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으로 출장을 다녀온 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며칠 후면 추석인데도 창우로부터는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배 교수의 고집이 제 아무리 완강하다지만 어쩐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건 그만큼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는 뜻일 게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면 자기가 다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나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래도 작년까지는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전화를 걸어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내가 전화해도 안부만 물어볼 뿐 별다른 이야기도 없다.
나는 지난주에 동북아 역사재단의 연구실에서도 볕이 가장 잘 드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과분하게도 연구 2실의 제3팀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은 것이다.
제3팀은 연구보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정책 수립을 주 임무로 하는 팀이기 때문에 그간의 국내외 사정으로 볼 때 그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후 한때의 잠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연변을 떠나올 때 배 교수가 선물해 준 대나무 통을 서랍에서 꺼냈다.
배 교수, 아니 은하 아버지가 백두산 자락에서 손수 채취했다는 귀한 야생녹차다.
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둔 채 가끔씩 이렇게 나 혼자서만 우려내 먹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야생녹차야 말로 은하의 체취가 느껴지는 유일한 물건이다.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마치 은하가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은하가 그리울 때면 이렇게 나 혼자만의 조용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내 책상 위에는 2년 전 백두산에 올랐을 때 천지에서 찍은 사진액자가 놓여있다.
행여 들킬세라 창우가 아버지 몰래 나와 은하에게 팔짱을 끼라 하고는 최대한 다정스러운 모습이 되었을 때 찍어 준 사진이다.
그 옆에는 은하가 내게 선물해 준 손바닥만 한 큰 녹차 잔이 놓여있다.
찻잔의 뚜껑을 열고 책상 앞으로 옮겨놓았다. 차를 즐기기에 앞서 코끝으로 백두산의 향기를 먼저 음미해 보았다.
왼손으로 대나무 통을 톡톡 흔들어 오른손바닥에 조금 쏟으니 투박하게 볶아진 녹차가루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왔다.
창밖에는 회색의 빌딩 숲 사이로 때 이른 석양 노을이 밀려온다.
이때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울긋불긋 코스모스 군락 사이를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으로 은하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연구실에서 잠시나마 짬을 내어 은하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연변을 떠나올 때 약속한 대로 은하로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이메일이 날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작년 가을까지는 그랬다.
그 후로는 사나흘에 한 번씩 오더니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뜸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답장을 한두 번씩 거르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는데 은하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만도 했을 것이다.
은하가 메일을 보내올 때는 그녀의 하루 일과를 어찌나 세세하게 알려주던지 그녀와 주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내 앞에서 훤히 전개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우리 사이를 전향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거나, 오빠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나 역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궁금함이 도를 더해 조급증을 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직접 은하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묻지 않더라도 그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그래서 가족으로서의 인연을 만들지 않겠다는 은하 아버지의 그 단단하고 높은 벽을 아직도 허물지 못했다는 뜻일 테다.
어쩌면 은하도 창우도 그 벽을 허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나머지 이제는 설득하는 일을 포기한 채 손을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 역시도 답답한 노릇이었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다른 도리가 없다.
북한의 제1차 핵실험 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 통과로 그야말로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러던 것이 재작년 연말에 있었던 6자 회담을 계기로 이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강력한 대북 압박정책으로 북한을 고사시키려던 미국의 부시 정권도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이후로는 확실히 주춤해졌고, 북한의 입맛에 맞을 만한 실질적인 당근책을 제시하며 대화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 역시도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작년에 이어서 올봄에 또다시 혹독한 식량난을 겪었던 터라 더 이상의 벼랑 끝 전술을 밀어붙일 여력이 없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안 좋았던지 작년 겨울부터 금년 봄까지만 하더라도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2급 비밀문서로 분류된 국정원의 내부 문건에는 적어도 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는데 몇몇 변경지역에서는 치안이 무너지는 등 북한 정권의 붕괴 조짐까지 엿보인다고 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는 명목으로 일체의 지원을 중단한 상태에서 북한이 이나마도 버티고 있는 것은 중국 측의 식량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미 간에는 극적인 대타협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식으로 입씨름만 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핵부터 폐기하라, 그러면 다 들어주겠다.'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맞서는 북한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으니 당근책부터 먼저 내놔라, 그러면 핵을 폐기하겠다.'라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북미 간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중국의 주가는 날로 올라가는데 반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일본은 그 분을 삭이느라 씩씩거리고 있다.
게다가 여론이 좌우로 양분된 한국은 그저 어정쩡한 자세만 취할 뿐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 난 한 편의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6자 회담에 임하는 미국과 중국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그때까지만 대화를 하는 척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지 실질적인 대화 의지는 없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국도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미국과 마찬가지라고 못 박았다.
다만 중국 측의 의도는 북한 정권의 변화를 유도하여 이번 기회에 국가의 자주성이 사라진 친 중국 사대주의 정권을 만드는 것이 제 일차적인 목표라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는 동북지역의 제4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폭로했다.
오늘 하루도 정책회의다, 보고서 작성이다, 윗분들의 호출이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다.
팀원들이 하나둘 퇴근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비우더니 어느새 텅 빈 연구실에는 나 홀로 남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제 그만 자리를 일어서려는 바로 그때였다.
기다리던 서 교수님으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재단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방금 부산에서 올라오셨다는데 종로 3가에 위치한 단골 일식집에서 만나자는 전화였다.
서 교수님은 동북아 역사재단의 비상근 이사로 계시기 때문에 정기적인 이사회가 열릴 때나 내일처럼 특별한 안건이 있어 임시 이사회를 소집할 때는 가끔씩 서울로 올라오신다.
물론 서울에 오실 때면 어김없이 날 찾으셔서 식사를 함께 하신다.
나는 교수님께 보여드릴 생각으로 서둘러서 보고서의 초안을 출력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호텔에 도착하여 3층의 일식집으로 올라왔을 때, 교수님은 아늑한 분위기의 작은방 하나를 차지하고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계셨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는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백이 좀 넘었나 싶었는데 몇 달 사이 백발이 더욱 성성해진 것이 이젠 완전히 노 교수의 모습이 역력하다.
“교수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몇 달 만에 교수님을 뵙게 되자 반가운 나머지 큰절부터 먼저 올렸다.
“어허 이 사람아! 평소 안 하던 절까지 하고, 웬일이야? 그러지 말고 어서 와서 앉게나.”
절을 마치고 맞은편의 자리에 앉자 미리 주문한 코스요리가 하나둘 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서로 종업원 아가씨가 청하 한잔씩을 따른 후 자리를 물러났다.
“자네,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했다며? 늦었지만 축하하네.
동작은 굼벵이처럼 둔한 사람이 물고 늘어지는 성격 하나는 타고났단 말이야. 하하하!”
소박하게 웃으시며 축하주라고 하면서 청하 한 잔을 권하셨다.
“모두 교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그래서 내게 큰절까지 했구먼. 그런데 자네가 잘못짚었어.
난 재단의 인사 문제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단 말일세. 이십 년이 넘도록 나와 함께 지내고서도 아직도 날 모르다니….
그건 그렇고 임시 이사회라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사실 재단에서 임시 이사회를 소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재단 창립 후 몇 차례 열리곤 했는데 대개는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이나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된 중요 현안이 발생할 경우였다.
“내일의 임시 이사회는 어제 이사장님께서 NSC 회의를 다녀오신 후 긴급 소집한 것으로 압니다만, 아마도 북한의 사정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서 교수님도 뭔가를 짐작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얼굴은 더욱 말라 보였지만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빛만은 예전처럼 여전히 힘이 넘쳤다.
다다미 방 한구석에서는 늦가을 더위를 식히려는 듯 선풍기가 아주 미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정원에서 보고한 내용 때문에 모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내 생각에는 북한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붕괴되리라고는 보지 않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도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만, 북한의 어려운 상황으로 봐서는 저 상태에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 위원장이 언론에서 모습을 감춘 지도 벌써 한 달을 넘기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입니다.”
사실 국방위원장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일은 중요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간혹 있어왔던 일이다.
그는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대립이 심화될 때마다 그 모습을 감춰왔다.
2003년 초 핵확산 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뒤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시점에는 50일간,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 후에는 한 달간, 같은 해 7월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 뒤에는 40일간 잠적한 적이 있었다.
현재 북한을 둘러싼 내외의 어려운 국면을 감안할 때 한 달간의 잠행이란 것은 그동안 상투적으로 있어왔던 은둔과는 어딘지 모르게 그 차원이 달라 보였다.
서 교수님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마치 독백처럼 하신 말씀이다.
“그렇지, 정 위원장의 잠행이 예년의 경우와는 확실히 다른 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는 건가?
그 참!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내일 가보면 무슨 말이 있겠지.”
“교수님, 내일 회의 마치시고 곧장 내려가실 겁니까?”
“그래야지, 모레 오전부터 강의가 있으니. 그건 그렇고 은하라 했던가?
그 왜 중국동포 아가씨 말이야, 금방 데려올 것처럼 그러더니만 왜 아직도 구경을 안 시켜 줘?”
난 잠시 말을 잊지 못하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잔을 비운 뒤 교수님께도 잔을 권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아직 여전한 모양입니다”
“그 참 고얀 양반일세. 자네 정도면 어디가 어때서 그렇게까지 반대를 한단 말인가. 적당히 그러다가 말아야지. 어째 정도가 좀 심하구먼.
내 그렇잖아도 내년 초에 북경에서 그쪽 학자들하고 학술회의를 하기로 돼 있는데 그때 맘먹고 한번 들러봐야겠구먼.
그 양반이 나하고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했다지?”
“예, 교수님, 중국에 오실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들렀다가 가셨으면 했습니다.”
“잘 됐네, 내가 그 양반을 한번 만나보지.
그 양반도 그 양반이지만 자네도 참 주변머리가 없구먼.
아가씨 아버지가 반대한다고 지금껏 그러고 있으니 하는 말일세.
내가 나서지 않으면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군 그래.”
이렇게 말씀하신 교수님은 너털웃음으로 웃고 계셨지만 사실 그건 맞는 말이다.
내 나이 스무 살 시절부터 서 교수님의 특별한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여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답답한 인생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 그래서 교수님은 언제나 내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시다.
미리 준비해 간 A4 용지 오십 쪽 분량의 보고서가 담긴 서류봉투를 교수님께 건네 드렸다.
교수님은 즉석에서 보고서를 대략적으로 읽어보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호텔에서 자세히 검토하겠다며 서류봉투에 다시 집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윤군, 잘하리라 믿네만 지금의 시기는 우리 모두가 더욱 긴장해야 하네.
자네 보고서 내용대로 작금의 우리 민족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위기상황일세.
그래서 우리 모두의 슬기와 지혜가 필요한 이때 특히 재단의 젊은 일꾼들인 자네들의 역할이 실로 크단 말일세.”
나는 교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광대하게 펼쳐졌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웅대한 대륙 사관으로 설명하시던 교수님,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북방지역 고토를 회복해야 된다며 강단에서 목청을 드높이시던 교수님이시다.
외세에 의해서 민족의 강산이 잘리어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또다시 그 반쪽마저 우리 민족사에서 영구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풍전등화와도 같은 암울한 상황이 아닌가.
이렇듯 외부의 환경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국내의 상황은 아직도 사대주의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협소한 반도사관(半島史觀)이 판을 치고 있는 형편이다.
서 교수님의 탄식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인식할 능력도, 타개할 의지도, 그 방법조차도 알지 못한 채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여 토해 내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민족의 중심이 경주나 서울쯤으로 착각하는 좁디좁은 반도사관 속에서 교육받고 또 그렇게 믿으면서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민족이 회복해야 할 고토(古土)가 어디쯤이며, 왜 회복해야 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자칫 북한 땅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는 동북공정의 막바지 단계가 진행 중인 비상한 상황 속에서도 미국 주도의 대북 강경책만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북한의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통일을 마치 남의 집 일처럼 한가로이 이야기할 때, 우리 민족을 분단시킨 외세가 우리 몰래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 턱이 없다.
또한 그것이 우리 민족의 앞날에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백두산의 정상 천지에서 배 교수가 외쳤던 말이 다시금 생생하게 귓전을 스치듯 지나갔다.
“백두산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다!. 간도땅의 주인도 우리 민족이다!."
다음날 오후 서 교수님께서는 임시이사회를 마치자마자 KTX 편으로 내려가셨다.
서울역까지 배웅해드리고 싶었지만 사사로이 연구실을 비워서는 안 된다며 끝내 만류하시고는 홀로 서울역을 향하셨다.
열차에 오르시기 전 내게 전화 주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임시이사회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대외비를 전제로 이사장님의 보고가 있었다.
정 위원장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상황에 확실히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정보력의 한계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이나 중국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었지만 우리를 따돌리며 중요한 정보를 주지 않고 있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라는 보고였다.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오랜만에 은하의 메일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내 답장은 언제나 그렇듯 고루한 내용 일색이지만 그래도 이때만은 은하를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므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렇게 답장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쓰는 메일의 말미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첨가했다.
자치주의 대북무역 실무를 관장하는 오빠가 북한 사정에 정통할 것이니 최근 북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내고 자리에 누우니 몸은 솜처럼 피곤해도 2년 전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연변으로 출장 갔을 때가 아련히 생각나기 시작한다.
연길공항, 연길 시장, 용정중학교, 국내성이 있는 집안시, 백두산 가는 길, 천지폭포, 소천지, 단동, 삼합.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듯 그때의 장면들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내 추억을 일깨운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열변을 토하던 배 교수, 정 많은 최 씨 아저씨,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해 내던 창우, 그리고 내가 꺾어준 코스모스 향내를 맡고 있던 내 사랑 은하.
은하에게 답장 메일을 보낸 그다음 주의 일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도 바쁘게 움직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모레가 추석이기 때문에 밤늦게 곧장 오피스텔로 돌아와 들뜬 마음으로 부산 내려갈 여장을 꾸리고 있었다.
시간 내서 한번 내려오라는 서 교수님의 당부말씀도 있고 해서 진작부터 오늘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출발하는 KTX 열차 편을 예매해 두었다.
오피스텔을 나서기 전, 혹시나 은하로부터 메일이 와 있나 싶어 노트북을 열어보니 붉은색 대문자로 ‘긴급’이라고 적힌 은하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삼십 분 전에 보낸 메일이었다.
은하의 메일에는 오늘 저녁 창우가 술이 과하게 되어 아버지를 찾아왔었다고 한다.
“술을 먹었으면 아파트로 갈 것이지 여긴 왜 왔네?”
“아버지, 그렇게 차갑게만 말씀하지 마시고 여기로 앉아보세요.
오늘 아버지 하고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은하야, 술상 좀 봐다오. 술은 오빠가 가지고 왔다.”
창우는 그가 즐겨 먹는 백두산 들쭉술 포장을 뜯은 뒤 방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아버지를 어서 앉으라고 다그쳐 댔다.
추석명절을 목전에 두고 자신과 술 한 잔을 나누고자 찾아왔다는 아들의 말에 배 교수도 많이 누그러진 표정이다.
여전히 그는 선채로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은하가 작은 상으로 술상을 차려왔을 때 홀에서 손님을 맞고 있던 최 씨도 방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자리 옆에 어서 와서 앉으라는 최 씨의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배 교수도 마지못해서 자리에 앉았다.
좁은 방안에 세 명의 남자와 은하마저 자리를 잡고 앉자 방안이 꽉 찬 느낌이다.
창우는 술병을 들고 호기롭게 말했다.
어디서 술을 꽤 많이 하고 왔는지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되었고 혀는 잔뜩 꼬부라져 있었다.
“이 술이 말입니다, 2000년 6월 15일에 김대중 대통령 하고 우리 정일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화해주로 마신 백두산 들쭉술입니다.
아버지, 우리도 이 술 마시고 화해합시다. 자, 한잔 받으세요.”
창우가 술을 따를 때까지도 배 교수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때마침 최 씨가 특유의 밉지 않은 얼굴로 넉살 좋게 말을 건넸다.
“이봐, 창우! 나하고는 화해 안 할 거야? 왜 난 화해주가 없어?”
“아저씨 하고는 화해할 게 없는데요, 그래도 우리 아저씨 때문에 제가 늘 마음이 놓입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우리 아저씨도 자 한잔 받으세요.”
창우는 최 씨에게도 술 한 잔을 따른 후 옆에 앉은 은하의 술잔도 채워주었다.
최 씨가 창우의 잔을 채워주려고 하자 창우는 부득부득 아버지한테서 술을 받고 싶다며 고집을 부려댔다.
이 잔은 화해의 잔이기 때문에 꼭 아버지가 따라주어야 먹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몇 순배의 술잔이 돌자 어느덧 배 교수의 얼굴은 인자한 아버지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가 눈을 들어서 아들을 바라보며 한결 부드러워진 어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네? 평소 안 하던 행동까지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네? 어서 말해 보라.”
배 교수의 이 말에 또다시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도 말문을 열지 못하는 창우를 최 씨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거들며 나섰다.
“일 없다. 명절은 본시 이렇게 식구들끼리 둘러앉아서 술 한 잔씩 하는 거이야. 아니 그렇네?”
“제 술 한잔만 더 받으세요.”
창우는 배 교수의 술잔에 또다시 가득 술을 따랐다.
“아버지, 제가 오늘 술이 많이 됐습니다. 조선에서 온 친구하고 점심 먹으면서부터 계속 마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도 않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도 아버지가 보고 싶던지…
이 못난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날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난 이 세상에서 우리 아버지를 제일로 존경한단 말입니다.”
충혈된 눈을 게슴츠레 뜬 모습으로 아버지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디밀었다.
그런 아들이 싫지는 않았던지 배 교수도 빤히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바라봤다.
창우의 넓적한 얼굴에서 비로소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일이네, 이야기를 해 봐.”
이때 최 씨가 부동산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소리에 자리를 일어났다.
최 씨가 밖으로 나가자 창우는 결심했다는 듯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어느 사이에 그는 말짱한 얼굴로 되돌아와 있었다.
“아버지, 지금 조선에서 급변이 일어났습니다.”
이 말에 배 교수는 그의 무거운 뿔테 안경을 벗어 술상 위에 올려놓았다.
곧 그의 황소 같이 커다란 눈동자가 그대로 드러났다.
얼굴에는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어 있었지만 눈에서는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말이야? 급변이라니…”
“정 위원장이 한 달째 의식이 없다고 합니다.”
“뭐야? 그럼 죽었단 말이야?”
창우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죽은 건 아니고 의식불명 상태라 합니다.”
“한 달간이나 의식불명이라면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거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구먼.”
“아버지!”
창우가 아버지 얼굴에 그의 얼굴을 더욱 밀착시킨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려했던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물밑에서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주일 전부터 무슨 비밀 회담이 진행 중이라 하는데…”
배 교수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긴장을 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역시도 누가 엿들을까 봐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옆에 앉은 은하는 오빠와 아버지의 대화가 너무 심각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비밀 회담이라면… 조중 간에 말이지!”
창우는 오른손으로 턱을 고인 채 심각한 표정으로 술잔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득였다.
“예 아버지, 조선 군부하고 중국이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했는데도 배 교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아들의 말을 가로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간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미국도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핵무기인데 핵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묵인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선을 중국의 괴뢰정권으로 만드는 계획을 미국이 묵인한단 말이지?”
“…”
“그럼 조선이 중국으로 편입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아야 갔구나. 그쪽 인민들의 움직임은 어떻네?”
“아무도 모르죠, 비밀 회담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조선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1급 비밀이란 말입네다.”
이때 최 씨가 투덜거리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은하는 최 씨가 방으로 돌아오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씨는 자신의 잔을 단번에 털어 마신 후 창우에게도 잔을 건네며 독백처럼 투덜댔다.
“엥이! 부동산에 놀러들 왔으면 조용히 장기들이나 둘 일이지 뭔 놈에 궁금한 것이 그리도 많은지…….”
최 씨의 이 말은 제집 드나들듯 부동산을 들락거리던 인근의 건달 두 녀석이 오늘따라 이 집의 동태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기에 하는 독백이었다.
배 교수는 60년 지기인 최 씨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정 위원장이 유고된다고 보고 조선의 군부를 충동질했겠구먼.”
최 씨는 지금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눈치다.
“군부한테는 지금까지처럼 선군정치를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간섭은 중국이 다 막아주기로 하고, 원조도 조선 군부가 요청하는 만큼 충분히 지원하기로 그렇게 약속했다는 겁네다.”
최 씨가 채워준 잔을 단숨에 받아 마신 창우가 술상을 옆으로 치우더니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순간 창우는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나도 조선 사람입니다.
중국 땅에서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중국 사람처럼 살고 있지만 난들 왜 우리 민족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버지 이 일을 어쩌면 좋같습니까?”
배 교수는 그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파묻은 창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문제는 조선의 인민들인데 그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조선은 이제 영원히 중국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야.
위구르나 티베트처럼 말이야.
그들이 들고서 일어나야 하는데…”
배 교수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독백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는 사이 창우는 아버지의 따듯한 품속에 파묻혀 어린아이 마냥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의 장면을 밖에서 몰래 엿듣는 자가 있었다.
홀에서 장기를 두는 척하던 작자 중 하나가 이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창우의 이부자리를 마련해 준 배 교수는 주방에서 술상을 치우던 은하에게 다가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문을 열었다.
“은하야, 너 요즘도 윤 선생하고 연락을 주고받네?”
“예, 아버지. 이메일로 연락하고 있습니다.”
“그럼 너 말이다…. 아니다 됐다.”
배 교수는 무언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다 말고 돌아섰지만 은하는 아버지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서울에 있는 윤 선생에게 급히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빠를 통해서 최근의 북한 사정을 알아봐 달라던 윤 선생님의 부탁도 있었던 터라 은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은하가 머무르고 있는 창우의 아파트는 배 교수 사무실과는 걸어서 이십 분 남짓한 상가 밀집지역 뒤편의 5층짜리 단동 아파트다.
택시에서 내린 후, 거의 뛰다시피 3층에 위치한 창우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온 은하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PC를 켰다.
그리고 ‘긴급’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하여 이 사실을 내게 알려왔다.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서 교수님께 급히 연락을 취했다.
은하의 이메일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자 서 교수님은 무척 놀라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자네가 볼 때는 어떤가? 확실한 정보 같은가?”
“예 교수님. 은하의 오빠가 조선족 자치주의 대북 무역사업을 관장하는 실무과장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과 친분이 깊은 북쪽의 고위관리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알았네, 일단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고 자네는 거기 그대로 있게나.
내 이 밤으로 곧장 올라갈 테니 내일 아침에 재단에서 보세!”
서 교수님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으니 내가 부산으로 내려갈 일은 없게 되었다.
난 곧장 KTX 예매를 취소한 후 잠시 소파에 눕자마자 이내 잠이 쏟아졌다.
배 교수의 고향마을 옥수수 밭 사잇길이다.
배 교수가 몽둥이와 칼을 든 일단의 무리들에게 쫓기고 있고, 그 뒤를 은하가 울면서 뛰어가고 있다.
몽둥이를 든 자가 달려가면서 배 교수의 어깨를 내리쳤다.
배 교수가 넘어지면서 그의 두꺼운 검정색 뿔테 안경은 옥수수 밭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때 청나라 전통 복장을 한 자가 칼을 높이 쳐들고 쓰러진 배 교수의 목을 내리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중국인으로 살기 싫으면 중국 땅을 떠나라고 내 진작부터 경고하지 않았더냐!
여기는 한국 땅이 아니라 중국 땅이라고 내 그렇게도 일러주었거늘, 오늘 그동안의 경고를 무시한 죗값에 대한 벌을 받아야겠다.
이것은 순전히 말귀를 못 알아 쳐 먹은 네놈의 잘못이니 행여 저승에서라도 날 원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흐흐흐.”
그가 ‘이얏’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칼을 내리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뒤따라오던 은하가 아버지를 감싸 안으며 그 위로 쓰러졌을 때 칼은 그만 그녀의 등에 꽂히고 말았다.
“안 돼!”
난 다급하게 뛰어가면서 고함을 질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허공에서 팔만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악몽에서 깨어나 보니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시간은 이미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때 휴대폰에서는 감미로운 컨츄리 송이 울려 퍼지고 있어 화면을 보니 재단의 이사장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윤 팀장! 방금 서 이사님으로부터 연락받았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인가?”
“예 이사장님,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알았네. 어차피 이번 일은 대중국 동북공정의 정책에 관련된 문제니까 연구 2실에 소속된 우리 3팀에서 수고해 주어야겠네.
명절날인데 안 됐지만 지금 즉시 팀원들을 비상 소집시키고, 우리는 아침에 재단에서 보는 걸로 하지.”
이사장님의 긴급지시를 받은 후 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추석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다들 고향으로 내려간 팀원들에게 이 새벽 시간에 비상소집망을 가동하려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만약 은하가 보내준 메일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명절날 이 난리법석을 떨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부터 하고 나오자 한결 정신이 맑아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팀원들에게 비상소집 문자를 발송했다.
그래도 우리 팀원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추석연휴 그것도 곤히 잠들어 있던 이 새벽시간에 비상소집 문자를 받았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꾸물대지 않고 즉각적으로 수신확인문자를 보내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휴대폰을 잡은 손에서 흥건하게 땀이 고여 있고, 잠시 눈을 붙일 요량으로 소파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평상시보다도 삼십 분이나 일찍 출근하여 연구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미 서 교수님께서 도착하여 내 자리 옆 소파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그때 책상 위 직통 전화기에서 요란스럽게도 벨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서 교수님과 난 동시에 화들짝 놀랐고 급히 올라오라는 이사장님의 호출 전화였다.
우리가 이사장실로 들어서자 양 이사장님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유쾌하게 들려왔다.
“서 이사님! 어제 저에게 전화 주시고 혹시 날아오셨어요? 이렇게 빨리 오시다니요”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날아왔지요, 암요! 날아왔어요.
사실은 마침 출발하는 마지막 KTX 편이 있어 편안하게 올라왔습니다.”
“자 앉읍시다. 그래 윤 팀장, 서 이사님으로부터 대략적인 말씀은 들어 알고 있네만 정보의 출처가 조선족 자치주의 대북한 무역담당 과장이라고?”
“예, 일전에 연변 출장을 갔을 때 알게 된 지인으로서 믿을 수 있는 정보원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는 절차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바빠도 커피 한잔은 들고 하자면서 이사장님이 손수 커피를 내리기 위하여 자리를 일어섰다.
“그래 누구에게 물어보지? 국정원도 이 대목에서는 먹통이 분명할 테고… ”
골똘히 생각하던 서 교수님이 말문을 열었다.
“CIA 한국지부 쪽에 선을 닿을 수만 있다면?
그러자면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면 일이 커질까 봐 염려되기도 합니다만…”
서 교수님이 혹여 잘못된 정보라면 일이 커진다는 말에 내 머리 칼이 뻣뻣이 일어났다.
잠시 후 부글부글 끓는 물소리와 함께 잘 볶아진 원두커피가 구수한 향기를 풍기며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생각입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지 않겠습니까?, 방법은 그쪽에서 찾을 테니 우린 소스나 주어봅시다.”
정보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자칫 은하 가족들에게 미칠 화가 걱정되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이사장님,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굳이?”
커피 머신에서 내려받은 커피를 찻잔에 옮겨 담던 이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 팀장의 의도를 알겠네, 그건 말하지 말아야겠지.”
재단의 양 이사장님은 NSC 회의에도 참석하기 때문에 국정원장과의 교분이 두터운 편이다.
그는 국정원장과 통화를 시도한 후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이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원장님, 동북아역사재단의 양 이사장입니다. 다행히 연결이 되는군요.
급히 알려드릴 사안이 있어 이른 아침에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드립니다.
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가 의식불명이라는 첩보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미국의 동의하에 중국하고 북한 군부 사이에 무슨 비밀협상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건 걱정 마시고요. 네, 네.”
전화를 마친 이사장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신 후 잔을 내려놓았다.
국정원장이 확인을 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그렇게 삼십 분가량이 지났을 때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지 내 머리에서는 쉴 새 없이 진땀이 흘러내렸고, 커피 잔을 잡은 오른손은 떨려서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방의 옆 벽면에 걸려있던 커다란 쾌종시계는 어느새 아침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때, 무거운 정적이라도 깨우려는 듯 재단이사장실의 직통 전화기에서 요란하게도 벨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국정원장과 통화를 마친 이사장님이 다시 돌아와 우리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CIA 한국지부장한테 직접 전화를 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면서 부인하기에 언론에 정보를 흘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본국과 협의한 후 조금 전에야 그 사실을 확인해 주더라는 거예요.
모두 사실이라고 합니다. 국정원장의 당부가, 이 정보를 국정원에서 수집한 걸로 하자며 신신부탁하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일체 비밀로 해달라고 말입니다. 내일쯤 NSC 긴급회의가 열릴 것 같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쪽도 체면이 있으니 말입니다. 윤 팀장, 그러기로 하세.”
“잘 됐습니다. 그러는 편이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혹여라도 이번 일로 은하 가족에게 피해가 생길까 봐 여간 걱정스럽지 않았는데 정보의 출처를 국정원으로 하기로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자리에서 이사장님은 우리 팀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난 마음이 급했던 관계로 계단을 이용하여 2개 층을 쏜살같이 뛰어올라 5층에 위치한 제3팀 연구실로 돌아왔다.
어차피 이번 일은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을 제공하는 것이 주 임무인 우리 연구 2실 제3팀의 고유 업무다.
그래서 이사장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각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첫째, 내일 NSC 회의 때 우리 재단에서 제시할 정책 보고서를 오늘 중으로 제출하라는 것이다.
둘째, 재단의 성격상 이번 일에 우리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하므로 보안등급을 최상위로 유지하라는 각별한 주의였다.
우선 제1차적인 방식에 따라서 오후 다섯 시까지 우리 일곱 명의 팀원들 각자가 정책보고서 초안 작성에 나섰다.
나 역시도 초안작성을 위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해 보았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불현듯 지난번 연변 출장길에 배 교수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윤 선생, 북조선의 인민들은 말입니다, 한국을 흡수 통일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요.
그들도 다 알아요. 자기들은 그럴 힘이 없다는 사실을요.
그건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겪으면서 그들이 터득한 교훈이었죠.
결국 언젠가는 한국이 통일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아세요? 이 사람들이 자존심 하나만큼은 세계최고란 말입니다. 그래서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북조선의 인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문제를 한국이 풀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한쪽이 한쪽을 차별하고 천시하는 내부갈등상이 없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 굶었으면 굶었지 배부른 돼지로는 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 내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진정 어린 마음으로 북한 사람들을 포용해야 된다는 배 교수의 말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 배 교수의 주장처럼 북의 동포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뜨거운 동포애를 바탕으로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같은 동포 간의 믿음, 이민족의 품속보다는 우리 민족의 품속이 더욱 따듯하다는 우리 민족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어차피 군부의 상층부는 저들의 살길을 찾아서 이민족의 품속으로 안기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어떤 달콤한 이야기로 합리화하더라도 우리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행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북의 동포들이 평양 시내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떨쳐 일어나 중국 흡수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한다면 국제여론에 의해서라도 중국의 야욕을 막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유엔이 반대하고 나설 것이고 미국도 중국의 행위를 묵인할 수만은 없게 된다,
바로 이런 극적인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중국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야욕을 꺾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 지금 당면한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우리 동포 간 신뢰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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