복숭아들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었기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딸이 선물이랍시고 지나치게 다양한 기능이 있는 신형 스마트 워치를 선물로 가져왔다. 두 남동생들과 함께 마련했다고 하는데 곧 전역을 앞둔 막둥이가 무슨 수로 힘을 보탰을까 했지만 병장의 월급이 70만 원이나 된다기에 갸우뚱하고 말았다.

그런데 두 동생들은 상습적인 체납자라고 하면서 딸이 웃으며 말하기에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탁상에 차려진 생일상의 중앙에는 작은 케익이 놓였고 달랑 하나의 초에 불꽃이 일자 익숙한 생일노래가 합창되었다.

촛불을 끄기 전에 아마추어 작가의 간절한 답사가 있었다.

“스마트 워치도 좋지만 아빠는 너희들에게 받고 싶은 생일선물이 따로 있거든!

아빠가 참여한 공모전의 연재가 다음 달 12일로 끝이 나는데 너희들의 성원 속에서 마무리하고 싶어!

구독자가 많지 않아서 쓸쓸하게 100회의 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너희들에게까지 외면받으며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아!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따라 부치면 충분히 가능한 분량이니까 아빠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꼭 읽어주길 바래!"

착한 우리 아이들은 미소만 지을 뿐 달리 말이 없었지만 아침식사 후 큰 아들은 곧장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17년 전 펴낸 시집 애기를 꺼냈다.

얼마 전 우리 집 서재에 꽂혀있던 시집을 읽게 되었는데 누나와 동생은 시의 내용에 등장한 반면 자신은 빠져있어 무척 서운하더라는 것이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그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느닷없이 난 공모전 애기를 꺼냈다.

“공모전에 등장하는 해병대 1사단의 활약상은 오롯이 너한테서 영감을 받았던 거야!

독도를 기습적으로 점령한 일본의 흑군파를 포항에서 급파된 해병대 1사단이 물리친다는 구상은 너가 없었으면 아빤 생각할 수가 없었어!”

       

베란다 카페에서 방금 자른 케익 한 조각과 더불어 모닝커피잔을 마주하고 있었을 때 막내아들에게서 화상전화가 걸려왔다.

4주 차에 접어든 특전사의 하계 훈련 중에 잠시 짬을 낸 우리 막내는 수영복 차림의 새까맣게 탄 상남자의 모습이었다.

한창 훈련에 여념이 없던 막둥이한테까지 시간 날 때 공모전 읽어보라는 말을 잊지 않았으니 이쯤 되면 애원하기 수준일 듯 쯪쯪…



갓 열한 시를 넘겼을 때 기다리던 규태 부부의 중형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마당으로 들어왔다.

오늘을 위해서 새롭게 차려입은 등산복은 사실 지난주 김해의 아웃렛 매장에서 와이프가 생일선물로 마련해 준 것이다. 블루베리를 판매하여 제법 수입이 짭짤했던 모양인데 그 덕분에 생전 처음 메이커 등산복을 얻어 입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난 적어도 우리 집 근방에 위치한 승학산 금정산 신어산에 대해서 만큼은 자칭 빠꿈이라 할만했으므로 무더운 여름날 두 여인들의 체력 상태를 감안하여 두 시간 이내의 맞춤형 명품코스로만 안내했다.

와이프의 간곡한 당부도 있었지만 나의 생각도 그러하여 승학산을 등산하는 내내 공모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주식의 폭락장세로 그렇잖아도 걱정이 많은 친구에게 정신적인 힐링에 방해되는 일체의 요소를 배제하는 성숙된 문화시민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대화도중 불쑥 독도 이야기가 나오자 와이프가 난데없이 독도도 안 가본 사람이 어떻게 독도를 무대로 공모전을 썼냐며 핀잔주는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 애기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냥 모두는 철저하게 함구했고 난 그것이 어색했지만 따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100회의 종반전에 접어든 와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과 단 한마디의 공모전 애기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섭섭했지만 그러나 어찌하랴! 그것이 현실인 것을…

 

산행 후 낚시터 농장으로 이동한 우리 일행은 처음으로 규태 부부와 함께 6인승 고무보트에 올라 강을 유람했다.

작은 배터리 하나에 의지하는 보트의 속도는 걸어가는 정도라 아무 생각 없이 강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물 위에서의 대화 중 강물의 유연함 때문인지 자연스레 유연한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특히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멋진 결론이 만들어졌다.

단지 당면한 현실의 문제 때문에 어른들의 잣대로만 바라보지 말고 아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격려해 주자는…


입대 직전 우리 막둥이는 머리를 깎기 전에 마지막으로 염색을 해보고 싶다며 머리를 짙 노란색으로 물들여서 날 까무러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앞전 휴가 때는 요사이 유행하는 팔자 바지에 이상하게 생긴 윗도리를 걸쳐 입고서 외출하려다 우리 부부를 기절초풍하게 만들기고 했고…  


하지만 휴가가 끝나갈 무렵 우린 베란다 카페에서 전역 후의 인생진로에 대해서 꽤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 이상으로 듬직하게 성장한 특전사 병장으로서의 의젓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 한 번뿐인 인생이지 않던가? 우리 세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긴 호흡을 가지고 지켜봐 주자!   

     


다음날 원기 날씨의 예보대로 새벽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을 다 먹었을 때 즈음 75회의 연재 글이 올라왔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마음을 비운 이후로는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올라온 연재 글을 태연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더니 이젠 읽어주는 구독자가 많던 적던 개의치 않을 정도로 마음의 평정을 얻었다.


방금 내린 원두 두 잔을 들고 온 와이프에게 어제 큰아들의 애기를 꺼냈더니 사실은 자신이 오래전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잘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기왕에 아이들을 주제로 시를 쓸 요량이었으면 골고루 셋 다 써주어야지 한 녀석을 빠뜨리면 어떡하냐고 또 구박을 들어야 했다  


허허 참! 시집을 발행하고서 17년이나 지나고서야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공모전 초반부의 독도 전쟁 편은 정말로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군 생활한 우리 큰 아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 사실이다.

곧 아들 녀석도 나의 공모전 연재 글을 읽게 된다면 17년 전의 작은 실수 정도는 만해하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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